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한민국’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1>‘공감의 시대’ 저자 美 제러미 리프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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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3차 산업혁명 진행중… 정보유통 빠른 한국 큰 역할 할 것”

《 “3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21세기에 한국은 인류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개방적이고 정보 유통이 빠르고 글로벌화돼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서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난해 ‘공감의 시대’라는 책으로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는 한국의 미래를 낙관했다. 그동안 ‘노동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수소 혁명’ 등 깊이 있는 시각과 통찰력이 담긴 저서로 국내에 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를 지난해 12월 13일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났다. 》
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인류는 곧 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며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융합된 그 시대에는 인류가 경쟁보다는 서로 협조하고 공감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프킨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사진 제공 와튼스쿨
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인류는 곧 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며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융합된 그 시대에는 인류가 경쟁보다는 서로 협조하고 공감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프킨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사진 제공 와튼스쿨
리프킨 교수는 “21세기에는 역동적이고 정보 공유가 강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실질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빚더미에 올라 있는 미국경제는 더는 희망이 없는 실패한 경제”라고 했다. 우선 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공감’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주제였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아이작 뉴턴 등 계몽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경쟁하고, 계산적이고, 물질만능, 자기 이익만을 앞세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이기적이라면 68억 명의 인류가 어떻게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졌다. 마침 최근 신경체계와 유아발달을 연구하는 과학자에게서 의문을 씻어주는 영감을 받았다. 인간이 다름 아닌 ‘공감 뉴런(신경세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신생아실 갓난아이들은 옆에 아기가 울면 모두 따라 운다. 또 10개월 된 아기 앞에서 어른이 무거운 책을 들어 올리려고 쩔쩔매는 표정을 짓는 실험을 했는데 아기가 기어와서 도와주려 한다는 결과도 있다. 인간이 단지 경쟁만 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고 도와주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볼 때 우리 시스템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 시스템도 달라지고 자녀 교육체계도 달라지고 경영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당신은 책에서 2차 산업혁명 시대가 지고 3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다.

“내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2차 산업혁명 시대가 끝났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2008년 7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7달러까지 올랐을 때였다. 당시 화학비료, 방부제, 플라스틱 시멘트 등 건설자재, 화학섬유 등 석유를 활용해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폭등했다. 유가가 125∼130달러에 이르렀을 때 세계 22개국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났다. 26억 명이 하루에 2달러를 채 못 번다. 유가와 함께 식량가격이 오르면서 1억5000만 명이 기아상태에 직면했다. 요즘 농작물은 재배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석유 없이는 생산할 수 없다. 기름값이 뛰면 식량가격도 뛴다. 마침내 147달러가 됐을 때 각국의 성장엔진은 거의 멈출 지경이었다. 사실 두 달 뒤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가폭등이라는 지진의 여진에 불과한 것이었다. 화석연료가 바닥을 보이는 건 시간문제다. 머지않았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2030년경이 될 것이라고 하고 다소 낙관적인 사람들이 2050년을 얘기한다. 시기가 언제이든 아무도 이 추세를 바꿀 수는 없다.”

―앞으로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가.

“물론 그렇다. 다가오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감’이 인류 전체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혁명과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융합을 통해 본격 도래할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겪었다. 30억 명의 인구가 음성 문자 동영상으로 연결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또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의 의존에서 벗어나 태양열 풍력 지열 파도 등 재생 가능한 청정에너지에 눈을 돌리는 에너지 혁명도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 속에서 인류 의식은 변화할 것이고 사회는 더 복잡해지며 상호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다. 공감의 정도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최근 아이티 지진 때 트위터를 통해 지구 전체로 소식이 빨리 퍼졌고 순식간에 구원의 손길이 모아졌다. 이것이 바로 3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감이 인류 전체에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3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18개월 전쯤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며 시기까지 적시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3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나는 EU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데 참여해 EU 지도부를 도와 이 거대한 계획을 만드는 것에 참여했다. EU는 2020년까지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 9월에 자세한 내용을 담은 새 책을 낸다. 그때 더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3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이 유럽이 미국보다 빠르다.

“미국은 지금 유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21세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한국에 대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과 배움에 대해 그토록 적극적인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유대인보다 더하다. 한국인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한다. 나는 ‘왜 한국의 젊은 세대가 유독 이런 특징을 가지는 것일까’ 고민해봤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이렇다. 한국은 50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자주 침략을 당하고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과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실험하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힘이 바로 착취와 지배를 당한 역사 문화적 체험에서 나온다고 본다.”

―한국이 3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자랐다.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한국은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서 선도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21세기에 아시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 중 세계의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 여럿 나올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세계가 경제 금융위기,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등 3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도전을 이겨내고 세계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각자 얼마나 준비를 해왔느냐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어렵다고 본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고속도로를 깔았고 대도시 주변 교외를 건설했고 자동차와 패스트푸드 문화를 개발했다. 그러다 80년대 말 주택시장 붕괴가 왔다. 2차 산업혁명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미국은 이 충격을 3차 산업혁명으로 이겨낸 게 아니었다. 세계화 덕분에 빚을 끌어다 쓰며 이겨냈다. 지금 미국인들은 소득의 113%를 쓰며 살고 있다. 모든 미국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미국의 미래에 비관적인 것 같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는 미국인을 보라.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있다. 공식적인 실업률이 9.8%라고 한다. 실업자가 1500만 명을 넘고 이 중 630만 명이 6개월 이상 실업 상태다.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나 일감이 줄어 하루 2, 3시간밖에 일하지 못하는데도 취업상태로 분류되는 사람이 넘쳐난다. 이들까지 생각하면 실질적인 실업률은 20%를 넘을 수도 있다. 미국은 실패한 경제다.”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도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2차 산업혁명 시대 막바지에 엄청나게 성장한 나라다. 하지만 앞서 여러 차례 강조한 대로 이런 시대는 갔다. 중국은 중앙통제가 심한 경제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구글을 검열하는 나라는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에 적응할 수 없다. 현재의 중앙통제 시스템을 3차 산업혁명에 어울리는 유연한 경제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으로 정보를 나누고 세계와 교류하며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공유한다. 세계화돼 있고 창의적이고 열정이 있다.”

―신세대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여러 나라, 여러 기업의 경제 마스터플랜을 짜는 일에 조언하면서 항상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떤 나라 지도자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마스터플랜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도자나 CEO가 왜 있는 것일까.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였다. 한국의 젊은 세대를 보라. 그들은 진보든 보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행동이 폐쇄적인지 중앙통제적인지 수직적 상하체계로 이뤄지는 톱-다운 방식인지, 아니면 개방적이고 상호협동적이고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이뤄지는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조언하는 젊은 세대의 지도자나 CEO는 우리가 생각하는 마스터플랜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21세기 리더십은 어떻게 바뀌나.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선택해 변하는 조직이 승리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도, 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비정부기구(NGO)에서는 매우 빠르게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많은 조직에서 개방적이고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한 점은 정당, 정치 분야에서는 아직 변화가 없다.”

1시간 반가량 계속된 인터뷰 내내 리프킨 교수는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미리 질문지를 주지 않았는데도 마치 준비한 답변인 것처럼 논리적이고 달변이었다. 그는 올해 9월 3차 산업혁명 시대에 달라져야 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책이 나왔을 때 꼭 다시 인터뷰를 하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가 내놓을 새로운 진단이 궁금하다.

베데스다=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제러미 리프킨

△1945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 출생

△1967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제학 학사

△1969년 터프츠대 국제관계 석사

△1977년 경제트렌드재단 설립

△1994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대학원 교수

△주요 저서 엔트로피(1980년) 노동의 종말(1995년) 수소혁명(2002년) 유러피언드림(2004년) 공감의 시대(2010년)


[동아논평] 새 희망의 2011년을 기원하며
▲2010년 12월31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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