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김연아 도촬과 걸그룹 성추행…천한 日방송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30일 14시 56분


니혼테레비가 방영한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 장면.
니혼테레비가 방영한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 장면.

일본 지상파TV 방송사인 니혼테레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선수권을 준비 중인 김연아의 비공개 훈련 장면을 몰래 촬영한 뒤 26일 방영한 '도촬'(도둑촬영, 일명 몰래카메라) 사건으로 논란이 뜨겁다.

최근엔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등 일본에 진출한 한류 걸그룹이 현지 예능프로그램에서 신체적, 언어적 성추행을 당해 국내 누리꾼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번 도촬과 성추행 사건은 일본 지상파 방송의 천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대중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한일 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극히 일부분이 알려진 것일 뿐, 사실 일본 방송은 오래 전부터 이 같은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일본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브라운아이드걸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장면.
일본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브라운아이드걸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장면.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과 브라운아이드걸스 성추행 논란을 일으킨 방송사는 니혼테레비이고, 카라 성희롱 논란은 TBS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모두 일본의 대표적인 지상파 민영방송들이다.

한국에선 SBS가 지상파 민영방송사이다. 가끔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긴 하지만 일본 민영방송의 수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법 제33조에 근거한 방송심의규정 등 방송 내용을 규제 감시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장치가 아니더라도 시청자의 감시 기능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청가능 연령대를 프로그램 시작 전에 미리 고지하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내용이 방영될 경우 곧바로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가 폭주한다.

그렇다면 일본 방송계엔 이 같은 감시와 규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도촬, 성추행 등 천한 속성을 드러낸 프로그램이 거리낌 없이 방영되는 것일까? 아니다. 일본에도 방송윤리를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는 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일본 지상파TV 심야방송에선 온갖 변태적인 프로그램들이 경쟁적으로 방영됐다. 방송사 수가 많아지면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팽배해진 결과였다. 방송사들은 '표현의 자유'나 '시청자의 알 권리'를 빙자해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데 혈안이 됐다.

여성들이 소위 '옷 벗기 게임'을 하거나 남자 진행자가 여성 게스트의 신체부위를 더듬는 등 성인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심야방송이 아닌 일반 방송시간대에도 수위는 조금 낮지만 선정성, 폭력성이 심한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자 성문화가 개방적인 일본 내에서도 학부모를 중심으로 사회적 반발이 커졌다. 지상파TV인 NHK와 각 민영방송사는 1996년 9월 뒤늦게 방송윤리기본강령을 제정했고 방송윤리 및 프로그램 향상기구(BPO), 방송윤리검증위원회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면서 심야방송의 변태적 프로그램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법적인 제재가 아니라 자율과 권유 차원의 규제이기 때문에 일본 방송의 천한 속성을 단절하지는 못했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일본 뉴스 일기예보의 여고생 속옷 노출 장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일본 뉴스 일기예보의 여고생 속옷 노출 장면.

일본 TV 뉴스 프로그램이 태풍 소식을 전하면서 바람에 치마가 뒤집혀 속옷이 드러난 여고생의 모습을 그대로 방영한 사례는 세계적인 이슈가 된 바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일본 방송계에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어린이, 청소년도 즐겨 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선 여자 아이돌에 대한 성희롱이나 야한 농담이 난무한다. 정보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알 권리'를 강조하며 촬영 대상자의 동의 없는 '몰카'나 도촬같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이 허다하다.

이 같은 일본의 천한 방송문화는 현지에서도 비판 대상이 된다. 일본 인기 만화 '짱구는 못 말려'(원제: 크레용신짱)에는 방송사 PD들이 사생활 침해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자주 등장한다. '돈만 되면 뭐든지 한다' 등 직접적인 대사로 꼬집기도 한다.

김연아 도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류나 한일 간 스포츠 교류가 늘면서 이 같은 일본 방송의 천한 속성에 한국인이 희생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응 조치도 필요하다.

일본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한류 걸그룹의 경우엔 사전에 이 같은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자제하면서 성추행 등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한국과 일본의 성에 대한 문화적 차이 등을 미리 알리며 이런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연아 도촬 건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니혼테레비의 비공개 훈련 도촬은 김연아의 개인적 영리 목적을 위한 아이스쇼 준비 모습을 찍어간 것이 아니다. 태극기를 달고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에 대비한 비공개 훈련을 몰래 촬영한 것이다.

니혼테레비가 방영한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 장면.
니혼테레비가 방영한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 장면.

더구나 니혼테레비 측은 김연아 비공개 훈련 도촬 건에 대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댓스포츠의 항의에 "사전에 동의를 얻었고 공공장소에서 촬영해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논란의 책임을 김연아 측에 떠넘긴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과 홈페이지에 진행자가 남긴 제작 후기를 통해 '김연아의 극비 훈련을 촬영했다'고 스스로 밝혔으면서 사전 동의와 공공장소를 들먹이는 등 앞뒤가 다른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진상규명 반키샤'라는 문제의 정보프로그램은 밴쿠버 겨올올림픽 당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비교하는 내용을 전하며 공개가 금지된 심사위원들의 채점표를 도촬해 방영한 전력도 있다. 초범이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 심한 짓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소속사의 항의 정도로 끝나선 안 된다. 대한체육회, 대한빙상경기연맹 등 관련 공식기관이 나서 법적인 대응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간과할 경우 일본 방송의 천한 속성은 도촬 등 한국 스포츠 전반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일본과 맞붙는 경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번 기회에 이 같은 가능성을 봉쇄해둘 필요가 있다. 월드컵 예선, 결선에 대비한 한국 축구팀의 비공개 훈련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준비하는 한국 야구팀의 전략 등이 또 다시 도촬돼 일본 방송에서 방영되는 굴욕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동영상=[O2/뮤직]카라, 한일 양국에서 ‘점핑’할까? - 카라MV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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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추천 많은 댓글

  • 2011-01-03 11:17:17

    일본의 일부방송을 보면 어떤 비정상적인 일을 즐기는 도착증 병세가 만연한 독특한 방송인것 같다. 특히 성적인것을 즐기는 집단 A/V방송.

  • 2011-01-03 09:34:39

    마치.. O2를 읽으면서 여긴 '연예기사뿐이 없어, 정치기사도 없고 유치해'라고 하는것과 뭐가 달라. 야동보면서 야하다고 난리...

  • 2011-01-02 15:07:04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 일본방송과 일본인들이 추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 대한 가치관 차이겠지요. 우리가 일본을 비난할수 있는것은 외국인인 한국인에 대한 대접을, 한국 현지인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본 현지인과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일본인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와 방송을 수십년 이상 유지시켜 왔는데 난데없이 '천한일본방송'이라니.... 며칠째 떠다니는 이런 자극적이며 유치한 제목은 이제 그만거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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