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8)이 ‘아덴 만 여명작전’이 이뤄진 지 13일 만에, 한국으로 이송된 지 5일 만인 3일 의식을 회복하면서 처음 한 말이다. 짧지만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는 감격스러움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날 오전 의료진이 인공호흡기와 기관(氣管) 튜브를 제거하자 석 선장은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이어 유희석 아주대병원장이 병실 한쪽에 걸려 있는 ‘석해균 선장님,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 아주대학교 병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가리키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에 유 원장이 “왜 웃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이같이 ‘첫 인사’를 건넸다.
부인 최진희 씨(58)와 둘째 아들 현수 씨(31)가 찾아왔을 때는 농담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현수 씨가 석 선장에게 다가가 “아빠, 나예요”라고 말하자 석 선장은 웃으며 “졸리다. 나가 봐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또 해군 출신인 이국종 교수가 석 선장의 눈에 띄는 곳에 해군 마크를 붙여놓고 보여주자 “나도 해군인데…”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가 곧 오시지 않겠느냐”고 말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또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이 무사히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크게 안도하기도 했다. 부인 최 씨가 “선원들이 곧 면회를 올 것 같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병원 관계자는 “석 선장이 정도 많고 농담도 잘한다”며 “의식이 있을 때 이뤄진 고통스러운 치료도 여유롭게 견디는 것을 보면 진짜 ‘마도로스’”라고 전했다.
빠르게 호전되는 것으로 보이던 석 선장은 4일 새벽 다시 의식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것. 의식을 찾은 지 약 18시간 만이다. 유 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석 선장이 오전 2시 반경 급성 호흡부전 증세를 보여 3시 20분경 기관 튜브를 다시 넣고 인공호흡기로 치료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흡곤란의 원인은 심한 통증과 폐부종(폐에 물이 차는 증상), 폐렴 등이다. 폐렴은 이날 처음으로 발병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3일 호흡장치를 제거한 것은 환자 상태에 따라 이뤄진 조치였다”며 “호흡곤란은 중증외상 환자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것으로 혈압과 맥박 등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 선장이 다시 의식을 찾기까지는 2∼3주 걸릴 것으로 의료진은 내다봤다. 이에 따라 추가 검사 및 수술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우선 다음 주로 예정된 골절수술 등은 2∼3주 뒤로 연기됐다. 뇌 컴퓨터단층촬영(CT)도 미뤄졌다. 유 원장은 “이제는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보면 된다”며 “외상외과 등 6개과 의료진 20여 명이 비상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2~3시간 ‘쪽잠’… “몸 부서져도 선장 완치시킬 것” ▼ 의료진 설도 잊고 진료 총력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 중인 아주대병원 의료진에 이번 설 연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유희석 원장과 수술을 주도했던 이국종 교수 등 의료진 8명은 연휴에도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중환자실 상황을 체크했다. 유 원장은 5일 기자와 만나 “휴일엔 외래환자가 없어 중증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 연휴가 석 선장 치료에 되레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석 선장 가족은 병원 측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오만에서부터 줄곧 석 선장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이 교수와 김지영 간호사의 노고를 강조했다. 석 선장 말고도 20여 명의 중증외상환자를 돌보고 있는 이 교수는 기껏해야 하루에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빈틈없는 진료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는 최근 브리핑에 참석해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석 선장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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