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2010년 드라마 결산 전문가 좌담회--②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6일 18시 15분


●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 러시? 몸에 맞는 연기라면 OK
● 왜곡된 스타 캐스팅이 몰락한 사례 통해 제작 환경 바뀌어야

12월 15일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O2 드라마 최고연기자\' 선정 심사위원 좌담회.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12월 15일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O2 드라마 최고연기자\' 선정 심사위원 좌담회.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사회자=MBC가 부진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KBS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올해 평균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 11편 중 6편이 KBS 드라마였다. KBS가 선전하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문원='제빵왕 김탁구'는 SBS에서 월드컵 중계 때 축구에 관심이 없는 아줌마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 있지 않을까. 이처럼 편성에서 운도 따랐다.

같은 성공 방식을 재시도하지만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꾸준한 흥행의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을 내세우고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와 '공부의 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시청자들에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보인다. '꽃보다 남자'가 부유층 판타지물이라면 '공부의 신'은 학업 콤플렉스를 건드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틀고 변화를 주는 것이 재미있다. '신데렐라 언니' 역시 기존에 반복돼온 신데렐라 얘기에 몇 가지 요소만 가미해서 같은 캐릭터를 반대의 느낌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기존의 것을 대중이 신선하게 받아들이도록 풀어간 전략이 성공했다고 본다.

△윤석진=MBC의 부진과는 반대의 이유에서 성공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생각한다. 자체 제작 역량도 연관됐을 것이다. '추노' 제작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곽정환 PD의 전작인 한성별곡 같은 8부작 초 미니 시리즈가 있다. 또 최지영 CP의 'HD TV문학관' 시도도 힘이 됐다.

이처럼 KBS가 드라마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해온 것들이 '추노' 등의 작품으로 결과가 나오면서 드라마의 지평이 확장됐다고 본다. 여기서 자신감도 생겼을 것이다. 최근에 '도망자'는 좀 예외이지만 MBC와 달리 수목극에서 패턴 변화를 주며 여러 장르를 실험한 것이 주효했다.

△사회자=MBC 드라마의 부진을 보면서 이것이 'PD수첩' 같은 시사 프로그램들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정연주 사장 시절 KBS도 지금의 MBC처럼 정치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사 프로그램 제작 분위기가 드라마국에도 영향을 주는 면이 있는가, 아님 별개의 것인가.

△이문원=정연주 사장 시절 KBS는 (보수 언론을 비판하는) '미디어 포커스'를 신설한 정도를 빼고는 방송 컨텐츠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MBC는 콘텐츠에 손을 댄다. '무한도전'조차 정치 풍자를 한다. '히어로'처럼 드라마에도 손을 댄다. 그것이 KBS와의 차이다.

△사회자=1차 심사를 통과한 11명 가운데 인터넷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연기자는 박유천이다.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심사 대상이 된 올해 드라마 65편(아침 드라마 제외) 가운데 16편에 아이돌 출신 가수들이 출연했다. 아이돌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현 대중문화평론가로 다수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현 대중문화평론가로 다수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이문원=아이돌 출신 여부는 상관없이 연기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아이돌로 시작해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 케이스는 많다. 자연스런 현상이라 본다. 윌 스미스도 처음엔 래퍼에서 시작해 배우로 대성했고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 출연한 엔싱크 출신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 가지 조금 이상한 점은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다 배우 생활을 하는 것은 괜찮은데 배우가 가수로 변신하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배우는 아이돌 같은 기획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예술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배우가 가수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아이돌이 배우에 도전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 아닐까.

△윤석진=잘만 한다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기본기가 없는 상태로 인위적 꿰맞추기를 한다는 점이 아이돌 출신 연기자를 문제 삼게 되는 이유다. 사실 '성균관 스캔들'의 박유천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잘 몰랐다. 아이돌 출신이라고 들어서 얼마나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우려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박유천 연기가 캐릭터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갔다. 연기하려고 막 애쓰지 않아도 무뚝뚝하고 경직된 모습이 이선준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그런 부분을 박유천이 잘 표현했다.

박유천 같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이렇게 갈 수도 있다는 사례였다. 자기 몸에 맞는 배역이나 캐릭터를 연기하면 나름대로 상품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선준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라서 박유천에게 플러스 요소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선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연기할지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 중에선 SBS '오 마이 레이디'에 출연한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연기를 괜찮게 봤다.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런 가능성을 박유천을 통해서도 봤다.

△이문원='성균관 스캔들'의 박유천을 보면서 예전에 영화 '하이눈'의 게리 쿠퍼에 대한 한 평론가의 비평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 게리 쿠퍼의 뛰어난 연기를 봐라. 카메라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는 말이었다. 박유천도 그렇지 않았나. 표정도 거의 변화가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어색해하지 않고 두려움이 없었다.

△사회자: '제빵왕 김탁구'는 톱스타 없이 올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반면 소지섭 김하늘을 내세운 '로드넘버원', 김현중의 '장난스런 키스', 김혜수 황신혜의 '즐거운 나의집' 장근석 문근영 '매리는 외박중' 등 거물급 스타가 나온 드라마가 한 자리수 시청률 기록했다. 드라마의 스타 의존도가 약해질 것으로 보는가.

△이문원=중장년층이 봐야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드라마의 경우엔 스타 파워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스타 파워가 소멸된 최수종 같은 배우가 사극에선 잘 나가기도 한다. 배우보단 작품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로드넘버원'은 톰 크루즈가 나와도 안 됐을 것이다.

△윤석진=드라마에선 스타 파워가 원래부터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된 경우는 많았다. 스타 파워가 없는데도 자꾸 거론되는 이유는 제작과정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편성이 되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 마치 보험에 드는 것처럼 스타를 내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악순환 되면서 스타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드라마 '맛있는 청혼'을 기억해 보면 손예진, 권상우, 소지섭, 소유진 등 스타가 아닌 신인 연기자가 대거 출연해 성공했다. 그 이후에 이들이 다 톱스타로 성장했다. '제빵왕 김탁구'의 윤시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드라마 한편으로 스타가 됐다.

이처럼 잘 만든 드라마를 통해서 스타가 나오는 것이다. 스타 파워가 드라마 대박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탄탄한 극본과 드라마의 높은 수준이 작품도 흥행시키고 스타를 배출하는 것이니까 기본에 더 충실해야 한다. 스타 파워에 의존하면서 드라마 시장이 왜곡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진영 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차장.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영 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차장.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사회자=스타를 캐스팅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류 시장에 드라마를 판매하기 위해서 아닌가.

△윤석진=그런 것을 노린 전략이다. 한국에선 드라마가 망해도 상관없고 방영이 됐는지 여부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다. 한두 번이야 스타의 이름값으로 팔릴 수 있겠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한류가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지금 해외 시장에서 냉랭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유도 한류 자체가 스타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드라마 작품 자체로 인한 것인데 착시현상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사회자=케이팝 가수들의 경우 한류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한 해였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문원=SBS '찬란한 유산'이 일본 후지TV에서 봄 방학 시즌 동안 오후 2시 낮 시간에 방영돼 9%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시간대엔 보통 3%대가 나왔었다. 사실상 '제2차 드라마 한류'로 평가할만한 결과다.

좋아하는 팬 층도 아이돌 붐과 맞물려 10~20대 여성층 중심의 시장이 생겼다고 본다. 이것을 실험하기 위해 방학 시즌에 낮에 방영한다면 효과를 본다고 전망하는 것 같다. 여기서 성공하면 저녁 프라임타임에 방영될 것이다. 소녀시대, 카라 등 한류 걸그룹 붐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일본에서 '아이리스'가 망했다고들 하는데 방영시간대만 본다면 망한 것은 맞다. 이 드라마는 10~20대 일본 여성층 잡을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주연배우인 이병헌이 40대이고 김태희는 30대다.

지금 10~20대 일본 여성 시청자가 주목하는 드라마는 자기 나이 또래 배우들이 나온 작품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찬란한 유산', '미남이시네요',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는 시청자 연령대와 맞는 배우가 등장해 호응을 얻었다. '아이리스'는 한류 아줌마가 즐기기엔 장르가 너무 복잡했고 젊은층을 잡기엔 너무 올드했다. 이것만 잘 조정된다면 내년엔 실험적인 편성을 통해 '제2차 한류'를 기대해볼만 하다.

△사회자=이번 드라마 심사에선 제외됐지만 케이블TV 드라마에 대해서도 평가해줄 대목이 있을 것 같다. 액션 사극 '야차'(OCN), 메디컬 범죄 수사극 '신의 퀴즈'(OCN), '하이킥' 시리즈의 김병욱 PD가 기획에 참여한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생초리'(tvN) 등 소재가 참신하고 제작비도 지상파 수준으로 투자한 작품들이 줄줄이 제작됐다. 국내 드라마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나.

△윤석진=케이블TV 드라마가 올해 약진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상파TV에서도 장르 드라마가 많이 제작됐는데 안정적이고 익숙한 구도를 살짝 변형해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좁혀간 것이 많았다.

이 같은 경향은 다르게 보면 새로운 시도로 보이긴 해도 사실은 기존 것을 재활용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지상파에선 사라진 전혀 새로운 시도가 케이블에서 이뤄지고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케이블이 편성 면에서 더 자유롭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경쟁 상대가 없다는 점이다.

지상파는 같은 시간대에 3사가 동시에 드라마를 방영한다. 서로 상대를 잡아먹어야 살아남는 피 말리는 전쟁터다. 그러다보니 검증된 것 위주로 약간의 변형만 주면서 가게 돼 드라마의 완성도와 수준이 떨어진다.

표현의 방식도 케이블TV 드라마가 지상파보다 자유로워서 자신만의 색깔과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시청자도 갈수록 늘어난다. 이 같은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종합편성채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편을 장악할만한 킬러 콘텐츠도 역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지상파와는 다른 가능성 있는 영역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문원=이미 케이블TV에서 제작돼 방영한 '슈퍼스타K2'의 시청률이 18%나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생중계로 투표가 동시에 진행되는 '슈퍼스타K2'는 애청자들이 본방송을 봐야만 하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됐다. 케이블TV 컨텐츠가 워낙 '본방사수율'이 떨어져서 그렇지 모아놓고 본다면 충분히 이 정도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도 케이블TV가 지상파와는 다른 방향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 '소프라노스'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의 경우엔 위성채널이 지상파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새로운 내용의 드라마를 제작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케이블TV는 지상파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시도해 볼만 하다고 본다.

△사회자=앞으로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날 것이다. 드라마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을 줄까.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현 드라마 평론가로 다수 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현 드라마 평론가로 다수 매체 기고중.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윤석진=지상파 드라마들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아까 얘기했던대로 자기복제가 끝나지 않는다. 이럴수록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블이나 종편 확대를 통해 드라마의 유형이나 장르가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규격부터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60~70분에서 30~40분으로 줄어들거나 20부작에서 10부작으로 줄면서 이야기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종편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도 역시 시청률이 될 것이다. 이 기준에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채널이 늘면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팽배해져 상상 이상의 막장 드라마가 나오는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상파와는 차별화된 내용과 형식을 내세운 새로운 드라마의 등장 가능성에도 기대가 된다.

△이문원=기존 방송사의 외주제작사 착취 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착취 구조가 너무 심각하다보니 제작 과정에서 무리하게 간접광고(PPL)가 들어가 드라마 내용 자체가 왜곡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미친 짓까지 하지 않고 정상화를 시키려면 방송사가 많아져서 방송사 간에 경쟁 구도가 생기고 외주제작사의 여건이 좋아지고 역량이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방송사가 늘어나면서 난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이 넓어지면 컨텐츠의 질도 좋아질 것이다.

정리=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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