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장혁 인터뷰① “추노 최고 몸짱은 성동일, 왜냐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6일 15시 30분


장혁은 성실한 인터뷰이였다. 느릿하지만 조분조분 말도 잘 했다. 그는 "말이 느리긴 하지만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장혁은 성실한 인터뷰이였다. 느릿하지만 조분조분 말도 잘 했다. 그는 "말이 느리긴 하지만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지난해 이맘 때, '벌거벗고' 전국 누벼
● '추노' 다시 맡는다면 황태웅 역할에 관심
● '도망자 PLAN B' 우정출연 섭외 안 와


그는 뭐든 날렵했다. 약속 장소인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 지하층으로 걸어 내려올 때 낸 경쾌한 발걸음 소리, 그 끝으로 과일을 찍어먹어도 될 만큼 뾰족한 턱선, 뭔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 세모를 만들기도 하고 네모를 만들기도 하는 분주한 두 손의 움직임까지….

계단을 내려오면서부터 취재진은 물론 주변에 있던 카페 손님들에게까지 순식간에 허리까지 구부려 인사를 건네는 모습 또한 민첩하기 짝이 없었다. 10~15초 동안 자신을 원점으로 270도 각도 내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열 번쯤은 고개를 수그리는 듯 했다.

올 1~3월 KBS2 드라마 '추노'를 통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대길앓이'를 하게 했던 장혁(34). 그에게 날렵하지 않은 것이라곤 느릿한 말투뿐인 듯 했다.

장혁은 동아일보 대중문화 웹진 O₂가 선정한 '2010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의 영예를 안았다. 도망 노비를 통해 계급제라는 시대의 모순을 그린 '추노'에서 그는 멸족한 양반가 출신으로 조선 최고의 추노꾼이 되는 이대길을 연기했다.

▶ 추노의 추억, 그 이후엔….

그가 이날 더욱 날렵하게 느껴졌던 것은 복싱 덕분인 듯 했다. 장혁은 새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복싱을 다시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를 마주한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주먹 뼈마디의 상처 역시 복싱 연습을 하다 생긴 것이었다. 뚫어지게 상처를 응시하는 기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슬쩍 두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았다.

- 빨갛게 벗겨진 게 정말 아프게 생겼는데요.

"원래 이렇게 굳은살이 박였다, 속살이 돋았다 그래요. 별로 아프진 않은데…. 복싱이 디테일한 리듬감, 템포, 타이밍을 익히게 하는데 최고거든요. 스파링을 하든 셰도우를 하든 몸이 리듬감에 익숙해지면 상대 배우랑 호흡 맞추는데도 큰 도움이 돼요."

- 장혁 씨에 대한 O₂ 평가단의 코멘트 가운데 '배우 본인의 개성과 가능성, 극중 캐릭터가 가장 탁월하게 일치됐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이대길을 연기하면서 본인의 실제 모습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셨나요.

"닮은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추노 촬영 현장의 특징은 작가, 감독, 배우 간의 관계가 상당히 오픈돼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제 주장에 따라 원래의 대길이 캐릭터에 제 모습을 많이 녹일 수 있었고, 그래서 제가 대길이와 잘 어울린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올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인 '추노'의 주요 출연진들. 장혁은 이대길 역할을 제외하고는 황철웅 역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올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인 '추노'의 주요 출연진들. 장혁은 이대길 역할을 제외하고는 황철웅 역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대길이 캐릭터에는 왜 매력을 느끼셨나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 캐릭터와 비슷해서요. 역할이 유사하다는 뜻이 아니고요, 역사의 격동기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고 또 어떤 조직에서 포지션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실제로 자기가 가고 싶은 길과는 멀어지는 것이 비슷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끝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도요."

- 디씨인사이드 갤러리나 드라마 게시판에 가보면 팬들의 '대길앓이'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본인도 후유증을 겪지는 않나요? 남자들한테 언니라고 한다든지, 여자들더러 '이년', '저년' 한다든지….

"추노 쫑파티가 끝난 바로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중국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촬영하러 출국해야했어요.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게 되다보니 캐릭터 정리는 빠르게 되더라고요. 한 캐릭터가 남아있으면 그 다음 캐릭터에 유사한 느낌을 낼 수 있으니 빨리 정리하려고 애써요."

- 작년 이맘 때 쯤 한창 '추노' 촬영 중이었을 것 같은데….

"방송은 1월부터였는데 촬영은 8월부터 했어요. 헐벗고 찍은 장면은 여름에 주로 촬영했는데 겨울에 여름 분량을 재촬영하느라 추위에 조금 시달려야했죠. 추노의 촬영지는 우리끼리 농담 삼아 '대한민국에서 찍는다'고 할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이었어요. 사극 세트장에서 찍는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우리나라에 이런 데가 있었나' 싶은 곳에서 많이 찍었죠. 너무 좋은 곳이 많아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호젓하게 놀러와야지 싶기도 했고요."

- '추노' 이전에 방영된 KBS2 수목드라마는 '아이리스'였어요. 전작의 시청률이 높았다는 점이 방영 초기에는 부담이 많이 되지 않았나요.

"아니요, 오히려 좋았죠. '아이리스' 방영 후반부에는 방송 뒷부분에 '추노' 예고편이 붙으니 홍보도 많이 됐고요. 시청률은 배우 맘대로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엔 배우에 대한 기대치만으로도 관객 동원이 가능했다면 요즘은 드라마가 얼마나 탄탄한 구조를 갖고 있느냐는 전제가 필요하죠. 연기자가 그 무대 위에서 얼마나 잘 '놀았느냐'가 관건이고요."

- 그럼 배우의 이름이 드라마 성공에 얼마나 기여한다고 보시나요.

"배우의 브랜드 네임이 제작 투자를 받는 데는 유리하죠.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시청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장혁 씨한테는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더 퀄리티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으니 더 좋죠."


▲동영상=추노 장혁 인터뷰


▶ "추노를 통해 잘 놀아봤다"

장혁은 지금껏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의 증언대로 생각이 깊고 진지해보였다. 데뷔 초기부터 '배우가 무식하면 안 된다'며 책을 손에 달고 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그가 나이에 비해 더 성숙하고 진지해 보이는 것은 문어체의 말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으로…' '…하는 양상을 띠는데' 등 일반적으로 말로는 잘 옮기지 않는 어투를 자주 구사했다. 하지만 농담 섞인 질문에까지 친절하고, 충실하게 답변하는 모습에서 깊이와 됨됨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 '추노'는 연기자 장혁에게 어떤 작품이었나요. O₂ 평가단의 한줄 평 가운데 '장혁은 한 동안 추노에 머물러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는 코멘트도 있었어요.

"심플하게 말씀드리면 배우에겐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어요. 아트적인건지 커머셜적인건지 하는 문제죠. '추노'는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된 작품이예요. 개인적으로 '추노'는 그냥 제가 출연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한 작품에 묻히게 되면 한쪽으로 연기 성향이 치우치게 되니까요.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30대 중반에 접어든 장혁이 재밌게 놀 수 있었던 작품' 정도? 저는 어려서부터 30대 중반에서 40대 중후반에 멋진 남자가 되는 것이 로망이었어요. 젊기도 하지만 연륜이 쌓인 이 시점이 저는 남자가 가장 멋진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그런 시발점이 됐죠."

- 인간 장혁에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였는지요. 지방 촬영이 많아 가족에게 소홀했다든지, 작품이 대박을 치면서 식탁에 오른 반찬이 달라졌다든지….

"이리저리 다니느라 바빴지만 오랜만에 돌아와도 와이프가 그런 티(불만 섞인 표정)를 안내고 (가정을) 탄탄하게 받쳐주니까…(괜찮았어요). 와이프는 나가서 맘껏 활동하라고 해요."

- 드라마적으로 '추노'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장르 면에서 평가받을 만 하죠. 기존의 사극들은 궁중사극 아니면 위인사극이었어요. 이렇게 추격자의 관점에서 사극을 찍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시대극 같은 느낌이들죠. 사실 사극이 시대극 안에 들어가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대극은 조선시대 이후부터 현대사 이전을 가리키잖아요."

- 대길의 대사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제가 가장 느낌이 좋았던 대사는 이거예요. 대길이가 최후의 순간에 설화를 만나 하는 말이죠.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세상이 캄캄하다보니 네 마음 한 자락 못 알아주네….' 한 번도 설화란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이런 말을 건네게 된 것은 설화에게대길이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언년이에게 품고 있는 연정을 자신에게 똑같이 느끼는 게 설화잖아요."

촬영이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난 작품의 대사를 더듬거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되뇌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결을 물었다.

"원래 없던 대사를 제가 감독, 작가님께 건의해 직접 써넣은 것이거든요."

- 원래 대본을 직접 쓰시기도 하나보죠?

"대학에서 영화과를 다녔는데 전공은 연기였지만 부전공은 시나리오였어요. 그래서 조금 관여했죠."

- 어떤 작가는 자신이 쓴 대사를 배우가 손대는 걸 거의 금시기하던데….

"제 단점이요, 어떤 환경을 규격화시키면 잘 못 놀아요. 캐릭터의 밸런스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님, 작가님과 얘기하는 분위기가 좋아요."

그는 '논다'를 종종 '연기하다'는 뜻으로 썼다. 신선하기도 하고, 뭔가 장인정신 같은 게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아, 이게 현장 용어예요. '캐릭터 묘사가 잘됐다' '접지력(캐릭터와 배우의 결합)이 좋다'는 뜻인데 전 '논다'는 말이 정감 있어 좋더라고요. 습관이 되다보니 자꾸 쓰게 되네요."

\'추노\'로 시청률 사냥에 성공한 배우 장혁은 \'이대길 연기로 전설이 됐다\'는 극찬까지 얻었다. 사진 제공 KBS.
\'추노\'로 시청률 사냥에 성공한 배우 장혁은 \'이대길 연기로 전설이 됐다\'는 극찬까지 얻었다. 사진 제공 KBS.

▶ 배우의 몸은 무대 의상

- 사실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신분제에 반기를 든 노비 업복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맞아요. 실제로 뭔가를 이룬 사람은 업복이 뿐이죠. 사실 추노의 이야기 구조에서 가장 선명한 캐릭터는 업복이와 황태웅이예요. 하나는 노비로서 평등을 외쳤고 한 사람은 세습제에 적응해야 했죠. 대길이를 빼 놓고는 황태웅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예전 한 인터뷰에서 '추노 속 복근이 영화 '300'에서처럼 혼과 정신이 담긴 것으로 비춰지길 바랐는데 자극적이고 외형적인 모습으로만 담긴 것 같다'고 아쉬워한 적이 있어요.

"추노는 이야기 구조가 더 중요한 작품인데 너무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서요. 스타일이 지배하면 스토리가 침해받거든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누구 몸이 가장 좋은가'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이건, 그러니까 배우의 몸은 그냥 몸이 아니라 무대 의상 같은 것이거든요. 탁구 선수의 몸이랑 배구 선수의 몸 중에 '누구 몸이 더 좋냐'고 평가할 수 있겠어요? 배우의 몸은 그 배역이 겪은 삶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겠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천지호 역할을 맡은 성동일 선배의 몸이 제일 잘 만들어진 몸이에요. 역할과 잘 어울리니까요."

- '추노'의 출연자들의 관계가 유독 돈독한 것 같아요. 곽정환 감독, 천성일 작가가 다시 뭉친 '도망자 PLAN B'에서도 오지호, 이다해, 한정수 씨 등이 우정 출연했는데 장혁 씨 얼굴은 안보이더라고요.

그가 갑자기 고개를 45도 각도로 위로 들어 보이더니 갸우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게요. 저한테는 연락이 안 왔어요. 왜 그랬을까…."

그는 올해 KBS연기대상의 강력한 대상 수상자로 점쳐지고 있다. SBS 연기대상 남자신인상, MBC 황금연기상 등을 수상했던 그는 아직 지상파 방송국 연기대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 대상 수상, 기대하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이란 건 참 좋은 거죠.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주시면 정말 감사하고 아니라고 해도 작품을 통해서 배우로서 많이 배웠으니 괜찮고요."

- 그럼 안줘도 상관없다는?

"주시면 좋다니까요."

그 순간 '말도 못 알아듣나' 하는 듯 원망 섞인 눈빛과 장난스런 눈빛이 함께 교차했다.

▶ 2편에서 계속
장혁 “시크릿 가든 캐스팅불발 아쉬움 없어”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0-12-17 10:22:55

    세상에나! 세종대왕께서 아무리 좋은 글을 만드어 주면 뭐합니까? 아래 김성인씨 글을 읽다보면...입에서 나온 말이 모두 말이 아니고, 글로 씌어졌다고 해서 전부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도 잘못쓰면 폭력이 되거나,오물이 됩니다. 김성인씨가 쏟아놓은 오물들은 고스란히 그대의 입과 머리속으로 되돌아갑니다.

  • 2010-12-17 07:33:18

    빌어먹을 딴따라 세끼들한테 까지 복종하고 살아야하나? 무슨 이런 좃만한 세끼가 거만하게 바라보는 사진으로 심리 조작을 하나? 동아일보 개XX들아. '추노' 언론이 권해서 봤었다. HD화면과 절경의 연출, 내가 초정밀의 세계로접어들자. 준비하고 선점하기 위해, 한낮 표절극의 후발자를 만들기 위해 '추노'와 '공부의 신'을 권했었다. 개XX들, 공부의 신은 박정희, 혹은 박지만이 변형 인물이고. 추노의 세손은 박지만이 세끼 영웅이야기다. 그런 씹따까리노릇하면서 씹구멍 좃구멍도 봉사해주나? 성접대, 관행 아닌가. 박근혜 비난과 욕설 댓글이 본격화 되면서 대 타격을 입힌 드라마고 박정희 군바리 개가죽의 똘만이들이다. 구태의연한 무술가지고 건방떨고있나?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