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유튜브 독립군’ 데이비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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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18시 19분


21세기 인디뮤지션으로 살아가는 방법

데이비드 최 공연 현장
데이비드 최 공연 현장
● 유튜브 스타 '데이비드 최'의 세 번째 내한공연 성황
● "반짝스타가 아닌 내가 원하는 음악활동 꾸준히 하고 싶어…"

"스타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하게 할 수 있으면 행복한 거지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스타를 꿈꾼다. '한류스타' '아이돌스타' '판타지스타'…, 스타가 되는 순간 명예와 부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런 열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타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스타의 인기수명은 짧아지고 스타가 아닌 무명 뮤지션들에 대한 대우는 보다 각박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실력을 갖춘 예술가보다는 오히려 유명해지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이들이 더욱 각광받는 기현상도 벌어지곤 한다.

올해 24살인 재미교포 '데이비드 최(David choi)'는 21세기 뮤지션의 생존조건을 새롭게 정의하는 미래지향적 예술가다. 그는 인터넷으로 데뷔하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지만, 유명세만을 무기로 해 자신의 명성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독립의 기틀을 잡고 작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혀가는 새로운 유형의 예술가로 정의내릴 수 있다.

국내외에서 '유튜브 스타'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최가 유명세를 떨친 계기는 2006년 12월30일 자신의 방에서 찍어 올린 '유튜브, 러브송'이란 짤막한 창작곡 때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와 평범한 폴로셔츠에 포크기타를 든 차림으로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영감을 즉석에서 곡으로 만들어 낡은 노트북 컴퓨터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업로드한 것이 전부였다.

약 한달 사이에 10만 건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자 인터넷 공간에서는 "데이비드 최가 누구냐?"란 질문과 함께 뜨거운 관심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에게도 이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당시 유튜브란 동영상 매체가 미국에서 뜨겁게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데이비드 최 같은 수많은 무명 뮤지션을 '유튜브 스타'로 부각시킨 것이다.

곧 그가 만든 노래가 연이어 히트하고 누리꾼들은 그가 아무런 스태프나 매니저 없이 혼자 제작해 발표한 노래를 앞다퉈 구매하고 시청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유튜브 채널(davidchoimusic)의 구독자는 80만 명에 달하고, 이제까지 그의 음악을 시청한 사람 수는 8000만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는 유튜브에 노래를 등록한 전체 수만 명의 뮤지션 중 10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며 미국 팝스타인 마이클 잭슨과 비욘세에 필적한 만한 수치로 미국 내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 인터넷 반짝스타에서 인터넷 기반 대중예술가로 꾸준한 성장
데이비드 최 블로그
데이비드 최 블로그

"지난해부터 미국 12개 도시에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8월에는 싱가포르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일본에서 방영된 아이리스 일본판에 OST가 포함됐고 국내에서도 다수 CF와 영화에 삽입됐어요."

그간 인터넷 반짝 스타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비드 최는 준비된 스타이기에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고 과거보다 오히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뮤지션이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악기가게를 운영했던 탓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가까이에서 접한 그는 16살 때 자신이 음악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작곡과 프로듀싱을 시작했다.

17세가 되던 2004년 6월 '10대를 위한 존 레넌 작곡 경연대회'에서 'Can't Stop Me'라는 제목의 가사로 9000여 명이나 되는 참가자들을 제치고 우승했고 9월에는 '데이비드 보위 매시업 콘테스트'에서 'Big Shaken Car'란 노래로 대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수상경력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었다.

남가주대학(USC) 실용음악과로의 진학을 눈앞에 뒀지만 그는 보다 과감하게 프로작곡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음원회사 가운데 하나인 '워너 채플 뮤직(Wanner Chapple Music)에 입사해 '스태프 작곡가'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말 치열하게 작곡했어요. 2년 동안 200여곡을 만들었으니까요. 빅 히트한 노래가 있냐고요? 아깝게도 없어요. 정말 아슬아슬하게 '백스트리트 보이스'나 '샐린 디온' 등 당시 최고 팝스타의 앨범에 들어갈 후보 노래를 작곡했지만 최종 선택되지는 못했어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프로작곡가로 활약한 그에게 빠른 성공만큼이나 시련도 빨리 찾아온 셈이다. 그러나 시련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안겨줬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빠르게 인기를 얻어 가던 유튜브 같은 비디오 공유 사이트들이다.

당시 앨범판매에만 수익을 의존하던 뮤지션들에게 인터넷 비디오 사이트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일부 전통적인 뮤지션과 앨범사들은 유튜브 등의 공짜 음악을 확산시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외면했지만, 신세대 뮤지션들은 빠르게 '오픈 플랫폼'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른바 새로운 마케팅의 장이자 수익원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라는 신매체에 빠져 살던 데이비드 최는 발 빠르게 이런 음악 시장의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고 자신이 커버한 노래를 직접 비디오 영상에 담아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레이디 가가의 'Telephone', 블랙아이드피스의 'I Gotta Feeling' 등을 모방해 부른 동영상을 올리며 자신의 노래 실력을 누리꾼에게 검증받은 것이다. 인터넷 공간이 일종의 오디션 장소이자 데뷔 무대였던 셈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데이비드의 채널을 방문해 그가 커버곡들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색을 더해 새롭게 소화해내는 실력에 놀라고, 그가 작곡한 곡을 접하며 그가 진정한 음악인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의 노래는 인터넷을 타고 수많은 팬덤을 양산했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패러디까지 탄생할 정도가 됐다.

그야말로 준비된 스타의 탄생이자 작곡가에서 가수로 극적인 변신에 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데뷔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하게 자신의 신곡과 활동 내용을 유튜브에 업로드 한다. 광고 수익의 배분을 통해 적정한 수익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애플의 아이튠즈를 통한 음원 판매도 그의 뮤지션 활동에 큰 지원군이 되었다.

■ 국내 미디어들의 러브콜… "흥미 위주는 싫다"
데이비드 최 공연 포스터
데이비드 최 공연 포스터

"이번이 세 번째 내한공연이에요. 이번 공연에는 91살 되신 할아버지가 참석해 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한국에서도 공연할 무대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2009년 10월과 올해 5월에 이어 세 번째 내한공연이 12월20일 서울 가야시어터에서 500여 명의 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10여일 간의 짧은 방한 기간 동안 한국의 여러 뮤지션을 만나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미국 언더 힙합계에서 유명한 래퍼 덤파운드데드(Dumbfoundead)가 데이비드를 응원차 깜짝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강윤지도 콘서트의 오프닝을 장식해 화제를 모았다. 데이비드 강의 감미로우면서도 활력 있는 보컬실력 역시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데이비드 최의 활동 무대는 점차 세계로 확장될 예정이다. 최근 2년간 미국 12개 도시 순회공연에 이어 8월에는 싱가포르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일본에서 방영될 아이리스 일본판에서는 그의 노래가 OST에 삽입될 정도로 작곡 실력과 보컬 실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존재가 됐다.

내년 6월부터는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마닐라, 자카르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을 잊는 동남아와 호주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이를 통해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새로운 싱어송라이터이자 한류뮤지션의 데뷔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바쁜 일정에 소속사나 매니저가 필요할 것도 같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데이비드 최
데이비드 최

"저는 유명스타라기 보다는 인디정신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게 독립정신인 것이지요. 혼자 작곡하고 녹음하고 공연할 무대를 찾을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여전히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때문이고요."

그가 미국 문화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자 국내 각종 매체들의 인터뷰 제의가 쏟아졌고 한 방송사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 화제가 된 모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섭외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TV쇼란 그냥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생각했거든요. 반짝 스타가 되기보다는 꾸준하게 노력하는, 실력 있고 홀로 설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미국이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세대에게만 유명한 인터넷 스타에 그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점차 인터넷의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로 꿈틀꿈틀 자신의 존재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 인디뮤지션의 성장이 어디까지일지 지켜보는 것도 온라인 뮤직 시대의 큰 재미가 될지 모른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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