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도발]부상자들이 전하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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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쾅’소리 함께 목에서 피 왈칵… “정신차려라” 외침도 아득히

몸도 마음도 상처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서 부상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2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안정을 취하고 있다. 국군수도병원에는 중상자 6명과 경상자 10명이 입원해 있다. 성남=국회사진기자단
몸도 마음도 상처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서 부상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2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안정을 취하고 있다. 국군수도병원에는 중상자 6명과 경상자 10명이 입원해 있다. 성남=국회사진기자단
“쉬이익, 쾅, 쾅.”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목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정신 차려”라고 외쳤다. 그러나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결국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중상을 입은 해병대 연평부대 김지용 상병(21)은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 악몽의 순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김 상병 등 부상자들은 참혹한 전장(戰場)에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김 상병은 피격 직전 고 서정우 하사(21) 등 휴가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연평도 나루터에 다녀오던 중이었다. 김 상병이 탄 차량이 부대로 돌아오던 중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놀라 쓰러져 있던 마을 주민 4, 5명과 함께 부대로 복귀했다. 이때 2차 포격이 부대 곳곳을 강타했고 김 상병은 목과 팔 다리 등에 파편을 맞았다.

김 상병이 데려다 준 서 하사는 공격이 시작되자 부대 복귀 명령을 받고 동료 두 명과 함께 소속부대로 걸어 돌아오던 중 화를 입었다. 이어지는 포탄 세례에 세 명의 병사는 혼신을 다해 눈 앞 방공포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튀는 파편으로 방공포를 300m 앞에 둔 채 길에 쓰러졌다. 후임들은 간신히 방공포로 피신했지만 서 하사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발목을 잃고 과다출혈 및 쇼크 등으로 즉사했다. 고 문광욱 일병(19)은 훈련을 받던 중 막사 밖으로 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다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았다. 김태은 해병대 사령본부 정훈공보실장은 “문 일병이 엎드린 상태에서 포탄 파편이 가슴을 관통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진권 일병(20)은 당시 내무반 밖에 있다가 화를 당했다. 김 일병 아버지는 “호국훈련에 참가하고 오는 길에 피해를 본 것 같다”며 “내무반 안에 있던 동료들은 다행히 무사했다”고 전했다. 김 일병은 파편이 복부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고 이날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규동 일병(19)은 부대에서 훈련 중 다리가 아파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갑자기 날아온 포탄 파편에 얼굴을 다쳤다. 얼굴 15cm가량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은 한 일병은 파편을 제거하고 봉합하는 응급수술을 받고 현재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다. 파편이 조금만 비켜갔다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이었다. 어머니 이필선 씨(50)는 “아들이 한 발짝 더 옮겼으면 얼굴 전체가 모두 날아갈 수 있었다”며 “봉합한 얼굴 부위는 성형수술로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 “전우야, 살아서 미안하다”

“내 아들 정우야”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연평도 전투전사자 합동분향소에서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씨(오른쪽)가 헌화를 하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분향소에는 천안함 46용사 유가족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내 아들 정우야”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율동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연평도 전투전사자 합동분향소에서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씨(오른쪽)가 헌화를 하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분향소에는 천안함 46용사 유가족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최주호 병장(21)은 고 서 하사와 함께 휴가를 나가던 길이었다. 즐거운 휴가 길이 생사를 가른 운명의 길이 됐다. 최 병장은 수술 뒤 의식을 되찾자마자 동기 서 하사의 안부부터 물었다.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아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전우의 전사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최덕주 씨(47)는 “아들과 서 하사는 매우 친한 동기였고 이날도 함께 휴가를 나오다 변을 당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정말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지용 상병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24일 약 4시간에 걸쳐 파편 제거 등을 위한 응급수술을 받은 뒤 일반 병실로 옮겨졌지만 충격 탓에 제대로 잠을 못자고 있다. 심지어 면회 온 부모에게 “엄마, 방금 또 포탄 세 방 쏘지 않았어?”라며 환청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어머니 문정자 씨(47)는 “눈만 감으면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부상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부상자들을 면회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경상자들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팔이나 다리에 파편이 박히거나 골절상을 입어 깁스를 한 경우가 많았다”며 “당시 충격이 너무 커 상세한 정황을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상자와 가족들은 방금 수술을 마친 몸인데도 “전사한 동료에 대한 애통함과 함께 이번 일로 해병대 지원이 줄어들지나 않을까 걱정했다”고 공 의원은 전했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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