[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3>남양주 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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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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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 증류수로 키운 황금열매… 향기 뛰어나

‘순금 먹는’ 배를 ‘금이야 옥이야’ 돌보는 은지농원의 엄정의 대표. 그는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드는 것은 명품이 아니다”라면서 “특별한 배를 키운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양주=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순금 먹는’ 배를 ‘금이야 옥이야’ 돌보는 은지농원의 엄정의 대표. 그는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드는 것은 명품이 아니다”라면서 “특별한 배를 키운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양주=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1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은지농원. 빗줄기가 이어지다 모처럼 해가 얼굴을 내민 이날, 은지농원 엄정의 대표(70)는 배나무에 열린 배 한 알 한 알을 보석 다루듯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배를 싼 종이 봉지에 농원 이름 대신 ‘나노텍’이라고 적힌 것만 빼면 여느 배 농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배가 남다른 이유가 있다. 순금을 먹고 자라는 ‘금(金)배’이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설 시즌부터 이 금배에 ‘현대명품 천수금’이라는 브랜드를 붙여 한정 선물세트로 선보이고 있다. 일반 배 선물세트에 비해 2배가량 비싼 가격이지만 희소성과 뛰어난 맛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산지에서도 일반 남양주 먹골배는 개당 2500∼3000원에 팔리지만, 금배 값은 8000원∼1만 원에 이른다. 현대백화점 이진수 과일 바이어는 “금을 녹인 물로 배를 기른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농가를 수소문했다”며 “상품성이 뛰어나 올해 초 남양주 농가 네 곳과 계약을 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아삭아삭 씹는 맛 높은 평가

“금배라고 하면 배에다 금칠을 하거나 금가루를 뿌리는 줄 아는데 설명을 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에요. 하하하.”(엄 대표)

약 2만5000m²(7500여 평) 규모의 은지농원에는 750주의 배나무가 있다. 이 가운데 160주가 ‘순금 먹는’ 배나무. 언덕에 자리 잡은 밭은 풀이 무성했고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엄 대표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풀을 거름으로 쓰는 순환농법을 한다. 그는 “금물을 먹어서 그런지 나뭇잎 색깔이 유별나게 푸르고 싱싱하다”며 “열매꼭지도 다른 배나무에 비해 튼튼하다”고 말했다.

엄 대표가 금배의 ‘어머니’라면 ‘아버지’는 중소기업인 SM나노텍이다. 이 회사는 2005년 ‘금 유기화 재배기술’을 개발했다. 순금이 함유된 물을 농산물 뿌리에 급여해 그 열매가 금을 함유하게 하는 기술이다. 99.99%의 순금을 전기 분해해 2나노 이하의 크기(땀구멍의 100분의 1 크기 수준)로 쪼개 특수 정제한 증류수에 녹여 이 물을 배나무에 주는 것이다.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인 성균관대 공동기기원에서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배 kg당 30μg (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이상의 금이 검출됐다.

크기는 지름 15cm가량인 ‘특대’ 크기 배와 비슷하지만 당도는 13∼14브릭스로 11∼12브릭스인 일반 배보다 높다. 이진수 바이어는 “한 입 베어 물면 시원하게 퍼지는 향기, 아삭아삭 씹는 맛이 일반 배에 비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 도전이 만들어낸 명품


5년 전 SM나노텍은 금을 나노 크기로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해 화장품 쪽에 적용해볼 생각이었다. 동광제약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약사가 보유한 배 농장에 금 녹인 물을 주기 시작했다. 과실에서 달콤하면서 독특한 향기가 났고 맛이 더 좋아졌다. 이후 농가를 찾아다니다 2008년 처음으로 금 유기화 재배기술을 적용한 곳이 은지농원이다.

SM나노텍이 금배를 길러보자고 제의했을 때 엄 대표는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고민했다. 외관상 확연한 특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겠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나무에 주사기로 직접 금 녹인 물을 주입하는 방식, 나무뿌리 주변에 물을 붓는 방식을 비롯해 물 주는 주기, 다양한 원액 농도 등을 실험한 끝에 현재 최적의 농도와 횟수를 찾아냈다.

올해로 38년째 배 농사를 짓는 엄 대표가 보기에도 ‘순금 먹는’ 배나무는 특별한 면이 있다. 인근 배 농장들이 태풍 ‘곤파스’로 최대 70%까지 낙과 피해를 보았지만, ‘금물’을 준 배나무는 낙과 피해가 15% 선에 불과했다. 이진수 바이어는 “지형 등 여러 다른 요인이 있어 금의 영향이라고만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다른 배나무와는 다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금배 키우신다면서요’ 하는 인사를 들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며 “한국의 대표적인 명품 배로 키워내겠다”고 강조했다.

남양주=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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