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국 日 ‘영토 외교’ 목매… ‘경제’ 빠진 APEC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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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中-러시아와 정상회담 성사에 치중
22분, 43분씩 ‘짧은 만남’ 기대 못미쳐

14일 폐막한 요코하마(橫濱)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의장국인 일본이 영토안보 외교에 치중하는 바람에 아태지역 경제협력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영토분쟁으로 외교 관계가 손상된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 사활을 걸 정도로 다급한 모습이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과시한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와 비교해 “(일본 정부) 머릿속에 온통 중국과의 정상회담 실현뿐인 APEC였다”고 꼬집었다.

○ “외교 파국은 피하자” 의지 표명에만 합의

일본 정부는 특히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공을 들였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의 여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어 중-일 외교관계 복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일 오후 어렵사리 실현된 정상회담은 질과 양 모두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다. 양국 정상은 22분의 짧은 회담 동안 외교관계의 파국을 피하자는 최소한의 ‘의지 표명’에 합의했을 뿐이다.

14일 일본 민영 TV인 TBS가 긴급 편성한 중-일 정상회담 관련 좌담 프로그램에서 한 외교 전문가는 “통역 시간을 빼면 대화를 나눈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며 “얼마나 알맹이 있는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꽉 막힌 대중 외교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회담”이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중-일 정상회담에 이어 열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역시 분쟁지역인 쿠릴 열도(일본의 북방영토)에 대해 양측 모두 원칙론적인 주장만 되풀이했을 뿐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다. 43분 동안 열린 회담에서 간 총리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달 초 쿠릴 열도 중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를 방문한 데 대해 “일본 국민의 감정상 수용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최근 주러 일본대사의 소환 조치를 염두에 둔 듯 “감정적 성명이나 행동으로는 사태를 개선할 수 없다”며 싸늘하게 응수했다.

○ 믿을 건 미국뿐…후텐마도 합의대로 이전

중국 러시아와 영토 문제 협공을 받고 있는 일본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간 총리는 14일 APEC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沖繩) 현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오키나와 내 이전을 명기한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는 동시에 오키나와 주민의 부담 경감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일동맹 불협화음의 불씨였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간 총리는 13일 오전 1시간에 걸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안전보장,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3개 분야를 집중 논의했고 내년 봄 간 총리의 미국 방문에 맞춰 공동성명으로 내용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또 간 총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의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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