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장 드라마가 몰락하고 실험적인 장르드라마가 꽃피우다 ● 20대 톱여배우의 몰락은 장르드라마의 부활로 해석 가능
O2가 주최한 \'2010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 전문가 평가단에 참여한 윤석진 교수와(왼쪽) 이문원 평론가(오른쪽) 그리고 이진영 동아일보 기자. 심사위원들은 2010년 한국 드라마의 트렌드로 \'장르드라마\'의 부활과 \'스타파워의 몰락\' 그리고 \'케이블의 약진\'으로 정리했다.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O₂가 주최한 '2010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 전문가 평가단에 참여한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가 15일 서울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에서 이진영 O₂ 편집장의 사회로 올 한해 한국 드라마를 결산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윤석진 교수는 한국 드라마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면서 미학적 특징을 연구해온 드라마 평론가이다. 이문원 평론가는 방송 콘텐츠를 연구하면서 그에 대한 비평과 전략을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심사 총평과 함께 KBS MBC SBS 방송 3사가 올 한 해 방영한 드라마 가운데 '추노' '자이언트' '대물' '동이' 등 화제작과 그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를 했다. 또 올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과 한류 시장에서의 성과를 정리하고 종합편성채널 도입에 따른 드라마 산업의 변화를 전망했다.
▶막장 드라마의 몰락과 실험적 장르 드라마의 부활
이진영 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차장.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사회자=21010년 드라마의 질적인 성과와 변화의 경향을 결산하는 자리다. 우선 드라마에 대한 총평부터 부탁드린다. 어떤 변화나 경향을 보인 한 해였는가.
△윤석진=올해 가장 주목한 드라마는 KBS '추노'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내기도 했지만 영상미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복고도 시대극도 아닌 실험극이 득세한 게 특징인데 '자이언트'와 '제빵왕 김탁구'가 대표적이고, '전우'의 리메이크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은 내용적으로 엉성했지만 시청자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언뜻 이해가 안됐지만 시청자들의 선택 기준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문원=지난해의 트렌드는 불황 속에 안정적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는 막장 드라마였다. 그것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올해 새로운 실험이 만개했다. '시크릿 가든' 같은 판타지, '전우'로 대표되는 전쟁드라마,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같은 남성드라마, '대물' 같은 정치드라마가 나왔다. 이른바 장르 드라마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자=올해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로 '추노'의 장혁이 선정됐다. 장혁은 전문가 평가에선 평균 99점을 받았다. 드라마 '추노'에서 그의 연기를 평가 해달라.
△이문원=장혁은 데뷔 초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정우성을 닮은 터프하고 코믹한 배우였고, 심지어 가수와 인디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군대 전역 이후 KBS'고맙습니다'부터 방향을 잡아나갔는데 이번에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됐다.
△윤석진=과거 TV에 나온 그를 보고 '감성이 정말 뛰어난 친구'라고 느꼈다. 20대 시절에는 단순히 상품으로 소비됐을 뿐이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캐릭터로 성장했다. '추노'에서 그는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할 줄 아는 '눈빛 연기'를 선보였다. 자신의 감정을 연기로 표출하게 된 매력적인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사회자='추노'는 먼 훗날까지 연기자 장혁을 대표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길이 연기로 그가 배우로서 정점에 오른 것인가?
△윤석진=아니다. 대길 역은 그다지 완벽하지 못했다. 극의 흐름상 대길의 행동에 설득력이 부족했다. 언년이(이다해 분)가 제대로 대길 역을 뒷받침 못해줬던 탓도 크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도 최대한 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추노' 그 이상의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회자=전문가 평가에서 장혁에 이어 SBS '자이언트'의 정보석이 88.3점으로 2등을 차지했다. 종합 순위는 5위지만 '자이언트' 주인공인 이범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문원=정보석의 연기변신은 맞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 만큼은 아니었다. 변화의 노력은 있었지만 억지로 만들어낸 느낌이었다. 그의 '하이킥' 연기는 10년간 숙성된 것이다. 2000년 영화 '오! 수정'에서 선보인 그의 찌질 하고 부실한 캐릭터 연기가 '하이킥'을 통해 만개했다면 '자이언트'에서의 악역은 변신을 위한 변신이었다.
△윤석진=공감한다. 만일 '자이언트'가 20부에서 끝났다면 조필연이란 캐릭터는 주목받을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작위적 연기가 아니라 조필연의 캐릭터 문제가 컸다. 악행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캐릭터가 부족한 대신 배우의 힘이 컸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수긍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수긍하게 만든 연기력이 바로 정보석의 힘이다.
▶"잘나가다 고꾸라진 '대물'…안쓰러운 고현정, 단순함이 빛난 권상우"
△사회자=올해 다양한 실험적 드라마 가운데 정치 드라마 '대물'이 방영 초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번 심사 결과 '대물'의 주인공 서혜림 역을 맡은 고현정이 '제빵왕 김탁구'의 전인화와 공동 10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고현정은 지난해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로 선정된 바 있는데 고현정의 연기가 퇴보한 걸까.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현 드라마 평론가로 다수 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윤석진=고현정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아우라 발산했다. 애당초 설정된 서혜림 캐릭터가 변질되면서 중반 이후 고름이 터져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렸다. 엉망진창인 캐릭터를 소화하기 힘들어 보였는데 고현정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배우 자체도 자포자기 심정에서 연기한 모습이 보였을 정도로, 드라마에서 캐릭터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운 드라마가 됐다.
△이문원=이제 그녀는 평범한 캐릭터를 맡을 수 없게 됐다. 영어로는 '라저 댄 라이프(larger than life)'라고 하는데, 왕이나 대통령 급만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혜림을 택한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 정치드라마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사극인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수준의 현실풍자마저도 현대 정치극에서는 불가능했다. 미국의 '웨스트윙'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갈등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보여주는데, 서혜림은 도덕교과서에나 실릴 단순한 이야기만 남발했다. 이건 뭐 스머프 마을도 아니고, 연기력은 차치하더라도 캐릭터가 빵점이다. 올해 최악의 캐릭터였다."
△사회자='대물'에 하도야 검사로 나온 권상우의 캐릭터도 평면적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권상우는 이번 평가에서 2위에 올랐다.
△이문원=그의 연기가 좋았다기 보다는, 이기적인 면과 돌쇠적인 면 그리고 깡패적인 면을 섞어 놓은 단순 캐릭터가 절묘했다. 그는 유독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죽어있는 캐릭터인 서혜림과 대비되니까 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윤석진=나도 그가 내면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도야'라는 천방지축 캐릭터와 궁합이 맞았다. 흥미로운 점은 고현정이 끊임없이 내면연기를 하려면 할수록 바보가 되어갔고, 그 같은 몰락에 권상우도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두 주인공 모두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유독 하도야 검사가 권상우에 잘 맞았기 때문에 호평을 받았다.
▶"시대에 밀린 20대 여배우…갈피 못 잡는 문근영과 한효주"
△사회자=지난해의 경우 1차 심사를 통과한 11명 가운데 7명이 여자였다. 그런데 올해는 거꾸로 7명이 남자 배우다. 상위 5명 가운데 여자는 '시크릿 가든'의 현빈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신데렐라 언니'의 문근영이 유일하다. 남자 배우들의 선전, 여자 배우들의 부진의 이유는 뭘까. 특히 20대 여배우 층이 얇은 것 같다.
△윤석진=장르극의 부활과 무관치 않다. 기존의 멜로나 트렌디 드라마가 쇠퇴하면서 여배우들이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해 1위인 고현정이 연기했던 미실조차도 여성성 보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기댄 캐릭터다. 장르드라마는 주 시청자층이 30대 이상이기 때문에 여배우가 중심인 트렌디드라마와 조금 다르다.
△이문원=인터넷 기반 문화현상이란 여성층이 '본방사수'를 해야 가능하다. 송중기 유아인 같은 젊은 남성 아이돌이 필요했다. 그런데 20대 여배우가 나온다고 젊은 남자들이 TV를 본방 사수할까?(웃음) 실제 삼촌 팬들을 믿고 만든 드라마들은 대부분 처참하게 무너졌다. 지난해 '소녀시대' 윤아가 나온 '신데렐라 맨'이 대표적인데, 반면 여성층에게 어필하는 남동생 캐릭터는 계속 성공하고 있다.
△사회자='신데렐라 언니'에서의 문근영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반면 '메리는 외박중'은 시청률 면에서 실패한 것 같다.
△이문원=아직도 귀여운 척하는 것이 문제다. 내년에도 똑같은 연기라면 또 실패한다. 연기자로 깊이 있어지거나 연기력이 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캐릭터가 일정치 않고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는 부분도 부족해 보인다.
△윤석진=공감한다. 그녀의 연기 변신이란 강박에서 나온다. '신데렐라 언니' 보면서 불편했다. 스스로 독한 악녀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행동으로 묻어났다. 만일 연기변신을 하고자 한다면 자기 나이에 맞는 캐릭터 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변신은 문근영에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사회자=MBC '동이'의 한효주는 어떤가? 그는 지난해에도 '찬란한 유산'으로 '톱11'에 들었었다. 한효주를 20대 주연급 여배우들 중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을까.
△윤석진='동이' 역할은 한효주가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분명 연기가 필요한데 그녀는 놀란 토끼 눈만 뜨고 시청자를 몰입할 수 없게 방해했다. 그것이 배우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일지 모르겠다. 때문에 한효주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싶다.
△이문원=지난해 '찬란한 유산'에서 성공한 이유는 '(친근한) 옆집 소녀'란 컨셉트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극으로의 변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본적 연기력은 있지만 '동이'는 분명 미스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버텨준 것도 사실이다. 가능성 있는 배우로 향후 도전 방식이 관건이라고 본다.
△사회자='톱11'에 오른 배우들을 출연 드라마의 채널별로 분석하면 KBS와 SBS가 각각 5명, MBC는 1명에 불과하다.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를 봐도 올해 MBC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MBC에서 평균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는 '동이'가 유일하다. 반면 10% 미만의 성적을 낸 드라마는 10편이 넘는다. 드라마 왕국 MBC의 퇴조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현 대중문화평론가로 다수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이문원=전반적으로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드라마를 만드는 게 문제다. '히어로' 같은 현실배경의 사회파 드라마가 대표적인데 옛날 '인간시대' 스타일의 이런 스토리를 지금의 대중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런 시도를 고집하는 게 문제다.
△윤석진=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전략을 반복했다. 1990년대 드라마 왕국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를 2000년대에도 복제하는 것이 문제다. '동이'는 명백한 '대장금'의 복제이기 때문에 막판에 힘을 잃었다. 방영중인 '역전의 여왕'은 '내조의 여왕'의 시즌2이고 주말연속극 마저도 과거 '사랑과 진실'을 반복한다. 올해 흐름이 장르 드라마인데 유독 MBC만이 이 흐름에서 벗어나 과거의 성공방정식만 답습했다. 장르 드라마도 없고 그동안 해왔던 것을 다시 반복하면서 변화된 시대 파악을 못하니 시청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전복적 상상력으로 트렌드를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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