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음악의 극적인 변신…반전과 평화
●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인간의 평화와 해방을 위한 실천"
20세기와 함께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대중음악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기득권에 순응적인 음악 상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청년 전위들이 등장하면서 이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음악은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치명적인 문화적 무기가 되었다.
이 힘의 근원은 이미 흑인들의 블루스에서 증명되었듯 민중의 가슴 속에 내재한 민요 정신이다. 우리에게 아일랜드 지방의 민요로 널리 알려져 있는 'Danny boy'('아 목동아'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 역시 전쟁에 출정한, 그러나 전사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부모의 심정을 노래한 명곡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엔 아일랜드 출신의 명테너 존 맥코맥이 불렀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빙 크로스비가 불러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여름은 가고 장미꽃도 지고 말았다… 너는 가고 나는 슬픔을 견뎌야 한다… 나는 개인 날이나 흐린 날도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 전쟁에 대한 가장 처절한 저항은 음악으로부터…
밥 딜런을 위시한 60년대 음악가들에게 이 민요정신을 일깨워 준 선각자들은 미국 포크음악의 아버지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였다.
특히 치열한 마르크시스트였던 피트 시거는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에게 노래로 맞선 인물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은 반전의 대표적인 노래로서 수많은 후예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흑인 민요의 선율에 소련 작가 솔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읽으며 영감을 가져왔다는 가사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이 노래의 구조는 대단히 단순하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는 화두로 시작한 노래는 꽃들은 소녀들이 따 갔고, 소녀들은 소년들에게 갔으며, 소년들은 병사로 끌려갔고, 병사들은 묘지로 끌려가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지막 5절은 그 묘지들이 꽃들로 뒤덮히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되풀이되는 숙명의 연기(緣起)를 처절하게 묘파한다.
피트 시거와 밥 딜런, 조안 바에즈 혹은 'Eve of destruction' 같은 명곡을 만든 배리 맥과이어 같은 반전 포크음악인들은 평화를 향한 의지를 문화적 행동으로 제도화한 첫 예술인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가사는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던 포크 음악이 지성적인 노래말의 메시지로 반전 평화를 주창했다면 플라워 무브먼트로 요약되는 1960년대의 반문화 커뮤니티인 히피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을 통해 몸의 본능과 명상적인 초월의지로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자유 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적인 모든 질서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폭력적인 지배/피지배 관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일부일처의 가족 제도 또한 이기적인 가족제도를 재생산하는 부르주아적 악습이라고 생각했다.
■ 자본주의 주류 질서에 항거한 히피와 사이키델릭
히피들이 머리를 길렀던 것은 '나인투파이브(9 to 5)'의 규칙적인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항거였고, 이들이 공동체 내 프리섹스를 실현한 것도 배타적인 소유욕을 벗어나 인간의 관계를 사랑과 평화의 질서로 되돌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또한 이들이 LSD와 같은 약물에 심취했던 것은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욕망을 원해서라기보다는 이완된 환각 속에서 새로운 유토피아적인 신질서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청년 문화의 이상은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정점으로 퇴락의 운명을 만나게 되지만 이미 전 세계에 이들의 이상주의가 파종되고 난 뒤였다.
미국과 20세기 후반의 패권을 나누었던 소비에트의 위대한 로망스들도 거개가 전쟁의 고통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소비에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가장 많은 인명이 전쟁에 희생된 나라다. 따라서 이 주제로 너무나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지고 불려졌다.
이 노래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노래는 아마도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 음악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던 러시아의 음악인 이오시프 코브존의 '백학'일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월드뮤직이라는 새로운 대안의 깃발 아래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고 있는 수많은 음악이 존재한다.
가령 그리스와 터키 같은 발칸과 아나톨리아 반도의 유서 깊은 음악들, 인도네시아와 인도차이나 반도의 찬란한 음악 유산들, 이슬람과 힌두의 종교음악들은 물론 가장 오랜 크로스오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모두 이와 같은 궁극적 이념을 구현하려는 예술적 몸부림의 표상이다.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유한적인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한 평화적 본능과 가장 닮아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본질 앞에 구별과 차별 혹은 편견과 독선이야말로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폭력이다.
세계는 넓고 음악은 많다. 그러나 인간의 평화와 해방을 향한 음악적 의지는 수많은 유혹 앞에서 여전히 시련에 직면해 있으며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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