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심정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도 제니퍼 애니스톤의 이름은 TV스타로부터 출발해 할리우드라는 영화계에 안전하게 정착한, '올 아메리칸 걸(All American Girl)'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밝고 명량한 이미지는 여전히 건재하며, 출연하는 영화마다 적절히 변형되며 상큼함을 더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니퍼 애니스톤은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에 출연해 자신의 이미지를 적절히 살렸다. 상대역은 최근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대세라고 불리는 영화 '300'과 '모범시민(Law Abiding Citizen)'의 '제라드 버틀러(Gerard Butler)'였다.
내년 개봉 대기작만 해도 3편이 넘는다고 하니, 일단 할리우드가 아직은 그녀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작지만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배우나 모델들만 할 수 있다는 패션지의 '9월호' 커버에 제니퍼 애니스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 또한 미국 내에서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 부분에서 그 어느 할리우드 여배우 못지않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흔히 패션지에서는 '셉템버 이슈(September Issue)'라고 해서 9월호 커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해 가을 겨울 의상의 트렌드와 브랜드의 가을 겨울 용 광고들을 원 없이 볼 수 있고 연간 발행하는 호 가운데 가장 두꺼워 패션 피플에게는 소장판과도 같기 때문이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얼마 전 발매된 미국판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의 9월호 커버에서도 커버로 등장했다. 여기서 애니스톤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명배우이자 시대를 풍미한 가수인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Barbra Streisand)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그녀의 대표작들에서 영감을 얻은 이미지들로 화보와 커버를 장식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미국판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의 9월호 커버에서도 커버로 등장했다. 여기서 애니스톤은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Barbra Streisand)를 오마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제공 조벡 ▶"패셔니스타 명칭이 어색하다"며 웃던 그녀
유명 패션지 커버의 단골손님임에도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패셔니스타'라는 말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최신 트렌드에 아주 능통해 지금 뉴욕에서 유행 예감 중인 백이나 액세서리를 과감하게 착용하고 대중 앞에 등장한다거나, 뉴욕 패션 위크나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의 유명 디자이너 패션쇼 맨 앞줄에 자주 얼굴을 내민 다거나, 그도 아니면 평소의 멋진 착장이 파파라치들에게 찍혀 전 세계 스타일 웹 사이트를 도배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는 패션을 사랑하지만, 패션에 능수능란한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입는 옷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도 저만의 스타일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상식이나 패션 브랜드의 런칭 행사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내게 무엇이 어울릴 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전문가들과 의논해야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요?"라고 그녀는 가끔 패셔니스타라고 불릴 때 마다 어색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말해 주었다.
"사실 레드 카펫위에서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나 파격적인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패션에 있어서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저는 평생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할 거예요" 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제니퍼 애니스톤의 개인 의견과는 달리 그녀에게 패셔니스타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아마 시즌을 10번이나 이어가며 미국을 대표한 시트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프렌즈'에서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인 레이첼이 바로 패션업계(삭스 핍스 애비뉴 백화점에서 랄프 로렌으로 이직하는)에서 일하고 패션을 사랑하는 캐릭터였던 데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미국 TV계에서 패션 하면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캐리'로 통하는 '사라 제시카 파커'나 '가십 걸(Gossip Girl)'의 캐릭터들을 떠올릴 지도 모르지만, 소위 B.SATC(Before Sex and the City)라 불리는 시기, 정말 당시 미국 내에서 시트콤 '프렌즈'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기에, 그 '프렌즈' 속의 '레이첼'은 패션을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필자 역시 '프렌즈'의 캐릭터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친구라 생각하며 함께 자란 세대이기에, 은연중에 제니퍼가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생수 브랜드 ‘스마트 워터(Smart Water)’. 사진제공 조벡 ▶복근 촬영 전에도 팔굽혀 펴기보다는 독서로 심신 안정
그녀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생수 브랜드인 '스마트 워터(Smart Water)'의 촬영장에서 그녀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레이첼이라고 착각하거나, 레이첼 같은 성격이나 감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저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첼!'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라며 웃어버렸다.
그런 이전작의 강력한 캐릭터의 틀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배우들과는 달리 제니퍼 애니스톤은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
"아니에요. 저도 고민이 많이 되었고,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그냥 이것이 대중들이 저에게 바라는 모습이고, 또한 저도 이런 내 모습이 좋으니까 더 고민 안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 뿐"이라고 자신의 태연함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라 설명해 주었다.
미국 내 음료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제품이라고도 불리는 '비타민 워터'. 그 비타민 워터의 전략은 음료임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최대한 패셔너블하게, 또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마케팅의 방식 또한 '최대한 패셔너블'하게였다.
대부분의 음료 광고는 패션이 전문인 광고 회사에 의뢰를 하기 보다는 TV광고까지 아우르는 대형 광고 대행사가 진행하기 마련인데, 비타민 워터의 경우는 구찌, 버버리, 클로에 같은 트렌드 충만한 패션광고를 만드는 회사에 의뢰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비타민 워터는 패셔너블한 음료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그때까지 '게토레이'등이 장악하고 있던 갈증해소 음료시장과 '코카콜라' 등의 탄산음료 시장의 틈새를 파고 들어가 또 하나의 마켓을 창출했고, 수많은 유사 음료들이 연이어 출시되면서 시장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지금은 미국을 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음료시장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비타민 워터를 발매하는 회사인 글래시오(Glaceau) 사에서 발매한 생수 브랜드인 '스마트 워터'의 메인 캐릭터로 '국민적 멋진 언니'인 제니퍼 애니스톤이 발탁된 것이다. 비타민 워터 때부터 줄곧 광고를 맡아 오던 패션 광고 회사 로이드&코(Lloyd&C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더그 로이드(Doug Lloyd)'는 제니퍼 애니스톤의 모델 발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물론 애니스톤보다 더 패셔너블한 배우들도 많죠. 하지만 보통의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광고와는 달리, 스마트 워터는 일반 시장에 유통이 되는 생수이기에 많은 대중들이 아는, 패셔너블하면서 동시에 건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죠. 애니스톤이야말로 딱 적역이었던 것이죠."
제니퍼 애니스톤이 모델로 등장한 '스마트워터'의 광고는 예상대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생수 광고의 모델로 국민적 멋진 누나이자 언니이며, 쿨하면서 시크한 스타일의 제니퍼 애니스톤이 나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생수 브랜드 광고 슬로건은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수원(水原)에서 채수한 생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 워터는 맛은 그냥 물과 다를 바 없지만, 게토레이 같은 갈증해소 음료에나 들어 있는 전해질을 함유하고 있어 인공색소나 당분이 다량 첨가된 기존의 갈증해소 전문 음료를 마시기 꺼려했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광고 전략을 펼친 것. 여성 구매자들은 물론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중에게 '똑똑한 물'이라고 입소문을 타며 비타민 워터와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특히 올해의 스마트 워터 광고 캠페인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은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잘 다듬어진 복근을 자랑하며 건강미와 섹시미를 뽐냈다.
사실 이런 콘셉트의 사진을 찍기 전에는 좀 더 멋진 몸매로 보이기 위해 팔굽혀펴기나 복근 운동 몇 세트 더 해서 긴장감을 줄 듯도 한데, 그녀는 촬영장에서 그저 자연스럽게 책을 보거나 안정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진에 나오게 될 몸매에 신경이 쓰이지 않느냐고 슬쩍 말을 건네자, 걱정이 안 되는건 아니지만 억지로 힘쓰다가 오히려 촬영에 방해만 될 뿐이라며, 촬영장 오기 전에 사람들 안 보이는 데서 많이 하고 왔으니 걱정 말라 귀띔해 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제니퍼 애니스톤’의 모델이 된 애니스톤. 사진제공 조벡 ▶"브래드 피트와 소문? 아니라고 해도 안 믿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최고의 외모도, 최고의 몸매도, 최고의 재능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거나 한탄하기보다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노력하며,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 할 수 있게 또 노력하며, 자신이 경쟁 심한 쇼 비즈니스 계에서 좋은 이미지로 오래 연기자 생활을 이어 갈 수 있게끔 연구하는, 그야말로 노력파 연기자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제가 브래드와의 관계가 나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그저 어른 두 명이 현명하게 판단한 결과일 뿐인데,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제는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려고 해요. 아니라고 해도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니까요."
그녀를 보면서 필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재능을 지닌 듯한 사람보다는 조금 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이른바 '캔디' 캐릭터에게 대중들은 연민과 응원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렇기에 그 캔디와 같은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미국의 대중들은 무한의 사랑을 여전히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 연기자로서 변변한 상 하나 받아 보지 못한 그녀이지만, 대중들이 주는 인기상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받아온 그녀가 바로 진정한 의미의 '미국의 연인'이 아닐까?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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