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시민, 유리창 깨 대규모 희생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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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남기형씨 소화기 들고 달려가 고가사다리차 타고 탈출 도와… 손가락 봉합수술 “할일 했을뿐”

22일 화재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하다 다친 남기형 씨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누워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22일 화재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하다 다친 남기형 씨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누워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앗 불이다!”

22일 오후 4시 55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보광훼미리마트 본사 건물에서 근무 중이던 남기형 POS 개발팀장(41)은 맞은편 건물 3층 창문 밖으로 치솟는 불길을 목격했다. 남 팀장은 사무실에 있던 소화기를 손에 든 채 정장 차림 그대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눈으로 확인한 맞은편 화재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작은 창문 밖으로 네댓 명이 입만 내민 채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곧 질식할 것처럼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이날 밤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 병원 병실에서 만난 남 팀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당시 남 팀장에 이어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고가사다리를 연결한 채 화재 현장에 들어가려고 장비를 착용하고 호스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더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남 팀장은 그대로 맨몸으로 고가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3층 유리창 앞에 도착하자 입만 보이던 사람들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가 살려달라며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소화기로 제 양 옆 창문을 모두 깼죠.” 유리창이 깨지자 건물 안에 갇혀 있던 검은 연기가 무섭게 밀려 나왔다. 독한 연기에 남 팀장 본인도 순간 휘청했지만 유리 파편이 튀어 손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창문을 계속 깼다. 사람이 나올 만한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뒤 남 팀장은 창문 앞에 있던 시민 4, 5명과 함께 순서대로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본 남 팀장의 동료들은 “평소에도 의리를 중시하고 의협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남 팀장은 구조 과정에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인대가 찢어져 이날 병원에서 한 시간가량 봉합수술을 받았다. “유리 파편이 얼굴로 쏟아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 와서 해보면 조금 아찔하네요. 그래도 저보다 더 많이 다친 분들이 걱정됩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동영상=만삭 아내 뒤로하고 불길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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