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관하여’ 20선]<8>정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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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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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관하여/요셉 피이퍼 지음·서광사

《“이 세상의 정의로는 모든 질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그 인간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을 준다고 하는 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모든 불의는 인간에게 당연히 돌아갈 몫을 주지 않거나 또는 그 몫을 빼앗기는 것을 뜻하며, 이런 일은 불행, 흉년, 화재, 지진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생긴다.”》

불의를 만드는 건 인간이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사추덕(四樞德·네 가지 중요한 덕)’으로 꼽히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 중 ‘정의’의 항목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독일 뮌스터대 철학교수를 지낸 저자 요셉 피이퍼는 중세의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연구한 학자다. 피이퍼는 이 책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학자들을 비롯해 아퀴나스, 칸트 등 다양한 시대의 철학자들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정의’를 분석한다.

전쟁, 사형, 파업, 남녀평등…. 작가는 우리 삶의 문제 대부분이 정의와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인간에게 가장 크고 가장 잦은 재앙은 불행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롭지 못함에 바탕하고 있다”는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정의’를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어 저자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서 ‘각자의 몫’이 있으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각자에게 그 무엇이 돌아가게 되는가”라고 질문함으로써 정의 앞에 권리의 문제가 있음을 명시한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 정의의 행동이라면 어떤 것을 각자의 몫이 되게 하는 행동은 정의의 행동에 앞서 있다. 즉, 한 인간에게 어떤 것이 자신의 것으로 주어져 있다면, 주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정의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정의의 밑바탕에 권리가 깔려 있음을 짚는다.

저자는 정의의 특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을 질서 지우는 것을 꼽는다. “정의를 사랑과 구별 짓는 것은, 정의의 상황에서는 서로가 떨어져 있는 ‘남’으로서 마주 서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의롭다고 하는 것은 남을 남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정의로운 자는 남을 남이라고 승인해 주고 그에게 돌아갈 몫을 돌아가게 해준다고 말한다.

저자가 고민하는 중요한 문제는 공동체 안의 정의다. “성 토마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공동생활의 세 가지 기본적인 구조를 질서 지우는 세 가지 기본적인 관계들이 올바르게 질서 잡혀 있을 때 공동체, 즉 국가에 정의가 실현된다. 이 세 가지 기본관계란 첫째 개인 간의 관계, 둘째 개인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계, 셋째 사회 전체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정의의 세 가지 기본 형태를 도출한다. 고전적 형태인 ‘교환의 정의’, 권력을 가진 자와 이 권력에 내맡겨진 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배분의 정의’, 사회 전체에 대한 구성원의 관계를 질서 지우는 ‘법률적 정의’가 그것이다.

정의론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 중 ‘배분의 정의’다. 여기서는 공익을 책임지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 ‘각자의 몫’이 정해진다. 가령 어떤 사람이 집을 팔 때 파는 사람에게 돌아올 몫을 제3자로 하여금 정하게 할 수도 있고, 파는 사람이 그냥 값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진으로 무너진 집에 대해서는 이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보상해 주는 방식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환의 정의에서는 양적인 조정이 문제되지만 배분의 정의에서는 균형 잡힌 조정이 문제가 된다는 ‘배분의 정의’의 분석을 통해 저자는 공동체의 권력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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