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순식간이었다. 1일 오전 11시 33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내 쌍둥이 주상복합아파트인 우신골든스위트 4층에서 시작된 불은 10여분만에 채 안 돼 옥상으로 번졌다. 소방관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건물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입주민 10명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바깥에 있던 소방관들이 살수차를 이용해 불길이 치솟는 쪽으로 연방 물을 뿌려댔지만 15층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 외벽 마감재 잔해 50m까지 날아가
해운대 앞바다에서 바라본 마린시티 상공은 시커먼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날 낮 12시 반이 되자 100m가량 높이인 옥상 위로 소방헬기들이 물을 쏟아 부었다. 불이 난 지 1시간 만에 옥상 전체가 불덩이로 뒤덮였다. 헬기가 소방수를 뿌려댔지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30분 뒤 산림청 헬기와 경남도소방본부, 육군, 해양경찰청 헬기까지 부산으로 투입됐다.
불덩이가 위력을 발휘할수록 황금색 패널이 힘없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시민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 마감재는 화재 현장에서 50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이 아파트는 건물 외관을 돋보이게 하려고 외벽 마감재인 알루미늄 패널 바깥 부분에 특수 황금색 페인트를 칠했다. 이 마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불이 삽시간에 번졌다. 시간이 갈수록 두 개 동 사이 외벽 마감재가 ‘V’자 모양으로 타올랐다. 황금색 위용을 자랑하던 아파트 외벽은 금색 반, 검은색 반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후 1시경 옥상에 있던 입주민 유모 씨(59·여) 등 9명이 헬기로 구조됐다.
○ ‘건물 내부는 사실상 폐허 상태’
시간이 흘러도 화재가 진압되지 않자 “저러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주변 마린시티 고층아파트에 사는 주민 수백 명은 거리에 나와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아파트에도 불이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택시운전사 박모 씨(46)는 “고층 옥상의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케이블 방송도 화재 현장을 실시간으로 방송해 미국 뉴욕 9·11테러 현장을 보는 듯했다”고 전했다. 화재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도 화재에 따른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큰 불은 2시간 반 만인 오후 1시경 꺼졌다. 오후 3시경 잔불이 다시 일자 소방관들이 다시 투입되면서 오후 6시 49분경 완전히 진화됐다.
화재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오후 8시경 현장에 들어간 소방관들은 “건물 내부가 연기가 자욱해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부는 사실상 폐허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피해가 가장 컸던 37층 꼭대기층은 집기류가 하나도 성한 게 없고 원래 집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해운대구는 이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이날 주변 모텔과 해운대구 우1동 주민자치센터 별관에 임시숙소를 마련했다.
○ 알루미늄 패널과 접착제가 불쏘시개
이날 불은 외관을 살리려 외벽 마감재로 사용한 알루미늄 패널과 단열재 때문에 급격히 빨리 번졌다. 12mm 두께의 패널을 가로 세로 1m 이하의 크기로 잘라 벽면에 붙였는데, 이런 공법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에 주로 쓰인다. 지진에는 강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이 공법의 최대 단점인데 이번 화재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우신골든스위트는 알루미늄 패널 안쪽에 단열 효과가 높은 유리섬유를 붙였고 인화성 물질인 폴리염화비닐 접착제를 사용해 패널을 외벽에 고정했다.
부산시소방본부 김준규 예방대응과장은 “외벽에 인화성 물질이 있었다. 바람까지 부는 바람에 불길이 건물 위쪽으로 급속하게 번졌다”고 말했다. 또 알루미늄 패널은 바깥부분을 특수페인트로 칠해 색을 내는데, 이 페인트가 불길을 옮기는 작용을 한 것 같다고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소방관들이 건물 내부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출동하는 등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입주민 대표 김성진 씨는 “화재 초기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는데도 즉시 물을 뿌리기 시작한 것은 한 대뿐”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소방당국은 “인화성 물질을 외장재로 사용한 건물 특성 때문에 불이 옮아붙는 속도가 빨랐을 뿐 초기 대처가 늦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한편 최초 발화지점인 미화원 작업장에는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일부 주민이 쓰레기를 태우기도 했으나 관리사무소에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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