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해적 5명 압송]소말리아어-영어-한국어 3단계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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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 첫 해적수사 어떻게


30일 국내 사법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해적들을 구속하고 석해균 선장(58)에게 총을 쏜 주범도 어느 정도 확인되면서 수사는 이들의 구체적인 해적활동을 샅샅이 밝혀내는 데로 집중되고 있다. 수사본부가 설치된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유엔해양협약, 형법 등을 검토한 결과 혐의 입증을 자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 선장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나머지 선원들도 한국에 없는 상태에서 짧은 기간에 수사해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소말리아어-영어-한국어로 이어지는 3단계 통역 과정도 수사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걸림돌이다.

○ 납치부터 생포 때까지 모든 행위가 수사 대상

해적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해상강도 살인미수, 선박에 대한 위해행위, 구출작전을 펼친 해군부대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 세 가지. 수사 대상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순간부터 청해부대의 인질 구출작전으로 생포될 때까지 모든 과정이다. 한국 선박 납치를 사전에 계획했는지 여부, 선박 강탈 뒤 강제 운항, 선원 억류와 인질 몸값 요구 등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석 선장에게 총을 쏜 무함마드 아라이의 혐의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다. 수사 첫날인 30일에는 장거리 비행, 시차 등을 감안해 오후 5시까지 신원확인 등 기본 조사만 벌인 뒤 부산해경 유치장으로 입감했다.

수사본부는 한국 선원 7명이 쓴 자필 진술서와 청해부대 구출작전 영상, 최영함 작전상황 일지, 삼호주얼리호 운항 일지 등 기초 수사 자료는 이미 확보했다. 해적들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오만에 있는 삼호주얼리호가 입항하면 한국인 선원과 미얀마인 선원들을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한다. 건강, 심리적 문제 때문에 경찰 출석이 어려우면 방문조사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과거 한국선박 피랍 연관성도 수사

수사 대상에는 동원호(2006년), 마부노호(2007년), 삼호드림호(2010년), 금미305호(2010년) 등 과거 소말리아 해상에서 납치됐다 풀려났거나 여전히 억류 중인 피랍사건도 포함돼 있다. 한국 선박만 노린 소말리아 해적그룹이 사건 주모자라면 생포 해적들이 옛 한국선박 납치 범죄에 가담했을 여지가 크기 때문. 이번 수사에서 현장 납치 주동자, 배후조종 세력 등을 밝혀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와 한국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데다 소말리아 현지에 있을 배후세력을 검거하기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해적 가운데 일부가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직업을 ‘군인’이라고 밝힌 만큼 소말리아 군벌 소속과 국제 해적단체의 연계 여부도 조사한다. 석방 협상에 어려움이 많은 금미305호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있는지도 포함했다. 우리 선박과 소말리아 해적이 관련된 모든 부분을 수사 대상으로 볼 수 있다.

○ 통역, 범행 떠넘기기…수사 곳곳 난제

본격 수사는 31일 시작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맹에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해적들을 장시간 상대해야 한다. 통역은 영어가 가능한 소말리아인 2명이 맡았다. 이들은 2003년부터 난민비자를 받아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 2명도 포함됐다. 수사관이 한국인에게 질문하면 한국 통역이 영어로 소말리아 통역에게 전달한다. 그 뒤 소말리아 통역이 해적에게 소말리아어로 바꿔 묻는 절차다. 대답은 반대 순서. 따라서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사 속도를 낼 수 없다. 해적 가운데 1명이 아랍어를 일부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31일부터는 국내 아랍어 전공자 1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수사 계획대로라면 피의자 범죄조서만 A4용지로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장 분량이 예상된다. 결국 통역이 수사 성공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사건기록을 넘겨받을 검찰도 같은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사건이 송치되더라도 다음 달 28일로 예상되는 기소 시점까지 밝혀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해적들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충남 천안 외국인교도소에 수감된다.

모르쇠 전략도 뚫어야 한다. 해적들은 입을 맞춘 듯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많은 말을 쏟아냈다. “동료 해적이 선장을 쐈다” “다른 사람들이 배를 납치한 뒤 배에 탔을 뿐 관련 없다” “일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배에 탔다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렸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수사본부는 “이미 선원 자필진술서와 청해부대 영상 등 수사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혐의 입증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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