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 역사 속에서 문자옥(文字獄·지식인의 글을 꼬투리 잡아 하는 탄압)의 마지막 피해자가 되길 바란다.”
지난해 12월 25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제1중급 인민법원 법정에 선 반백의 신사는 ‘나에게는 적이 없다’는 제목의 최후 진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遼寧) 성 진저우(錦州)의 한 감옥에 수감 중이다. 노벨상위원회가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류샤오보(劉曉波·55) 박사다.
그는 30대 중반까지는 문학박사 학위를 가진 평범한 지식인이었다. 류 박사를 중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키운 사건은 21년 전인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발생한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군대를 동원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해온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류 박사는 지난해 법정 진술서에서 “1989년 6월은 내 생애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사태로 중국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게 됐다”며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34세로 시위대를 이끌었고 허우더젠(侯德健)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 등과 함께 ‘톈안먼 4군자’로 불린다.
이후의 삶은 저항과 수감, 석방의 반복이었다. 홍콩 등지로 자유를 찾아 망명한 많은 동료들과 달리 그는 중국에 남았고 자유기고가와 민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인권 신장과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는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이 글을 올리는 해외 독립 언론사이트와 ‘BBC 중문망’ 등에 많은 글을 올렸다. 글 가운데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 애국주의 △중공 독재의 다면성 △독재의 굴기(굴起·우뚝 일어섬)가 세계 민주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 체제비판적인 글들이 많다.
류 박사는 2008년 12월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 등을 요구하는 ‘08헌장’ 초안을 작성한 혐의로 다시 가택 연금됐고 1년 뒤인 지난해 말 ‘국가 전복선동’ 죄로 수감됐다.
류 박사를 포함해 최근 수년 동안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로 매년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이 거론돼 왔다. 2009년 수상 후보에 올랐던 인권운동가 후자(胡佳·36) 씨와 웨이징성(魏京生·60) 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후 씨는 환경과 에이즈 환자 인권 문제 등을 위해 활동해 오다 2008년 국가 전복 선동죄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다. 그는 2008년 유럽의 권위 있는 인권상 사하로프상을 수상했다. 웨이 씨는 체제 전복을 시도했다는 혐의로 수년간 구금생활을 하다가 1997년 풀려나 현재 미국에서 중국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하로프상과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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