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중이에요. 일을 많이 해야 될 때이긴 한데 전 제 시간이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요. 내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지방 촬영 중)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서울 집으로 올라가요. 내 집 내 공간에서 나로서 있는 시간이 절실해요. 그래서 바로 작품에 들어가야 하나, 내 자리로 돌아와서 나로서의 시간을 보내야 하나 정말 크게 고민하고 있어요."
-아인 씨는 배우에 참 잘 어울리는 사람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우하면서 어떻게 살까 싶기도 해요.
그가 "약간 잘난 척을 해야 하니 어느 정도 자아도취가 있다고 전제하고" 답을 하겠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트위터에 누가 '유아인 씨의 비주류적인 느낌이 참 좋았는데 '성스'가 끝나면 그 느낌이 사라질까봐 걱정'이라는 글을 남겼어요. 음… 주류 비주류가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대중적인 것이 주류, 그렇지 않은 것이 비주류라면, 비주류를 주류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그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 일을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일을 놓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마니아적인 비주류 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연예인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가가 성공의 척도잖아요. 그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비주류적인 성향을 버리고 주류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준다면 그게 주류가 되는 길이니 좀 더 영악해지려고 노력해요."
-그런 점들이 '성스'를 선택한 이유였나요? "그럼요. '성스'는 흥행적 요소를 모두 갖춘 대중적인 작품이에요. 로맨틱코미디물이라고 하죠. 물론 뚜껑을 열어 본 '성스'는 단순한 로맨틱코미디는 아니었지만 그런 작품에서 아웃사이더, 비주류인 재신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어요. 아, 내가 여기서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었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엄홍식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화려한 조명에 끌려 연예인을 동경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어떤 생각으로 배우가 됐어요? "연예인 되는구나. 이런 생각?"(유아인)
- 그렇게 가볍게 시작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미술로 예고에 진학했고 고2때 오디션을 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예인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게 다에요. 하하하"(유아인)
- 연예인이 왜 되고 싶었죠? "그 때부터 할 말이 많았다보다. 하하하. 표현에 대한 욕구가 정말 큰 것 같아요. 보여줄거야에 대해 도발적이죠. 우리 세대가 그런 것도 있고 그 세대에 제가 잘 맞는 것 같고요."(유아인)
-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나요? "제 기준에서는 만족해요. 일단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건 편집된 모습이니 나 자신을 잘 편집해야겠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 오해받지 않게, 오해받더라도 극복해가면서, 착각했던 부분들 역전시켜 가면서, 선입견은 반전시켜 가면서 잘 편집해 왔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점에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고 촌스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란 사람을 내가 효과적으로 잘 썼으면 좋겠어요."
▶"'성스' 결말은 좌절로 끝났으면 좋겠다."
-'내가 맡은 캐릭터 중 마음에 들지 않았던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꿨다'고 한 적이 있어요. 재신도 바꾼 것이 있나요?
"많죠. 재신은 정말 전형적이었어요. 남자다운 모습은 그냥 딱 짐승남. 로맨틱코미디물이 가지는 성격상 오그라드는 대사들도 많았고요. 드라마 촬영 시작하기 전에도 말씀드렸고, 지금도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데 기름기를 많이 빼려고 했어요. 100% 만족한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짐승남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어요."
-조금 다른 짐승남이란? "기존의 짐승남은 근육 속에 갇힌 인물인데 제가 생각하는 짐승남은 풀어진 사람, 틀이 없는 사람이에요. 울타리에 가둬놓은 짐승이 아닌 정말 날 것의 산짐승 같은 짐승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팬들 사이에서 유아인은 시인, 작가로 통한다. 미니홈피와 트위터를 통해 꾸준히 글을 올리기 때문. '작가' 유아인에게 '성스' 결말을 어떻게 내리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아이고…" "하하하" 신음과 웃음을 연달아 내뱉더니 유아인스러운 동시에 문재신스러운 결말을 말했다.
"로맨스야 뭐 선준이(박유천)와 윤희(박민영)가 이루어질테고요, '성스'에는 우리가 성장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좌절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10대 20대들이 보고 그 갑갑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밝은 내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겐 아무런 힘이 없다'는 무기력감을 느낄 수 있게요. 그래서 더 많이 분노하고 더 많이 어찌할 바를 몰랐으면 좋겠거든요."
-그렇다면 재신이가 40대가 된다면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요.
"이정무의 자리(좌의정)까지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그 시대의 홍벽서를 만나서 화살을 맞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정무보다 좀 더 나은 이정무로 살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40대 문재신은 성균관에서 제자들에게 깨어있기를 주문하는 정약용(안내상)과 같은 스승이 됐을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현실 정치인의 좌장이 된다니, 놀라웠다.
"재신이 성균관 유생인 이상 정치 수업을 받고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정치인으로 이정무의 자리에는 올라가야죠. 단, 재신의 방법으로, 재신이만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품고요. 배우 유아인도 같아요. 마흔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면 연기자로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최고는 '누구 같은' 게 아니라 '나 같은' 걸 만드는 겁니다."
20대 유아인은 10대 때 되고 싶었던 20대의 모습과 현재 자신이 가깝다고 했다. 어떤 20대가 되고 싶었냐고 되묻자 "저런 형 말고 이런 형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했던 그런 형이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아리송한 답이 돌아왔다. 또 40대 유아인은 "20대의 나에게 필요했던 어른이 이런 어른이 아니었을까 싶은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또 아리송했다.
"항상 바라고 꿈꾸는 것들이 있는데 현실 속에서 그런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 있잖아요. 20대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 내 옆자리에 있었으면 했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도 어른이 되어 있겠지만 지금의 어른들보다 더 나은 모습이면 좋겠어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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