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관하여’ 20선]<18>정의의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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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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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은 사람이 타인에게 마음을 활짝 열도록 고무한다. 자기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은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도덕적 존중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의 ‘호의’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에는 이웃을 특별히 배려하게 만드는 본성이 스며들게 된다.”》

저자인 악셀 호네트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교수(61)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뒤를 이어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고 있는 사회철학자다. 그는 오늘날 사회철학이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로 독일어권에서의 과도한 영역 확장과 영미권에서의 지나친 영역 제한을 모두 꼽았다. 그리고 그런 곤경에 대응하려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회발전 과정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한다.

이 책은 가족 또는 사랑이라는 대상과 관념을 초점으로 살펴본 정의(正義)와 정서적 결속 간의 도덕논쟁, 인권정책의 조건과 한계, 반성적 협동으로서의 민주주의 등 사회철학적 주제와 관련해 풀어낸 13개의 논문을 묶은 것이다. 첫 장에서는 사회철학의 과제를 사회적 병리현상의 진단으로 이해한 사유 전통의 윤곽을 고찰했다. 사회철학적 반성이란 것을 처음 시작한 장 자크 루소의 문명비판이 그 기점. 루소는 ‘분열’ ‘소외’ 등의 개념을 통해 근대의 사회발전 과정을 병리적 현상으로 파악하게 하는 윤리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사회학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철학 담론의 거대화 이야기를 거쳐 “사회철학이란 사회적 삶의 성공적 형태에 대한 척도를 논의하는 반성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논문마다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재료는 각각 달라도 그 시선의 흐름은 모두 사회윤리 또는 도덕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다. 얄팍한 카운슬링 책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사랑과 도덕: 정서적 결속의 도덕적 내용에 대하여’라는 장을 들춰볼 만하다. 저자는 “사랑은 인간이 타인에게 취하는 태도 중 일상생활에서는 언제나 가장 큰 관심거리지만 철학에서는 미미한 역할만 수행했다”고 운을 뗀다.

“도덕 개념의 방향이 너무나 강하게 불편부당성 원칙에 맞춰짐으로 인해 다양한 유형의 개인적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협소한 해석을 통해 등장한 메타윤리학이 도덕명제의 논리적 지위에만 몰두함으로써 사랑의 경험을 규범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데 장애를 초래했다.”

호네트 교수는 이어 로저 E 램의 ‘사랑과 이성’을 인용해 ‘존경’과 ‘사랑’의 경계를 긋는다. 사람이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는 이유는 그 대상이 어떤 유혹을 용감하게 물리칠 수 있음을 경험했거나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사랑은 이 존경 위에 대체 불가능성, 즉 유일무이성이라는 신념을 추가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로에 대한 다양한 기대 간의 상호작용 때문에 모든 형태의 사랑은 극도의 개별성을 드러낸다. 사랑이란 그저 타인이 현재 갖고 있는 유일무이함뿐 아니라 미래에 그가 가질 유일무이한 정체성에 대해서도 애정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집착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라는 결론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 쪽으로 시선을 옮긴 다른 글로 이어진다. 특히 ‘탈(脫)전통적 공동체’라는 주제에서 사회적 가치평가를 둘러싼 경쟁 중에 개인이 ‘고통스러운 무시의 경험’과 부닥치는 것을 피할 길을 고민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에 앞서 실린 ‘무시의 사회적 동학(動學)’에서 무시로 인한 수치심과 분노의 반응을 사회적 불의와 연결한 것은 사회철학을 통해 저자가 추구하는 정의의 근본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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