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일 열린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 특히나 흥미로웠던 만남의 대상 중 한 명이 대만의 차이밍량(蔡明亮·53) 감독이었습니다. 예술영화 만들기의 고단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는 "요즘 쏟아지는 상업영화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독설을 뱉었습니다.
내심 시원하고 반가웠습니다. 실은 고민이었거든요.
'왜 요즘은 영화들 맛이 죄다 이렇게 김빠진 콜라 같을까.'
무릇 모든 심상(心想)의 근본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화 '신의 물방울' 중 위염으로 미각의 감도가 나빠진 것을 모르고 부쇼네를 불평했던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내 눈과 마음이 닳아빠지고 짓이겨지고 헐거워져서 좋은 영화들을 흥미롭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영화는 다 괜찮은데 내가 이상해진 걸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조금은 위로할 수 있을 작은 근거 하나를 찾은 듯 했습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차이밍량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겨울,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애정만세(愛情萬歲)'를 함께 보자고 같은 과 친구 두 명을 꼬여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을 찾았습니다. 객석은 거의 텅 비어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친구들의 원망을 달래기 위해 노래방 요금과 저녁 값을 쏴야 했습니다.
"야, 뭐 저런 걸 보자고 했냐? 넌 정말 좋디? 이 영화가?"
정색하고 화를 낸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비슷한, 뭔가 좀 '폼 나게 애잔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그 녀석들은 영화가 기대와 다르다는 핑계로 추천자에게 밥값을 덮어씌우려 한 것이었고, 저는 외롭지 않게 영화를 보게 해 준 친구들에게 기꺼이 유흥비와 식대를 지불했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단조롭습니다. 부동산업자 양귀매, 게이 세일즈맨 이강생, 옷장수 진소영의 호기심과 욕망으로 얽힌 만남 이야기. 비주얼과 스토리텔링은 푸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송두리째 감정을 거세한 듯 필요 또는 욕망에 따라 최소한의 관계만을 맺습니다. 감정을 스스로 버렸다기보다는, 갈구하기는 하는데 느낄 수 없는 '감정불구'가 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관계를 열망하면서도 실질적인 맺어짐으로 인한 번거로움은 슬슬 피하는 사람들. 빈 아파트 열쇠를 허락 없이 손에 넣고 몰래 드나드는 두 남자는 그 특이한 만남을 특별한 관계로 확장하지 않습니다. 영화 말미 양귀매가 한밤중에 남자 품을 찾아가 안기는 것은 이성 또는 사람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저 불면증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죠.
분명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거의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일에 치여 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욕조에 앉아서 깜박깜박 졸다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구나' 할 때가, 저는 가끔 있습니다. 차이밍량 감독이 '애정만세'에서 대화와 음악을 배제한 것은 아마 형언하기 어려운, 낱낱이 쪼개진 채로 비틀비틀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그런 심상을 영화로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깊이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 이야기였지만 라스트 신에서 10여 분 동안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통곡하던 양귀매의 비참하게 차가운 얼굴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시원하게 울고 싶은데, 눈물도 울음소리도 마음만큼 확 터지지 않을 때의 표정. 2. 이번 원고를 마감하기 전 '대중적으로, 섹시하게 써 달라'는 요청(명령?)을 받았습니다. 문자메시지가 찍힌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일까. 어떻게 써야 할까.
차이밍량 감독은 "나는 대중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내 영화는 세계 영화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시장과 타협한 적도 없다. 그 덕에 나만의 영화 만드는 스타일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누가 내 영화를 이해해줄까 싶어서 많이 외롭긴 하다. 그래도 나는 대중의 취향에 발맞춰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내 영화를 통해 소수의 사람들에게라도 아주 작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다."
감히 제가 명받은 '대중성'과 차이밍량 감독이 언급한 '대중성'을 맞대 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연상이 됐을 뿐입니다.
저는 영화는 '상품'이라 봅니다. 티켓 예매와 대기, 친구와의 만남 등에 통틀어 걸리는 반나절의 '시간 값'과 주전부리 포함 1만 원의 '돈 값'을 반드시 해야 하는. 하지만 그 보상 효과를 화끈한 액션, 짜릿한 서스펜스, 므흣한 로맨스만이 잘 낼 수 있다는 식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만든 이의 치열한 손길, 관객을 가르치듯 하지 않는 겸허한 태도, 갈무리에 들인 가식 없는 정성이 배어 있는 고품질 영화는 장르에 상관없이 많은 관객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비자의 만족도는 분명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수천, 수만 가지일 것. 대중성은 어쩌면 과정과 결과로 얻는 것이지 무언가의 '시작'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어울리지 않게) 순진하고 어리석은 믿음. 맞습니다.
차이밍량 감독은 대중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려하지 못하는, 고려할 센스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자꾸 개인적인 얘기만 변화 없이 반복한다고 했던 칸 국제영화제 몇몇 심사위원들의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지나친 자만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배급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영사기를 들고 지방 곳곳 극장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을 만났다는 그의 진지함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내 새 영화 '얼굴'을 배급사에 맡겨 극장에 걸었다면 상영 시간과 회수가 지극히 제한됐을 거다. 스스로 돌아다닌 덕에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다.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준 것은 이런 노력을 좋게 봐 준 덕인 듯하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태도에 조금이나마 신선한 변화를 준 것 같아 뿌듯한 경험이었다."
차이밍량 감독의 말대로 "경제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세상"입니다.
대중성이라는 말도 아마 그에 맞물린 대상의 경제적 가치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할 겁니다. '글의 대중성'이라면 읽는 이의 관심도, 인터넷에 게재하는 칼럼이라면 아마도 클릭 수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만약에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 '톡톡 튀는' '맛깔스러운' '섹시한' 글을 써야 한다면, 저는 아마 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방향으로는 저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입니다.
"돈의 흐름이 사람들의 삶을 끌어가는 세상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돈의 흐름에만 맞춰서 만들어지는 영화. 갈수록 재미와 가치가 떨어진다. 작품…? 그저 산업 활동에 의해 찍어져 나오는 생산물일 뿐이다."
차이밍량 감독은 "나는 영화가 사람을 깊은 사고로 유도할 수 있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영화를 만났을 때 가졌던 어떤 '매혹'이 그를 지금 영화 일을 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해 주는 힘일 것입니다.
그저 각자가 매혹된 것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집중하는 것. 그 결과물의 대중성은 그저 의도하지 않은 운에 의해 따라붙는 것 아닐지. 요즘 영화나 드라마가 시들시들 재미없어지고 있는 것은 '이렇게 해야 대중이 좋아한다'는 누적 데이터를 미리 너무 충실히 고려하기 때문 아닐지. 그 데이터에 의존해 안전운행을 하려는 자본의 무게가 창작자의 재기발랄함을 짓눌러 뭉개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시 그냥 제 영혼과 마음의 '위염' 탓은 아닐지에 대해서도, 다시 곰곰 반성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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