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7살. 사랑이니 이별을 노래하기엔 아직 어린데, 감정이입하는 법이 있나요? "딱히 없어요. 그냥 가사를 그대로 말하면 되니까요."
-경험한 적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우리가 '인간극장'이나 '사랑의 리퀘스트'보면서 눈물나는 건 내가 그 사람들처럼 부모가 없거나 자식이 죽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동화돼서 느껴지는 것 때문이잖아요. 노래를 할 때도 '이건 제가 안 느껴봐서 못하겠어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가사에 동화되고 가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버려요. 물론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정이 비어보일 때도 많아요.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 당장 다 경험해보지는 못하니까 그런 방법으로 차츰차츰 익혀가고 있어요."
-이제 2010년도 끝나가는데 내년 목표가 있다면요? "딱히 없어요. 이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연말, 내년 새해가 쭉 이어질 것 같아요.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보다는 2010년에 해왔던 걸 연장한다는 느낌이예요. 2011년도 아프지만 말고 2010년만큼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욕심내지 않고 하려고요."
-'가수 아이유' 이전에 '학생 이지은'은 내년에 고3이 되죠.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는데 생각은 여전해요? "네. 공부에 흥미 생겨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자퇴해도 되지 않나요? 가수 활동과 병행하기 힘들 텐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껍데기뿐인 고등학생 시절일 수도 있겠지만 흉내만이라도 내고 싶어요. 교복입고 학교 다니고, 잘은 모르지만 친구도 있고 담임선생님도 계시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런 추억은 있어야죠."
매니저가 "아이유는 몰래 혼자 택시타고 학교에 다녀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방과 후 바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교복을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데뷔하고 2년이 지났어요. 어떤 가수가 되고 싶었나요? "데뷔 초부터 말씀드렸는데 롱런하는 가수요."
-어떤 노래를 부르는? "제가 하고 싶은 노래요. 제 롤모델이 외국에서는 코린 베일리 래, 국내에서는 하림 선배님이에요. 하림 선배님은 자신한테 딱 맞는 노래를 직접 작곡해서 부르고 대중이 인정까지 해주는데 얼마나 멋있어요. 정말 행복한 가수인 것 같아요. 저는 제 목표로 가는 중인 것 같아요. 롱런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60살 정도까지는 노래를 부를 텐데 지금까지 제가 산 것의 몇 곱절을 살아야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욕심내지 않으려고 해요."
질문이 끝나면 1초안에 속사포 답을 내놓더니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가는 길이 행복할 것 같다.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것처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좀 더 빨리 그 때가 오고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 "'아이유가 가야할 길' 단정 짓지 말았으면"
-'아이유가 가야할 길'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저기서 조언하는 글도 보이고요. 본인이 생각하는 '아이유가 가야할 길'은 뭔가요. "'너는 노래를 해야 한다' '예능보다 공연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굳이 지금 단정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를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요 하고요. 물론 저는 재밌게 음악하고 싶어요. 근데 그분들이 저한테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 때문에 네가 원하는 음악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 분들조차 어떻게 보면 저를 틀 안에 가두시는 거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뭔지는 사실 아무도 몰라요. 그동안 제가 인터뷰나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 가지고 벌써부터 '뮤지션의 길을 가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저 자신도 앞으로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저한테 압력을 주면 부담스럽거든요. 아직까지는 연예인이든 뮤지션이든 정해지지 않았어요. 갑자기 말이 트여서 예능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조용한 카페에서 음악을 할 수도 있고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날'은 똑똑한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촌들의 로망' 아이유가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라고 고백하는 가사나 걸그룹들과 차별화된 가창력을 보여줄 수 있는 '3단 고음'에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케하는 퍼포먼스까지. 그러나 정작 본인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음반을 낼 때마다 조금씩은 새로웠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프로듀서님도 그렇고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터놓는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곡으로도 선택의 여지를 많이 두는 거예요."
-'아이유 대세' '아이유 위주로 갑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많이 들려요. 이런 인기를 예상했었나요. "몰랐죠. '언젠가는 뜨겠지' 했지만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갑자기 올지 몰랐고 이렇게 한 것 없이 올지 몰랐어요. 가끔씩 이상하기도 하고 무서울 때도 있어요. 정말 다행인 건 데뷔하자마자 이렇게 잘 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는 안 됐던 앨범도 있었고 호응 없던 무대에도 서 봤기 때문에 지금 그나마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이 상황을 걸어갈 수 있어요. 언제 인기가 떨어질지 모르는 거고 언제 이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갈지도 모르는 거고… 제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개 뜨더라고요. 당장 내일 아침 기사에 '아이유'라는 이름 대신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박혀서 뜰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칭찬하는 기사나 글은 되도록 안보려고 노력해요."
-아이유에게 읽히려면 욕해야 하겠네요? "에헤헤. 저는 그래서 요새 악플을 찾아봐요. 그래야 자신감도 떨어질 것 같고 자만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악플을 봐야 '난 이렇게 보잘것 없는 애야' 이러면서 자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일부러 모르는 사람한테 더 웃으며 인사하게 되고요. 언제 떨어지고 다시 올라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밉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요."
아이유는 자신을 대표하는 곡으로 1집 수록곡 '미운오리'를 꼽았다.
'미운오리'는 '저기 멀리 어두운 하늘 보다가 엄마 별이 사는 그곳은 어딜까 외로운 밤 나를 보고 있을까 / 작은 날개짓으로 날 수가 없는 미운오리 같은 나지만 /그래 나의 노래가 저 하늘에 닿을 때 그땐 꼭 만날 수 있겠지'로 시작하는 곡.
"자만하지 않으려면 저를 대표하는 노래는 '미운오리'이고, '미운오리'여야 해요. 제가 17살인데 지금이 제 인생의 전성기라면 남은 50~60년은 하향세를 타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전 분명히 제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제가 다 안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고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인기가 얼떨떨하다고 말하긴 했는데 사실 얼떨떨할 위치도 아니죠. 더 잘 돼야 고 더 커야 하기 때문에 겸손해야죠."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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