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구조되던 당시처럼 기뻐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할 텐데….” 43년 전 16일 만에 매몰된 광산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김창선 씨(79·사진)는 13일 하루 종일 칠레의 매몰 광원 구조 소식을 전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갱도에서 한 사람 두 사람 구조되는 광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생환 당시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사고는 1967년 8월 22일 충남 청양군 남양면(옛 사양면) 구룡리 구봉금광에서 갱도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로 광원이었던 김 씨가 수직갱도에 갇히면서 일어났다.
“밥이 제일 먼저 생각났고, 그 다음으로 마누라와 어린 자식들이 떠오르더군. 열흘 정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몸이 말라붙어 가더라고. 갱도 한편에서 간간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도시락 뚜껑에 받아 마셨지.”
김 씨는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상황에서는 꼭 살아야 한다는 희망이 없으면 죽는다”며 “아마도 칠레 광원들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125m 갱내에 매몰됐던 김 씨의 구조작업은 모든 언론과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비서관을 보내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등 각계 유명인사가 앞다투어 현장을 찾았다. 김 씨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9월 6일 갱도에 매몰된 지 15일 8시간 35분(368시간 35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당시 광산에 갇혔다가 구조된 시간으로는 ‘세계신기록’이었다. 구출된 김 씨는 헬기에 태워져 서울 메디칼센터(현 국립중앙의료원)로 옮겨졌다. 병원 측은 특별 주치의를 배정하는 등 ‘초특급 대우’를 했다.
그는 생환 이후 부여 제사공장과 논산 식품공장에서 65세까지 일하다 현재는 부여읍 쌍북리에서 부인 김금순 씨(74)와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김 씨는 구조 당시 일부 언론을 통해 성이 양 씨로 알려진 데 대해 “황해도 출신으로 1·4후퇴 때 내려와 군대에 갔는데 병역기록에 잘못 기재되는 바람에 각종 기록이 양 씨로 됐다”며 “구조 이후 김 씨 성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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