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제작 못하는 '한드', 장점도 있어
● 드라마와 연애하느라 아직 미혼
● '바보상자' TV드라마 폄하 시선 안타까워
▶▶①편에서 계속 - 평론을 하고 나서 드라마 제작진으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 경우도 있으신가요.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나 PD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 오시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시청률과 상관없이 드라마를 예술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비평해줘서 창작자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고 하셨어요. 제가 쓴 평론을 보고 문제의 원인을 느끼기도 했다고 해서 자부심을 느꼈죠."
▶ 드라마 평론계 '선수', 이제는 트위터로 시청자와 소통
윤석진 교수의 트위터. 그가 드라마를 보고 느낀 \'한줄 평\'을 올리기도 하고, 다른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토론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제작진의 피드백을 보다 빨리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인기 드라마 작가가 그의 트위터에 직접 고맙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트위터 친구 중에 김태희라는 이름이 있어 혹시 '배우 김태희?'라는 생각에 잠시 흥분했어요. 알고 보니 '성균관 스캔들'의 작가 분이었죠.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고 감동을 받아 늦은 시간에 이런 저런 글을 트위터에 남겼는데 김 작가께서 인사말을 남기신 거였습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여 주셔서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 트위터를 시작하신 이유가 있다면.
"완성된 상태로 관객과 만나는 연극이나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연속극'이라는 진행형으로 시청자와 만나는 극예술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방영 당시 시청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트위터를 이용하면 드라마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데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들이 제 트위터를 접하면서 드라마도 어엿하게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 TV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가치가 폄하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일상예술로서 TV드라마의 가치와 무게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자체가 워낙 대중적이고 한 때 '바보상자'로 불리기까지 했으니 TV를 폄하하는 시선이 많아 안타까워요. 예술이란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고급스러운 취향이라는 생각이 TV드라마의 가치와 무게를 부정하게 만든 것인데, 예술은 그렇게 고상하고 숭고하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모든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예술적 욕망을 일상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TV드라마의 가치와 무게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가 평론한 글에서는 유독 '기시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비슷비슷한 구조와 캐릭터로 '자기 복제'하느라 시청자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대박드라마' 흉내 내기, 고질적 병폐
'대물'로 지난해 말 SBS연기대상을 수상한 고현정은 수상 소감으로 "시청률로 배우를 평가하지 말라"고 해 화제가 됐다. 사진 제공 SBS. -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는 뭐라고 보시나요.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의 소재를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라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아요. 고전 비극이나 명작 중에도 이런 진부한 소재들이 자주 사용됩니다. 전 오히려 '일일연속극' '주말연속극' '미니시리즈'와 같은 양식(format)에 따라 각기 달리 적용되는 극적 구조의 진부함이랄지 상투성이 문제라고 봐요. 또 작가 정신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기존의 대박드라마를 흉내 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드라마 제작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강조하면서 보신주의로 일관할 경우 우리 드라마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겠죠."
지난해 말 SBS와 KBS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문근영과 고현정은 각각 시청률로만 평가받는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이들의 발언 속에는 '쪽대본', '시청자 눈치보기' 등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고질적 병폐를 지적하는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윤 교수 역시 "배우가 직접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지 알 수 있다"며 그들의 의견에 공감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의견을 작품에 반영하고, 그러느라 결말이 달라지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우리 전통 마당극에서도 극 마지막에 관객이 무대에 올라 배우와 함께 춤추고 놀죠. 시청자가 창작의 주체로 참여해 제작진과 함께 한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우리 국민성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 '한류' 열풍 이후 한국 드라마는 어떤 변혁을 겪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한류 열풍이 드라마의 산업적 기반을 탄탄하게 해준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한류 스타에 의존한 제작 경향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양산되고 있어요. 국내 시청자가 외면한 작품일지라도 한류 스타를 등에 업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리죠.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스타 배우'가 아니라 탄탄한 극본과 탁월한 연출력으로 완성되는 영상예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미드' '일드' 유입이 한국 드라마에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전문직 드라마로도 불리는 미드와 일드는 천편일률적인 한국 드라마의 소재를 확장시켰습니다. 또 사전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 완성도가 높다보니 젊은 한국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올려놓게 됐죠."
- '한류' 열풍은 드라마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앞으로도 드라마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사랑이 뭐길래', '겨울연가', '대장금' 등의 성공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의외로 외국인들은 전통문화, 한국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쉽게 공감을 느낍니다. 이처럼 드라마는 동시대 삶의 정서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사회문화적 기록물이자 영상예술이기에 앞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서의 위상은 더욱 견고해질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한국 드라마에 거는 바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자극적, 선정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이른바 '막장드라마' 말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드라마를 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착한' 내용을 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성찰하는 계기를 주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것이죠."
‘사랑이 뭐길래’,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국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의외로 해외 시장에서 선전했다. 사진 제공 MBC. ▶ "이 결혼 반댈세"…드라마의 저주?
그는 우리나라 남성 가운데, 아니 여성까지 합쳐 가장 드라마를 많이 보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와 뜨겁게 '연애'하다보니 아직 미혼이다. 드라마 전문가라는 사실이 그의 사적 영역에도 영향을 미칠까 궁금했다.
"여전히 '소개팅'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성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면 첨엔 민망하고 어색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제가 드라마를 전공했다는 걸 알면 드라마를 소재로 자연스레 수다를 떨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호감도가 상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 연애에 환상이 없어선지, 아니면 '난 이 결혼 반댈세' 류의 드라마 단골 대사들이 저주를 내렸는지 깊은 인연으로는 발전하지 못한 아픔이 있습니다."
- 미혼이시다보니 더 자유롭게 드라마를 볼 수 있으셨던 것 같아요. 자녀가 있으셨다면 매일 TV보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아무래도 혼자 조용히 볼 수 있으니 미혼이란 사실이 도움이 되긴 하죠. 남이랑 같이 보면 꼭 몇 마디씩 섞게 되고, 그러다보면 중요한 대사를 놓치거든요. 하지만 피치 못한 약속 때문에 드라마 본방 사루를 하지 못할 때 저 대신 드라마를 녹화해 줄, 또 제가 보고 싶지 않은 드라마를 대신 봐주며 내조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 '드라마 보는 남자'에 대한 주변 남성 분들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요즘 중년 남성 중에 의외로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분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제게 그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일이자 공부라는 사실을 정말 부러워하시죠. 저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공부의 대상이 되는 순간,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말씀드리고요."
▶ 중년 남성들이 아침 드라마에 빠지는 까닭은?
그는 "특히 중년 남성 가운데 아침드라마에 빠져 있는 사례를 최근 많이 봤다"며 "그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규명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침 연속극을 특히 좋아하는 한 동료 교수님은 '아침부터 극악스럽게 내지르는 고성을 듣고 싶지 않아 아침드라마를 기피 한다'는 제게 '연구자의 기본자세가 안돼 있다'고 농담 같은 질책을 하시더라고요. 강연회에서 만난 한 남성분은 아침드라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출근하면서 볼 수 있는 DMB폰을 장만했다고도 하시고요."
- 왜 중년을 넘긴 남성들이 아침드라마에 열광하는 걸까요.
"자녀가 어느 정도 독립할 나이가 되면 집에만 있던 아내들이 드디어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얼굴도 보기 힘들어지죠. 빈 둥지에 혼자 남은 남성들은 가정이 흔들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요. 이럴 때 불륜, 가정 파괴 등 이런 불안감을 구체화한 아침 드라마를 만나게 되면서 그 내용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들은 결국 갈등이 봉합되며 해피엔딩을 맞기 마련인데 남성들도 이런 결말에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요."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등장인물들이 선사한 즐거움과 교훈을 시청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그는 동아일보 대중문화 웹진 O₂ 칼럼 '드라마캐릭터열전'을 통해서도 드라마 속 캐릭터를 집중 조명하는 평론을 연재 중이다.
"드라마가 결코 '허접 쓰레기' 같은 폐기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우리 문화 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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