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현의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극한의 아름다움
●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을 동시에 버무린 인디씬의 놀라운 성취
'RAINBOW99'란 매우 낯선 밴드명이다.
그러나 이 기이한 원맨밴드의 주인공이 류승현(30)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느낌은 달라진다. 그는 이미 2004년 후반부터 '어른아이' '하이미스터메모리' '올드피쉬' '옥상달빛' 그리고는 석준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오며 독특한 기타 사운드와 스타일을 인정받아온 홍대의 대표적 기타리스트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밴드 '시와'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시와무지개'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고 프렌치 팝 듀오 '투명'의 정규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또한 다수의 연극과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왕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필자는 현재 한국의 인디씬에서 류승현의 솔로 프로젝트인 'RAINBOW99'을 가장 주목해야 할 밴드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신작 앨범 역시 지독하게 낯설다. 'GOOD MORNING'으로 시작되는 10곡이 수록된 프로그레시브 노이즈 앨범은 종국에는 'GOOD BYE'로 막을 내린다.
혹시 맛깔스러운 보컬을 기대했다면 재빨리 포기하는 편이 좋다. 단 한 곡의 노래도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곡에 대한 알 수 없는 상상과 긴 여백만으로 가득한 실험적인 앨범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류승현식 데뷔앨범'인 셈이다.
또한 '시와'와 함께 듀오앨범인 '시와무지개'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최근에야 작품을 선보였다지만 아직은 시중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앨범이기도 하다. 오직 그의 공연에 가서만 손에 쥘 수 있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기타품앗이 뮤지션 '류승현'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한 류승현은 10여 년 전 '어른아이'란 밴드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대 초반이 되자 홀연 기타를 매고 홍대 부근에서 기타품앗이를 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시와' '하이미스터메모리' 그리고 전자음악을 하는 '올드피쉬' 등이 바로 그가 함께 했던 대표적인 밴드들이다. 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어쿠스틱기타에서부터 일렉기타에 이르기까지 허술했던 연주는 점점 더 사무라이의 칼과 같이 날이 섰다.
한 때 100키로가 넘는 거구에 패션테러리스트로 불렸던 류승현은 대학시절에는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그 사이에 틈틈이 자기만의 음악을 구축했다고 한다. 진짜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일은 꽤나 오래 걸리는 일이다. 10년을 매진해야 자기의 것을 알고 20년을 해야 남들도 자기가 무얼 하는지 알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10년이 흐른 이제는 그도 나름의 캐릭터를 잡고 무대 위에 안착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은 알아챌 수 있다. 이 정도의 고밀도 실험사운드는 국내에서 만나기 어렵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기보다 나라를 잘못 만난 듯하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이 같은 음반을 출시했다면 아마 흥행 만개했을지도 모른다.
53분 14초에 달하는 동안 그 소리의 빈티지함이나 스토리의 전개적인 면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다져진다. 콘서트에서보다는 빠른 그의 음악전파는 오히려 다소 풀이 죽고 그 빛깔은 퇴색했지만 홍대나 강남의 유수의 클럽이나 호텔 지하를 울리기에 적당하다.
그는 이제 일렉트로닉 디제이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99번의 연애경험을 가진 무지개갑옷을 입은 사무라이 같은 내공을 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 53분 14초간 울리는 황홀하고 감상적인 음악의 향연
데뷔앨범에 수록된 열 곡은 마치 한곡과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요즘처럼 대표곡을 하나 띄워 홍보하고 알리려는 단기적 활동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풀스토리 앨범'이다. 특히 여기에는 오랜 시간 그와의 교류를 가진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은 점을 찾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는 어쿠스틱기타 소리 하나에서 출발해서 다양한 소리들을 장난감 레고로 쌓아올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마치 소리로 지은 성과 같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음색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실력을 발휘한다. 그는 아마도 음악에 대해서는 집요한 성격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꽤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했다지만 그의 외모는 쉽게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그는 소설가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등장하는 팻보이(FAT BOY)란 캐릭터를 연상하면 된다.
그의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그의 눈앞에 놓인 열리지 않는 문, 그 안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따스한 불빛, 체온저하로 점점 더 까마득하게 찾아오는 현실과 꿈의 경계선…,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한 소년의 눈물 그득한 두 눈망울까지. 그는 그렇게 청자로 하여금 묘한 공감각적인 환상과 함께 묘한 안식처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창작기법에 있어서 '비둘기우유'라는 밴드나 '올드피쉬'란 밴드의 일렉트로닉한 방식이 닮았지만 오히려 포크음악인들의 서정성을 포기하지 않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이 앨범은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인디 앨범의 모범 답안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작사, 작곡, 프로듀싱, 믹스, 마스터링, 유통까지 앨범의 모든 과정을 독립적으로 만들어간다.
저작권과 유통사들의 입김으로 최초의 창작인에게 그 대가가 정당하게 돌아가기 어려운 현실의 벽 앞에서 위의 소년은 배급과 유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눈을 감은 셈이다. 물론 감은 두 눈에는 양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어 가슴 아프겠지만 말이다. ■ 앨범 정보
* 아티스트 : RAINBOW99 * 멤버 : 류승현 (기타, 프로그래밍) * 수록곡 : Love Is no Tomorrow * 한줄평 : 독창적 사운드와 깜짝 놀랄만한 서정성, 그리고 집념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데뷔작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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