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주화 시위에 대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다소 우유부단하고 모호한 대응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집트 시위 사태 엿새째인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미국은 질서 있는 전환(transition)을 촉구하며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사태 발생 초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집트 정부는 안정돼 있다”는 발언을 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우물쭈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가진 지렛대가 생각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부터 미국은 이집트에 매년 13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1980년대보다 오히려 크게 줄었다. 1980년 20%대 수준에 이르렀던 이집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사원조의 비중은 지난해 1%까지 추락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집트 시위에 대한 초기 판단 실수와 이에 따른 대응 미비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보당국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리 이집트 사태를 예상하고 전문을 작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이집트 정권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과 위키리크스의 문서공개 파문의 영향력을 간과한 것도 보이지 않는 실책이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맛본 실패 경험도 미국의 대응을 위축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 재건에 나섰지만 10년 넘게 지속되는 두 전쟁에서 현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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