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찢어진 눈, 넙죽 얼굴, 삐뚜름 코··· 부처가 다들 이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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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8일 03시 00분


운주사 ‘천불천탑’과 놀다


《나를 부처라고 부르지 말라 천불천탑(千佛千塔) 그 하나가 부족하여 날 새버린 개벽의 꿈이 아쉽다고 말하지 말라/ 마지막 하나의 부처가 내 배꼽 위에 앉아있는 너 자신임을 알기까지는 화순 들녘의 땀 흘리는 중생들이 바로 내 자식들임을 알지 못하리라/ 나를 보고 미륵세상을 노래하지 말라 내 몸이 부서져 닳고 닳아도 여전히 한스러운 세상 나의 기다림은 멀다/ 나를 누워있는 부처라고 부르지 말라 나의 발끝에서 더 이상 절하지도 말라 너희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일어서지 않을 때 나는 돌이 되어 이렇게 꿈틀거리고 있다 <이병창의 ‘화순 운주사’에서>》

화순 운주사 와불(臥佛)은 누워 있지 않다. 결코 ‘누워 있는 돌부처’가 아니다. 돌은 누워 있으나 두 부처는 앉거나 서 있다. 서쪽 산등성이 꼭대기에서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1000년 동안 ‘하늘과 한판 기(氣)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러기 떼처럼 점점이 서 있는 못난이 탑들과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바보 무지렁이 돌부처들. 문득 내가 한없이 어리석고 못나 보이는 날, 운주사 골짜기에 오면, 못난이 돌부처들이 배시시 웃으며 어깨동무를 해준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의 탑들이 “너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부처님”이라며 등을 두드려 준다. 운주사 천불천탑 골짜기는 이 세상 모든 못난이들의 도솔천이다. 미륵의 땅, 미륵의 나라이다. 위 사진은 코가 뭉개지고,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이 떨어지거나 아예 지워져버린, 못난이 돌부처들의 얼굴들. 화순 운주사=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기러기 떼처럼 점점이 서 있는 못난이 탑들과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바보 무지렁이 돌부처들. 문득 내가 한없이 어리석고 못나 보이는 날, 운주사 골짜기에 오면, 못난이 돌부처들이 배시시 웃으며 어깨동무를 해준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의 탑들이 “너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부처님”이라며 등을 두드려 준다. 운주사 천불천탑 골짜기는 이 세상 모든 못난이들의 도솔천이다. 미륵의 땅, 미륵의 나라이다. 위 사진은 코가 뭉개지고,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이 떨어지거나 아예 지워져버린, 못난이 돌부처들의 얼굴들. 화순 운주사=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한 분은 오른다리를 들어 얹은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고, 다른 한 분은 꼿꼿이 서 있다. 하늘에선 구름이 오가고, 눈이 온다. 비가 내린다. 찬 서리가 내리고 칼바람이 분다. 햇살이 몸을 간질인다. 그래도 두 부처는 꼼짝하지 않는다. 두툼한 입술을 굳게 다물고 오로지 묵언정진할 뿐이다. 그 앞에선 머슴돌부처가 묵묵히 두 부처를 지키고 있다.

운주사 골짜기는 밑바닥이 터진 ‘∩’꼴이다. 양쪽 산등성이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산등성이는 야트막하다(약 100m). 두 산등성이 안쪽은 아늑한 우묵 배미 골짜기이다. 골짜기 북쪽 끝은 이마가 툭 튀어나온 바위절벽으로 막혀 있다. 그 절벽 벼랑엔 마애불이 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 남쪽 그 너머 들판엔 아슴아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골짜기 안에는 못난이 돌부처들이 우글우글하다. 보리밥 알갱이처럼 몸통이나 얼굴선이 길쭉하고 갸름하다. 모딜리아니(1884∼1920) 초상화의 여인들 같다. 울퉁불퉁 투박하다. 세련된 것은 몇몇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코끝이 닳거나 깨져 뭉툭한 돌부처는 그나마 잘생긴 편에 든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돌부처가 있는가 하면, 목이 잘려 머리만 있는 돌부처도 있다. 머리 없는 몸통돌부처는 말할 것도 없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산마루에 있는 우두머리 돌부처 와불. 이 두 분의 돌부처가 벌떡 일어서는 날 ‘후천개벽의 미륵세상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산마루에 있는 우두머리 돌부처 와불. 이 두 분의 돌부처가 벌떡 일어서는 날 ‘후천개벽의 미륵세상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못난이 돌부처들은 그 골짜기 안에서 신나게 논다. 골목길 개구쟁이들처럼 온종일 떠들며 찧고 까분다. 그곳은 못난이 돌부처들의 해방구이다. 무지렁이 돌부처들의 후천개벽 놀이터이다. 그들은 논두렁 밭두렁에서 갈지자 춤을 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광버스 막춤’을 춘다. 논밭에 엎어져 나뒹굴고, 경사진 바윗돌에서 미끄럼을 탄다. 거꾸로 처박혀 흙장난을 한다. 그러다가 쪼글쪼글 나이든 돌부처들은 바위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어 물끄러미 해바라기를 한다.
‘지지리도 못나/말 한마디 못하고/울지도 못하고/벗들이여 우리 새로 벗이 되자/우리가 밟은 땅 위에서/푸른 하늘이 되자/구름장 걷고/화순땅 운주사 마른 풀밭 위에서’ <고은 ‘운주사’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한 절에 1∼2개가 보통이다.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 2개 탑이 그 좋은 예다. 운주사 골짜기엔 수많은 탑이 있다. 절은 하나이지만 탑은 수도 없다. 탑들은 돌부처와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투박하다.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백제탑, 신라탑, 고려탑에서 중국 송나라 냄새 나는 탑도 있다. 사각형 탑도 있고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듯한 거지 탑(동냥치 탑)도 있다. 초코파이나 주판알을 쌓아올린 듯한 빵떡탑(원형다층석탑), 납작 원반을 켜켜로 층층 쌓은 호떡탑(원반형다층석탑), 실 감는 실패 모양의 원반형돌탑 등 가지각색이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절’이란 뜻이다. ‘배를 띄우는 절’이란 뜻의 ‘運舟寺(운주사)’라는 설도 있다. 하늘을 흘러 다니는 구름이나, 물 위를 떠다니는 배나 그 이미지는 비슷하다. 운주사 골짜기는 커다란 배의 한복판이 되는 셈이다. 못난이 돌부처들은 울끈불끈 노 젓는 사공들이고, 우뚝우뚝 탑들은 물길을 잡는 노라는 얘기다. 도선 선사(827∼898)가 이 땅의 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운주사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이 골짜기의 불상과 탑들은 12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선 선사가 죽은 지 한참 뒤의 일이다. 저잣거리 중생들의 꿈이 도선 선사를 끌어들여 그러한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서쪽 산마루 와불은 우두머리 돌부처님이다. 그 와불이 벌떡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날, 바로 후천개벽의 미륵세상이 오는 날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날이다. 두 부처의 얼굴은 계란처럼 갸름하다. 귀는 길고 넓적하다. 입술은 두툼하고 눈은 반달형이다.

와불은 북극성이다. 우주의 중심이다. 그 아래 산허리에는 북두칠성(국자) 모양의 둥근 돌덩이 7개가 자리 잡고 있다. 바위덩이 크기가 북두칠성 별 밝기와 비례한다. 배치 간격이나 각도도 북두칠성과 유사하다. 그 7개의 칠성판은 북극성인 와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대체 운주사 못난이 돌부처와 탑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고려시대 석공들이 대량으로 만들어 팔다가 남은 무녀리 작품들인가. 아니면 고려 견습석공들의 어설픈 실습작품들인가. 시쳇말로 요즘의 ‘불상 만들기 주말 체험장’쯤이라도 됐던 것일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던가. 내가 한없이 어리석고 못나 보이는 날, 문득 운주사 골짜기에 오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못난이 천불천탑들이 배시시 웃으며 맞아준다. 운주사 돌부처는 80% 이상이 서 있다. 앉아 있는 부처는 20%에도 못 미친다. 모두가 서서 스스럼없이 마음을 연다. 살기(殺氣)가 전혀 없다. 눈은 하나같이 감고 있다. 반 이상이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합장 자세이다. 그것마저 장삼 사이에 감춰 은근하게 ‘∧’꼴로 솟은 손이다. 그렇다. 운주사에는 부처 아닌 돌이 없다. 미륵의 나라, 미륵보살의 땅이다.
▼교통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는 게 교통편도 많고 빠르다. 광주에서 화순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기차 KTX: 서울용산역→송정리역이나 광주역 하차. 그곳에서 화순행 버스(화순시외버스터미널 061-374-2254) 이용.

△고속버스: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광주(광주에서 화순행 버스).

△승용차: 서울→호남고속도로→서광주나들목→산월나들목→광주제2순환도로→소태나들목→화순

▼먹을거리

△한정식: 수림원(061-374-6560) △흑두부보쌈: 도곡달맞이흑두부(061-375-8465) △새조개: 남해바다(061-372-8555) △청국장: 빛고을청국장(능주 061-372-1616) △다슬기: 사평다슬기(061-372-6004)

▼문의=화순군 문화관광과 061-379-3501∼5

▼시루떡처럼 층층이 갈라지는 응회암에 부조만 새겨

■ 운주사 불상에 환조가 없는 이유

경주남산의 돌부처는 화강암을 사방에서 깎아 만든 불상이고(위), 운주사의 돌부처는 응회암 앞면만을 돋을새김한 불상이다(아래). 화순 운주사=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경주남산의 돌부처는 화강암을 사방에서 깎아 만든 불상이고(위), 운주사의 돌부처는 응회암 앞면만을 돋을새김한 불상이다(아래). 화순 운주사=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경주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의 화강암 산이다. 남산 40여 골짜기엔 절터 122곳, 돌부처 57개, 돌탑 64개 등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절집이다. 골짜기마다 불상이나 탑들의 조성연대가 달라 가히 ‘야외 신라조각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신라사람들이 세운 ‘부처의 나라’인 것이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백제 후손들이 건설한 ‘미륵의 땅’이다. 부처와 탑들은 한 골짜기 안에 오종종 모여 있다. 돌부처 100여 개, 돌탑 21개가 배시시 웃고 있다. 골짜기는 넓지 않다. 길어봐야 1.5∼2km나 될까. 경주남산 부처와 탑들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둘러봐야 한다. 하지만 운주사 부처와 탑들은 두세 시간이면 거의 다 볼 수 있다.

경주남산의 부처들은 마애불을 빼놓곤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이 모두 새겨져 있다. ‘돌의 사방을 모두 깎아’ 만든 환조(丸彫·Carving in the round)작품이다. 하지만 운주사 부처들은 한쪽 면만 돋을새김한 부조(浮彫·Relief)이다. 경주남산의 화강암은 돌이 희고 겉에 작은 구멍이 많아 조각하기에 좋다. 토함산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도 이곳 돌을 가져다 다듬었을 정도이다. 운주사 돌은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켜켜로 쌓여 굳어진 돌이다. 시루떡처럼 층층으로 결이 있어 정교하게 깎기가 어렵다. 앞모습만 돋을새김한 이유다.

경주남산 부처나 운주사 부처나 모두 저잣거리의 민초들이 만든 것이다. 하나같이 정겹고 소박하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린 엄마아빠 얼굴 같다. 투박하기로는 운주사 부처들이 더하다. 화강암과 응회암의 차이일 것이다.

신라사람들이나 백제 땅 사람들이나 모두 미륵세상을 꿈꿨다. 그들은 직접 부처를 만들고 탑을 쌓은 뒤 그 부처와 탑에 소원을 빌었다. 신라왕족이나 귀족들은 불국사 분황사 황룡사 사천왕사 같은 크고 화려한 절에 다녔다. 그런 절들은 백제 아비지나 아사달 같은 프로 석공들을 불러다가 만들었다. 석가탑 다보탑도 마찬가지이다.

미륵부처는 메시아이다. 석가모니가 죽은 뒤 56억7000만 년 뒤에 올 미래부처이다. 미륵불은 현재 도솔천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신라사람들이나 백제 땅 사람들이나 모두 미륵부처를 믿었다. 하지만 믿는 방식은 달랐다. 즉 신라인은 미륵상생, 백제인은 미륵하생을 바랐던 것이다.

신라사람들은 죽은 뒤 미륵불이 살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길 빌었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5만여 가구의 경주사람들은 숯불로 밥을 지어 먹을 정도였다. 삼국통일을 이뤄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었다. 현실에 큰 불만이 없었다. 관심은 죽은 뒤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미륵이 있는 도솔천은 기독교의 천국이나 같다.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은 크리스천이 천당에 가는 것과 똑같다.

백제 땅 사람들은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그들을 구제해주길 바랐다. 하루빨리 미륵부처가 이 땅에 내려와 ‘귀족과 평민, 남성과 여성,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이뤄지길 꿈꿨다. ‘모두가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랐다. 그만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1000개의 부처와 1000개의 탑을 만들어 그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빌었다. 와불(臥佛)이 벌떡 일어나는 날, 미륵세상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나 운주사에 가서 와불에게로 가서/벌떡 일어나시라고 할거야/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와불이 누우면서 발을 길게 뻗으면서/저만큼 밀쳐낸 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산 내놓으시라고 할거야/아마도 잠버릇 사납게 무심코 내쳤을지도 모를/산 두어 개 내놓으시라고 할거야’ <신현정의 ‘와불(臥佛)’에서>
▼4km계곡에 고인돌 596기 청동기 마을을 걷는 기분▼


화순은 고인돌의 땅이다. 고인돌은 ‘고여 있는(지·支)’+‘돌(석·石)’ 즉 고임돌을 뜻한다. 2000∼3000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이다. 화순 고인돌(사진)은 효산∼대신마을을 잇는 4km 보검재계곡에 596기가 몰려 있다. 100t이 넘는 것만 수십 기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200여 t의 고인돌(핑매바위)도 볼 수 있다. 2000년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죽음이 너무 가벼워서/날아가지 않게 하려고/돌로 눌러두었다./그의 귀가 밝아서/들억새 서걱이는 소리까지/뼈에 사무칠 것이므로/편안한 잠이 들도록/돌이불을 덮어 주었다./그렇지 않다면,/어찌 그대 기다리며/천년을 견딜 수 있겠는가.’<염창권의 ‘고인돌’에서>

고인돌 덮개돌은 ‘죽은 자들을 위한 돌이불’이다. 무겁지만 따뜻하다. 돌이불은 인근 돌공장(채석장)에서 떼어내 운반한 것이다. 마당바위, 관청바위, 각시바위, 감태바위 등 인근 산기슭의 큰 바윗돌이 채석장이다. 암벽에 돌을 떼어낸 자국이 뚜렷하다.

화순 고인돌길은 아늑하다. 청동기 사람들의 공동묘지는 고즈넉하다. 화순군의 문화재전문위원 심홍섭 씨(46)는 “봄이 오면 고인돌 주위가 온통 철쭉꽃천지다. 크고 검은 돌에 붉은 꽃이 핀 것 같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이 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왔다. 고인돌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화순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화순은 이곳으로 귀양 왔던 조광조(1482∼1519)가 사약을 받은 곳이다.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1807∼1863)이 눈을 감은 땅이다. 창랑천 7km에 이르는 적벽(赤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곳엔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는 물염정(勿染亭) 정자가 있다. 곱게 늙어 단아한 절집 쌍봉사도 빼놓을 수 없다.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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