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정문 수정 절대 불가 방침은 미국 측 요구로 시작된 이번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는 협상의 마지노선이다. 한국이 미국의 자동차 분야 연료소비효율 규제 완화 요구를 수용하면서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한미 FTA 논의가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정부의 입장 때문이다.
○ 국회 비준 동의안 거쳐야 하는 협정문 수정은 불가
우리 정부가 ‘협정문 수정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명분상의 이유는 이번 협상이 재협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협상 전부터 이미 여러 차례 “협정문의 점 하나라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이미 양측의 ‘이익의 균형’이 반영돼 있는 협정문에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로 재개된 추가 논의의 결과로 일부라도 손을 댈 경우 우리의 이익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한 발언이다.
실리적인 이유로는 국회의 비준 동의안 통과를 피하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등 야당에서 ‘밀실 협상’ ‘굴욕 외교’라는 비판과 함께 ‘비준 동의안 반대’ 입장이 당론으로 정해진 상태에서 또다시 국회에서 비준 동의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피하자는 계산이다. 합의문 원안에 영향을 미치는 부속서와 달리 양국 장관 간의 양해각서나 장관 고시는 국회의 비준 동의안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 의원(한나라당)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 내용을 장관 고시를 통해 고지하면 되고 비준 동의안을 외통위에서 따로 심의할 필요가 없다”며 “올 4월 이미 외통위를 통과한 한미 FTA 원안에 대한 비준 동의안은 본회의에서 바로 통과하면 되고 야당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 통과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국에 수출되는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해 10년간 25% 관세 철폐 기한 연장, 한-유럽연합(EU) FTA에서 인정하고 있는 관세 환급제 상한 제한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협정문 원안에 손을 대야 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미국, 쇠고기 ‘히든카드’로 활용할 가능성 있어
쇠고기 문제 역시 막판 협상의 판을 뒤흔들 수 있다. 8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지만 아직까지 논의하진 않았다”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쇠고기 문제가 미국 측의 마지막 ‘히든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관련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쇠고기 문제를 들고 나와 자동차 관련 요구를 관철하려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 당시 그동안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던 쌀 문제를 막바지에 들고 나와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 전례가 있다.
미국이 공식적으론 ‘쇠고기와 한미 FTA는 별개’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정리된다고 해도 추후 쇠고기 시장 개방 계획 마련을 비공식적으로 촉구하는 등 추가 요구를 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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