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왕자와 거지’처럼 다림이로 잘 놀아본 것 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일 12시 20분


영화 '쩨쩨한 로맨스' 섹스칼럼니스트로 돌아온 최강희

● '최강희=다림?' 사실 나와는 정반대
● 실생활에서도 다림인 척 살아봤더니…
● 팬들 다수가 2030.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역할 계속 맡을 것


"'자연뽕로리타선인장율마'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까요?"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이다. '자연뽕로리타선인장율마'는 배우 최강희(33)의 별명.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강희에게 물으니 너무도 진지하게 "'자연뽕 / 로리타선인장 / 율마' 이렇게 읽으시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사실 별 뜻은 없어요. 지인들이 붙여준 별명들을 쭉 나열해봤더니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같이 재밌어서 붙여본 것 뿐"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참, "'자연뽕'은 섹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같이 있으면 '뽕' 맞은 것처럼 된다는 의미"란다.

'자연 뽕' 배우가 연말을 맞아 영화 '쩨쩨한 로맨스'(감독 김정훈)로 돌아왔다. 이 영화에서 최강희는 실제 경험은 전무하지만 성(性) 서적 수백권을 독파해 이론에는 빠삭한 섹스칼럼니스트 다림 역을 맡았다. 다림은 그림 실력은 뛰어나지만 스토리 창작은 젬병이어서 그리는 만화마다 퇴짜를 맞는 만화가 정배(이선균 분)와 상금 1억원이 걸린 성인만화 공모전을 준비하며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진다.

영화 \'쩨쩨한 로맨스\'에서 성 경험이 많은 척 허세부리는 섹스칼럼니스트 다림 역을 맡은 최강희는 "작품마다 관객수가 \'8\'로 끝난다"며 "이번 영화는 398만 이상 관객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영화 \'쩨쩨한 로맨스\'에서 성 경험이 많은 척 허세부리는 섹스칼럼니스트 다림 역을 맡은 최강희는 "작품마다 관객수가 \'8\'로 끝난다"며 "이번 영화는 398만 이상 관객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다림과 싱크로율 100%? 사실은 0%"

-'쩨쩨한 로맨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어때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찍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라 반응이 어떨지 좀 궁금해요."

-전작들 성적도 좋았는데, 갑자기 흥행에 욕심이 생긴 이유가 있나요?
"제 욕심인가봐요.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확신도 좀 있었고요. 이전까지는 내가 좋은 걸 선택했는데 희한하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작품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에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최측근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대본을 주고 반응을 살펴봤더니 '너랑 잘 어울린다' '네가 하면 잘 하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다림이는 (손을 허공에 뻗어 선을 그리며) 붕붕 떠 있는 느낌인데 실제 저는 가라앉아 있는 사람이거든요. 정 반대인데 사람들이 나랑 잘 맞는다고 말하는 게 재밌는 거예요. '이게 남들이 보는 내 이미지인가? 그렇다면 한 번 해볼까?' 그런 마음이었어요."

-정 반대되는 캐릭터인데 연기할 때는 어땠나요?
"누군가 싱크로율이 높은 건 장점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어요. 싱크로율이 높은 만큼 관객의 기대는 크기 때문에 만족감이 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의외의 연기를 했을 때는 만족감이 배가 될 수 있죠. 그런 면에서는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주 가까운 지인들은 제가 다림이와 안 맞는걸 알고 있잖아요. 그 면에서는 또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고요. 좀 복잡하죠?(웃음)"

-부담감이 컸나요?
"들어가기 전에는 고민을 조금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부담 갖지 않는 편이에요. 상대 배우도 감독님도 끝까지 믿는 스타일이에요. 내가 좋아서 하겠다고 한 이상, 누가 뭐래도 믿어야죠. 그래야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도 '우리 생각이 잘못됐었구나' 인정해 버리면 깨끗하게 끝나는 거니까."

-강희 씨와는 전혀 다른 다림이지만 '최강희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기분은?
"의아했지만 좋았어요. 가라앉아있는 제 모습은 아무도 못 본 거잖아요. 더 보여줄 것이 남아 있다는 건 굉장한 기쁨이에요. 다 쓰고 나면 없는데 아직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까요."

그는 실제 자신의 모습과 상관없이 대중이 최강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저는 누가 '너 그런 편이지?' 물으면 '맞아' 긍정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는 걸 즐겨요. '강희 씨는 액션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저 그런 역할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요. 누가 보는 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 되고 싶어요."

섹스칼럼니스트 다림(최강희)는 섹스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위기에 처하자 "경험 없다고 못쓰면 그럼 해리포터는 마법사가 썼냐?"고 대꾸한다. 사진제공 레몬트리.
섹스칼럼니스트 다림(최강희)는 섹스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위기에 처하자 "경험 없다고 못쓰면 그럼 해리포터는 마법사가 썼냐?"고 대꾸한다. 사진제공 레몬트리.

▶ "'왕자와 거지'처럼 다림이로 잘 놀아본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며 평소 입지 않던 미니스커트도 입었다고 들었어요.
"영화 작업하는 동안에는 평소에도 다림이처럼 굴었어요. 평소엔 그러지 않았는데 갑자기 촬영 들어가서 (두번째 손가락을 볼에 찌르며) 귀여운 척 과한 액션을 하면 제 손이 떨릴 거예요. 전 그런 아이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평소에도 '난 원래 이런 애'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덜 어색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첫 회식부터 핫팬츠입고 못 먹는 술도 받아먹고 노래방에서 예쁜 척하며 그룹 에프엑스의 '누예삐오'도 불렀어요. 저는 그렇게 못하지만 다림이는 그렇게 할테니까요."

그는 "대본 리딩을 하러 갈 때도 이미 어느 정도 다림이로 갔지만, 스태프들은 그런 모습을 평소 최강희라고 생각하기 쉬웠을 것"이라며 "스태프들이 오해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다림으로 살아본 소감은?
"촬영장에서 인기 정말 많았어요. 솔직하고 당당한 여자가 겸손하고 점잖은 여자보다 매력적이게 느껴지는구나 생각했어요. 다 좋아해줬고 넌 정말 자유롭게 사는 것 같다고 부럽다고들 했어요. 그러면 전 또 '맞다'고 했고요. 그런데 '쫑파티'에서 주변에서 또 '누예삐오'를 불러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는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못했어요.(웃음)"

-꽤 힘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요. 재밌었어요. '왕자와 거지'처럼, 다림이로 잘 놀아본 것 같아요."

-'(팔뚝을 들어보이며) 내가 아는 남자들은 다 이만하던데?' '섹스는 기본 3시간 아니냐' 등 대사들이 야해요.
"민망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금기를 깨는 느낌? 빨리 대사해보고 싶고 시원했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를 묻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다 내 경험이니까!"라고 답했다.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궁지에 몰렸을 때 대사인데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하하하."

-영화에서는 한 신만 잘 하면 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이번 영화의 한 신을 꼽는다면?
"(웃음) 이번엔 좀 '스페어'가 많아요. 하나만 걸려라 싶은데… 웃음적으로 많거든요. 화장실에서 똥 싸고 화장지가 없어서 봉변당하는 장면도 재밌고, 모텔에서 정배랑 첫 날밤을 치르게 되는데 글로 배운 성지식들을 총동원해서 현실로 옮기면서 생기는 에피스드도 재밌고요."

생각만해도 재밌나보다. 설명하며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또 그는 "재미는 관객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사항이니 웃음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 '쩨쩨한 로맨스'에서 다시 호흡을 맞춘 이선균(왼쪽)과 최강희. 사진제공 레몬트리.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 '쩨쩨한 로맨스'에서 다시 호흡을 맞춘 이선균(왼쪽)과 최강희. 사진제공 레몬트리.

▶ "'2030 대변인이 돼야 겠다'는 책임감 느낀다"

18살에 청소년드라마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33살이 됐다. 학생 시절엔 학생, 서른 즈음에는 서른 문턱에서 힘겨워하는 역 등 그 나이또래의 일상을 잘 표현하는 역을 주로 맡으며 20, 30대 팬들을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2,30대 여성들에게 강희 씨는 특별한 의미인 것 같아요. 본인도 느끼나요?
"느끼죠. 길 가다보면 제 친구 같은 분들이 다가와서 조곤조곤하게 '저 팬이에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한테 많이 친근감을 느끼고 이입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하고 옷을 입을 때 많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고요. 그래서 '내가 2030의 대변인이 돼야겠구나'라는 책임감도 있어요."

-그런 점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주나요?
"그럼요. '쩨쩨한 로맨스'도 친언니가 유부녀인데 대본을 읽어보더니 '이거 꼭 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나이가 들면 팬들도 3040, 4050으로 바뀔 테고, 그 나이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역을 맡아야겠죠. 7080까지 가게 될까요? 하하하."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부담스러울 때도 있겠어요.
"그런 적은 없었어요. 정말 좋아요. 어떤 모습으로든 쓸모가 있으면 좋은 것 같아요. 누구한테든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은 것 같아요. '떨리는 가슴'이라는 작품을 했었는데 40대 아저씨의 정신적인 친구가 되는 역할이었어요. 사랑이라고 하기엔 바람이지만. 많은 아저씨들이 희망이 생겼다고 좋아해주셨어요. 그런 것도 재밌고요. 영화 '애자' 때도 '오늘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해야겠어요' 그런 쪽지 많이 받았어요. 저는 교훈을 준 적이 없는데 작품을 통해 누군가 변하고, 희망을 갖는 분들이 생긴다는 게 배우로 사는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끝내고는 '연기 사춘기가 시작됐다'고 했고 '애자'는 '첫 작품'이라고 말 했었어요. '쩨쩨한 로맨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계속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앞으로 가고 있긴 한 것 같아요."

-연기한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 중 본인과 가장 닮았던 역은?
"음… '여고괴담'에서 9년 동안 학교 다닌 그 아이."

최강희는 '여고괴담'에서 9년 째 학교에서 떠돌고 있는 귀신 재이 역을 맡았다.
"('진짜' 답을 기다리며) 하하하."(기자)
"…"(최강희)
"진짜요?"(기자)
"네! 전 많이 가라앉아있고 재이랑 비슷해요."(최강희)

-그렇다면 가장 달랐던 역은요?
"애자와 다림이요. 전 애자처럼 세지도, 다림이처럼 뻔뻔하지도 못해요."

인터뷰를 끝내고 사인을 요청했다. "평소처럼 할게요"라던 그는 사인 밑에 '행복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라디오 프로그램 '볼륨을 높여요'를 진행했을 때 엔딩멘트가 '행복해 주세요' 였다.

"너무 착하게 들릴까봐 걱정인데… 저는 만약 제가 돈 많고 누군가가 돈이 없어서 절 부러워하면 차라리 그 사람이 돈이 많은 게 속이 편해요. 저는 누군가 좋은 게 좋거든요."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마 '웃어 주세요'가 아닐까.
김아연 기자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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