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호주전훈때 심장혈관 이상 판정
급히 귀국후 수술대…가족들에 함구령
“걱정할까 감췄는데 크게 보답해주네요”
마린보이의 금빛 질주. 그 뒤에는 심장혈관수술 사실도 아들에게 숨긴, 애타는 부정(父情)이 있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개막 한 달 전이었다. 박태환(21·단국대)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수시로 지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아들의 경기일정표였다. 그는 “올림픽 때보다 더 초조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정표를 볼 때마다 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올 여름의 일을 떠올렸다.
박인호 씨는 전지훈련을 떠난 아들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박태환은 이미 4월20일 출국해 호주 브리즈번에서 훈련캠프를 차린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기쁨과 반가움도 잠시. 아버지는 잠을 청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더운 날씨 때문인가, 스트레스 때문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친 박인호 씨는 귀국 후 정밀검진을 받았다. 심장혈관이상이라는 판정.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로 수술대에 올랐지만, 가족 내에서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한참 뒤에야 아들에게 “그냥 병원 한 번 다녀왔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참 페이스를 올리고 있는 아들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박태환도 가벼운 마음으로 수영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7월9일,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박태환은 “다시 한 번 수영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며 따뜻한 11월을 예고했다. “즐거움”이란 말에 아버지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한 편에서 ‘역시 얘기 안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6일 광저우아오티아쿠아틱센터. 남자자유형 400m 예선이 열리던 아침부터 아버지는 수영장에 진을 쳤다. “태환이 경기 보러 외국 나와도 숙소랑 수영장 밖에 몰라. 아들놈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나다니고 싶겠어?” 그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앉아 수영장을 주시할 뿐이었다. “오후에는 태환이처럼 빨간색 옷 입고 와서 마음이나 전해야겠다”는 말만 남긴 채…. 누군가는 뜨거운 함성으로 박태환에게 성원을 보내지만, 또 누군가는 고요한 침묵으로 박태환의 곁을 지킨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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