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점수 낙제점, ‘공정’ 점수도 낙제점, 믿을 만한 지도층은 없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지만 일부 항목에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응답자 상당수는 현재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기부를 포함한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었다. 지역 때문에 상대방을 기피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중·상류층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리 잡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 국민 5명 중 3명 “내 지위에 만족”
“우리 사회의 공정, 공존은 낙제점”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만큼 ‘현재 본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만족도’도 당연히 낮게 나왔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응답자들의 63.3%가 현재 자신의 지위에 대해 ‘매우 만족’(3.6%)하거나 ‘만족한다’(59.7%)고 대답했다. ‘만족하지 않는다’(28.1%),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6.3%)도 있었으나 만족한다는 응답이 두 배가량 많았다.
다만 직업과 소득, 학력, 연령에 따라 만족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73.2%)와 40대(67.1%)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72.7%)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학생(79.4%)의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별로는 월수입 401만 원 이상(77.1%)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학력별로는 대학 재학 이상(70.9%)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반면 블루칼라(43.6%), 월수입 200만 원 이하(45.9%), 중졸 이하(49.2%)의 만족도가 낮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간의 공존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사회적 계층 상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8.3%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부분 계층에서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응답이 나온 것이다. 대부분 계층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 가운데 20대, 화이트칼라, 월 401만 원 이상 소득자, 대학 재학 이상 고학력자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계층 이동이 어렵다고 응답한 19.3% 가운데 45.1%는 계층 이동이 어려운 이유로 ‘사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을 꼽았으며 ‘부모의 도움 없이는 출세할 수 없기 때문’(18.5%), ‘내가 부모보다 뛰어나지 않아서’(7.9%), ‘좋은 직장은 부모를 보고 뽑기 때문’(7.1%) 등의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응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계층을 결정짓는 요인’에 대해선 ‘소득 수준’(28.8%)과 ‘자신의 노력’(28.6%)이라는 응답이 ‘타고난 가정환경’(14%)이나 ‘학력이나 학벌’(14.2%)보다 높게 나타났다. ‘부의 세습’이라는 표현이 일부 비관론자에게는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저변에서는 ‘자수성가(自手成家)’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스스로 노력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대다수의 응답과 별개로 ‘계층 결정 시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는 64.1%가 ‘크다’고 답했다. ‘스스로의 노력’ 못지않게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영향력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정환경 및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응답은 20대 이하, 대도시 거주자, 대학 재학 이상 고학력자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작다’(32.3%)는 응답은 50대 이상, 소도시 거주자, 월수입 200만 원 이하, 중졸 이하 저학력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아 계층간 시각차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 “젊은층일수록 지역감정 잘 몰라”
그동안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이번 조사에서 희망적인 결과가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정 지역 출신을 기피하거나 싫어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2%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이나 무시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50대 이상이 32.2%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은 40대(26.4%), 30대(24.2%), 20대(17.3%) 순으로 나타나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지역감정이 퇴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지역은 대전·충청이 73.7%로 가장 높았으며 부산·울산·경남(73.3%), 대구·경북(72.8%), 인천·경기(72.7%) 등도 70%를 웃돌았다. 그동안 뿌리 깊은 공존 저해요인이었던 지역감정, 지역차별이 세대가 거듭날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공존을 향한 희망이자 상징을 확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기부 등 사회봉사에 관심”
최근 일부 사회봉사단체의 도덕적 해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다수는 알게 모르게, 크고 작게 기부 및 사회봉사활동을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9%가 ‘현재 기부를 포함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월간 사회봉사활동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100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자가 0.8%, ‘50만 원 이상 100만 원 미만’ 1.9%, ‘20만 원 이상 50만 원 미만’ 5.4%, ‘10만 원 이상 20만 원 미만’ 6.7%, ‘1만 원 이상 10만 원 미만’ 28%, ‘1만 원 미만’은 23.5%였다.
기증이나 기부가 우리 사회 공존의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할 때, 공존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의 조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도층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나타난 사실을 고려해보면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코리아리서치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고소득, 고학력층의 참여율이 저소득, 저학력층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다양한 계층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 “사교육 문제 있지만 시키고 싶다” 38.9% ▼
계층간 위화감 조성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과도한 사교육 열풍에 대해 응답자의 38.9%는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기회가 되면 시킬 것이다’라고 답했다. ‘능력에 따른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26.6%였다. ‘나도 시키겠다’거나 ‘문제되지 않는다’는 응답을 합하면 전체의 65.5%였다. ‘가진 자들의 사치스러운 행위로 잘못된 것’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은 30.3%였다. 코리아리서치 관계자는 “사교육 열풍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키겠다거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한 65.5%는 대부분 자녀교육 문제에 당면한 계층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과도한 사교육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50대 이상, 월수입 200만 원 이하, 중졸 이하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기회가 되면 시키겠다’는 반응은 30∼40대 연령층, 화이트칼라 등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많이 나타났다.
자녀를 위해, 혹은 사업상의 이유로 교사나 공무원 거래업체 관계자 등에게 촌지를 주거나 받아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83.4%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40∼50대 이상, 월수입 401만 원 이상에서는 촌지 수수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40대는 24.1%, 50대 이상은 24.6%, 월수입 401만 원 이상에서는 26.5%가 촌지 수수 경험이 있다고 답해 자녀 교육 등 현실 문제에 맞닥뜨린 계층에서는 적지 않은 촌지가 오고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녀가 있는 응답자는 22.1%, 없는 응답자는 8%가 촌지 수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답해 눈길을 끌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33.9%가 ‘그렇다’, 63.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시키겠다’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던 데 비해 기러기 가족에 대해서는 다수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3명 중 1명꼴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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