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불길 위에서도/노래하고 춤을 춰요/welcome to the welcome to the show.” 가볍고 경쾌하던 노래가 갑자기 어둡게 변한다. 보컬도 음악에 맞춰 낮아진다. “때론 도망가고 싶죠/너무 힘이 들고 지쳐/텅 빈 객석에 앉아 한숨 내뱉을 때….” 옆에 선 기타리스트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닦는 몸짓을 한다. 객석도 이들이 연출하는 분위기에 따라 무거워진다. 그 순간 다시 커지는 기타 소리와 발랄함을 되찾은 목소리. 무대가 밝아진다. “즐거움 가득한 그대 눈빛 보이면/라라라라라라라라….”(노래 ‘Welcome to the show’ 중)》
가사에 맞춰 이뤄지는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음악과 퍼포먼스를 연결하며 이른바 ‘드라마틱 밴드’를 표방하는 인디 록그룹 ‘제8극장’의 공연 모습이다.
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지하연습실에서 만난 보컬 서상욱(27), 기타 임슬기찬(26), 베이스 함민휘(25), 드럼 조은광(26) 등 멤버들은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파란 재킷과 바지, 남방, 장식꽃…. 같은 계열의 색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 파란색 외에 빨간색 분홍색 등 매번 색깔별로 옷을 맞춰 무대에 오르는 제8극장의 무대에는 서커스의 저글링과 탭댄스, 직접 찍은 동영상이 등장한다.
○ 비틀스와 뮤지컬, 애니메이션…관객을 즐겁게
“만화 같고 영화 같아요.”
제8극장의 무대를 본 팬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긴 반응이다.
멤버들도 “우리 음악엔 어릴 때 좋아하던 ‘Under the Sea’와 같은 만화음악과 비틀스, 브로드웨이 뮤지컬음악, 사춘기에 영향을 받은 1960년대 로큰롤이 접목됐다”고 했다. 경쾌한 가사에 뮤지컬풍의 음악을 하다 보니 자연히 음악에 어울리는 탭댄스, 저글링 등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게 됐고 옷도 색깔별로 맞춰 입게 됐다.
“곡을 만들고 나면 가사에 맞춰 대본을 만들어요. 노래 ‘사랑의 불구덩이’를 부를 땐 기타리스트가 실수로 연주를 틀린 듯한 상황을 만들고 멤버들이 갈등을 겪는 모습도 연출하죠. 관객들이 무대에 빠져들 수 있게요.”
이들은 2008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거리의 악사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고 특유의 경쾌한 음악은 기업 공익광고의 테마송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원민 서교음악자치회장은 제8극장에 대해 “다양한 퍼포먼스와 로큰롤을 접목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디 밴드”라며 “‘장기하와 얼굴들’만큼 인기를 얻을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퍼포먼스가 가미된 음악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부엌과 동네 목욕탕을 빌려 직접 찍은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쇼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관객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관객의 무관심도 있지만 1차적으로는 아티스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 낸 돈이 아깝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해요. 놀이동산 입장권, 영화티켓도 마찬가지죠. 제8극장은 무대에 올라가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하나의 완전한 쇼가 되길 바라요.”
○ 월세 6만 원의 골방에서 탄생한 꿈
제8극장의 출발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월세 6만 원짜리 지하방에서 시작됐다. 2005년 이곳에 혼자 살던 서상욱은 음악동호회 사이트에 자작곡을 올린 함민휘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드럼을 맡을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때 예전에 가출했다며 자신의 집에서 두 달간 지내며 친해진 조은광이 떠올랐다. 다시 조은광이 평소 기타 실력을 높게 평가했던 고교 후배 임슬기찬이 합류해 음악적 동지가 됐다.
2007년 홍익대 라이브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할 당시 밴드 이름은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Magical Mystery Tour)’였다. 비틀스가 부른 동명의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따온 이름으로 밤을 새워 비틀스의 일화와 노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서상욱의 ‘비틀스 사랑’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름으로 겪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름이 너무 길어 공연관계자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잘 모르시더라고요.”(서상욱) “심지어 플래카드에 이름이 잘못 적혀 있기도 했어요.”(임슬기찬)
밴드 이름을 바꾸려고 결심한 서상욱의 머릿속에 ‘파리 제1대학’ ‘하얼빈 제1백화점’ 등이 떠올랐다. “퍼포먼스가 가미된 쇼를 선보이는 우리들만의 특징과 복고풍의 전근대적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팀 이름을 제8극장으로 정했죠.”
왜 하필 ‘8’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1부터 9까지를 하나하나 넣었는데 8이 가장 나았어요. 제4는 ‘제사’ 지내는 것 같고 제6은 음식 이름이고….”
이들이 요즘 준비하는 것은 한층 더 연극적 장치가 더해진 무대다. “연극에서 보면 바다의 경우 물결 모양으로 만든 나무판들이 움직이면서 출렁이는 바다를 표현하잖아요. 아직 홍익대 앞 라이브 무대에선 어렵겠지만 나중에 꼭 그런 연출을 하고 싶어요.”
또 하나의 꿈은 언젠가 프랑스의 한 극장에서 ‘제8극장’ 쇼를 올리는 것. “프랑스 리옹에 제8극장이 있대요. 그것도 연극을 주로 올리는 극장요. 제8극장에서 올리는 ‘제8극장’쇼. 재미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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