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이집트의 민주화 ‘메카’로 부상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전국적으로 최대 100만 명(AFP통신 추산)이 모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홍해 휴양지로 ‘피신’했지만, 즉각 퇴진을 거부한 ‘30년 장기집권자’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는 누그러들기는커녕 절정을 향해 폭발하듯 타올랐다.
○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
11일 오전 타흐리르 광장은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차곡차곡 메웠다.
금요예배 시작 시점인 이날 오후 2시경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발표된 이날 군의 성명은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고조시켰다. 시위대에 막 합류하려던 한 여성은 “우리는 군이 옳은 선택을 내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군은 언제나 무바라크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며 “과도정부를 이끌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한 40대 남성은 “우리는 무바라크가 대통령궁에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가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것이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떠나라’는 뜻의 아랍어 “이르할”을 소리 높여 외쳤다. AP통신은 시위대의 의지가 시위 발발 이래 가장 굳세어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를 무바라크 재임 30년 중 ‘최대 규모의 시위’로 만들겠다는 시위지도부의 다짐대로 인파가 몰려들어 광장에 배치된 군 탱크가 일찌감치 군중의 물결 속에 파묻혔다. 밤새 광장을 지킨 이들이 탱크의 캐터필러(무한궤도 바퀴)에 기대 쉬는 모습도 보였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 대한 불신도 가득했다. 전날 밤부터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30대 후반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무바라크가 술레이만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고 하지만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나 똑같은 사람”이라며 “오랫동안 이집트 정보국장으로 일한 술레이만이 더 폭력적이고 음흉하다”고 말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AL) 사무총장에 대한 평도 다르지 않았다. 이 교사는 “무사 사무총장도 무바라크 밑에서 10년 동안 외교장관을 한 사람”이라며 “그 역시 현 체제 인사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아침부터 탱크 4대가 지키는 대통령궁 정문 앞에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 무바라크 퇴진 구호를 외쳤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몇 블록 밖에 떨어져 있는 정부와 의회 청사 국영TV 방송국도 아침 일찍부터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700만 인구의 카이로 시내 곳곳은 시위대에 동조하는 자동차들이 울리는 경적으로 시끄러웠다.
한편 야권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반정부 시위로 위기에 처한 이집트 정권은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같다”며 “연립정부에 권력을 넘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분노의 함성으로 변한 희망의 축제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타흐리르 광장은 축제의 마당이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곧 하야를 발표하는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45분 무바라크 대통령이 TV 앞에 나섰다. 희망에 들떠 있던 시위대의 얼굴 표정이 어둡게 바뀌기까지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이 치러지는 9월까지 평화적 권력이양 절차를 밟아갈 것”이라고 언급하자 시위대의 희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17분간 진행된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술레이만 부통령이 TV에 출연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귀가와 일자리 복귀를 권고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신발을 쳐들어 TV를 향해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인근 국영TV 및 라디오 방송국 건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 이날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장교들이 속속 시위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흐메드 알리 샤우만 이집트군 소령은 11일 로이터통신과의 통화에서 “대위에서 중령에 이르는 중간급 장교 약 15명이 시민혁명에 동참했고, 이들은 곧 시위대를 상대로 연설할 것”이라면서 “우리의 목적은 시민들의 목적과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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