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한국에서 시도된 본격 수학소설, 김태연의 ‘이것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2일 20시 39분


● "미분과 적분을 알지 못하면 곧 중세인이나 마찬가지"
● 현대 첨단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신비한 수학의 세계로의 초대

몇 년 전 미국에서 수학을 주제로 한 수사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드라마 이름은 '넘버스(Numbers)'였지만 내용은 한마디로 '수학수사대'로 부를 만했다. 난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이 수학자라는 사실만 다를 뿐 세계적인 히트작인 제리 브룩하이머의 '과학수사대 : CSI'와 비슷했다.

넘버스는 각종 수학공식과 원리를 첨단그래픽으로 펼쳐내 일상의 현실과 추상적 수학의 세계가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흥미롭게 보여줬다. 이 같은 과학드라마가 탄생한 배경에는 마니아적인 장르까지도 소화해 내는 규모의 문화시장, 그리고 과학을 대중문화 소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토양이 자리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어렵고 따분한 암기과목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문제다(동아 DB)
수학은 우리에게 어렵고 따분한 암기과목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문제다(동아 DB)

■수학 소설? 문제를 푸는 법을 알려주나?

국내에서도 논술과 수능시험이 부각되면서 철학과 인문 교양서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자연 과학이나 공학 같은 소재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 사용돼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기초학문 중의 기초학문' 이라는 수학은 대중문화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수학의 정석'이란 유명 학습서적이 40년간 4000만부가 팔린 나라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수학만큼은 거의 모든 국민의 공통적인 기피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학은 생각하는 학문인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수학이 너무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아요. 수학이 즐길 수 있는 학문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생각에서 집필하게 됐습니다."(소설가 김태연)

공학도 출신인 김태연(50) 작가가 최근 발표한 소설 '이것이다'(시간여행)는 난해한 현대수학을 정면으로 다룬다. 한창 수학 이론을 학습중인 중고교생들은 물론이고 수학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인 일반인까지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이다.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공부하다 재학 중 신인공모전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는 김태연. 이제껏 이과적 소설이란 그 소재 자체에 함몰된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 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학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수학을 세상의 모든 작동원리와 우주 형태를 알아내는 유일한 수단으로 설정한 것이다.

물론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다'는 수학 천재의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여기서 언급된 '수학'이란 피타고라라스 이래로 철학자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우주의 구성 원리로서의 수'와 '철학의 절대 방법론'에 가깝다.

수학의 근본적 출발인 점(點)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점'이라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존재는 이야기가 전개되면 점차 그 크기를 키워가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 사소한 한 점은 소설 속에서 집합, 위상수학, 상대성이론, 해석학, 기하학 심지어 대통일장이론의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두루 엉키며 독자들을 수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을 사랑하는 풍류작가 김태연. 소중한 앎을 보통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진정한 구도자의 작품이다."(김홍종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수학의 원리를 좇다 보면 결국 우주의 근본과 맞닿게 된다. 수학의 매력이자 무서움이다.(연합)
수학의 원리를 좇다 보면 결국 우주의 근본과 맞닿게 된다. 수학의 매력이자 무서움이다.(연합)

■인간과 우주의 절대 지식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수학의 세계

본격 수학소설을 표방했다지만 이문열 작가 스타일의 '구도 소설' '성장 소설'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마치 소설 속의 화자가 된 듯 친절하게 그 점에 엉킨 수학의 역사와 학문적 스캔들을 세세하게 풀어 놓는다. 자연스럽게 수학이란 학문은 첨단기술이자 일상생활이 된 휴대전화와 컴퓨터, 반도체, 우주에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적 재미와 구도적인 진지함 속에서 간간이 계몽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점은 아쉽다. 이를테면 저자가 수학 선진국인 일본과 미국 등과 비교하며 수학을 무시하는 한국인의 '수학 DNA 결핍'을 질타하는 대목이 그렇다.

수학의 노벨상 격인 '필즈상'의 수상여부는 물론이고 존재유무도 모르는 한국인들이 태반인게 현실이라, 저자가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이 때문에 소설적 재미가 반감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의 수학소설은 어려운 수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소설을 활용하는 정도에 머물렀다"며 "내 소설은 다소 거칠지만 지식소설, 융합소설 분야를 개척해보고 싶다는 포부 아래 수학과 소설을 융합한 작은 작품"이라는 작가의 설명에는 고개가 끄덕여 진다.

소설을 읽는 재미와 인류의 근본 지식을 탐구하려는 치열한 구도 정신이 조화를 이룬 매우 특이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 책 정보
서명 : 이것이다
저자 : 김태연 / 시간여행
키워드 : 수학소설, 절대지식, 과학
*432쪽, 1만3800원,
한줄평 : 절대 지식을 추구하는 수학의 신비로운 스토리…지나치게 계몽적인 대목이 아쉬움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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