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란 무엇일까? 그는 왜 그토록 '진실'에 집착하는 걸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진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저 모든 게 궁금하다.
거칠고 퉁명스러운 것은 기본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그에게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법의학자이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학적 진실' 규명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돌연사한 것을 납득하지 못하던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설명해주고 위로해준 것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였다. 죽어가면서도 홀로 남을 아들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몸짓이 부검을 통해 밝혀지면서 그는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납득하고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과학적 진실'만이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마지막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라는 신념으로 무장한, 세계가 주목하는 법의학자로 성장한 그는 윤지훈(박신양 분)이다. 그는 부검 과정에서 그 어떤 외압이나 사적인 감정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법의학의 가장 큰 힘은 진실"이라는 스승 정병도(송재호 분)의 가르침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에게 '부검'은 과학을 도구 삼아 치루는 신성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산 자는 거짓을 말하고 죽은 자는 진실을 말한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새기고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그는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법의학드라마'라는 장르를 개척한 '싸인'에서 과학적 진실로 정의를 추구하는 법의학자 윤지훈이 진부하게 느껴진 것은 그래서였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명료한 것과 달리,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과 악은 마치 물 위에 그어 놓은 선처럼 경계가 분명치 않다.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지향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선과 악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공존하고 있으며 이런 속성이 인간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로 각인시킨다.
선과 악의 경계가 선명한 인물들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적 선'의 입장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지향하는 윤지훈의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아무리 소리를 버럭 지르고 거칠게 행동해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한류스타 서윤형 살인사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일본에서 발견된 백골 사체 부검, 미군범죄사건에 임하는 윤지훈의 자세와 태도는 언제나 분명하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유언을 들려주는 신성한 부검에 있어서 어떠한 외압이나 사적인 감정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부검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부당한 권력의 힘으로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정병도를 몰아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원장 자리에 오른 이명한(전광렬 분)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진실 논쟁을 벌인다.
한류스타 서윤형의 사인(死因)을 두고 벌이는 윤지훈과 이명한의 논쟁은 '진실'을 둘러싼 이들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권력의 핵심과 부당한 거래를 마다하지 않는 이명한은 미래 권력을 예약한 정치인의 딸이 연루된 서윤형 살인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이에 맞서 윤지훈은 서윤형이 남긴 죽음의 사인(sign)을 찾아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서윤형의 시신을 바꿔치기 한 뒤 독단적으로 부검에 나선다. 윤지훈은 부검을 통해 서윤형의 사인이 비구폐색성 질식사임을 규명하지만, 이명한은 청산가리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규정하면서 둘 사이의 진실 논쟁은 행정안전부 인사 징계위원회로 이어진다.
부검 결과를 조작한 이명한의 불의와 과학적 진실로 무장한 윤지훈의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기는 사람이 옳은 거고 진 사람은 틀린 거지"라며 "이기는 것이 진실"임을 강조하는 이명한의 주장은 윤지훈의 '진실'과 '정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도덕과 양심에 입각한 진실의 절대적인 힘이 부정되는 현실에서 정병도 원장마저 이명한의 손을 들어주고 불명예 퇴임하는 상황에 직면한 윤지훈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 왜소해진 법의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정병도 원장의 부탁으로 겨우 징계를 면하고 분원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정의의 사도 역할을 수행하는 영웅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와 같은 시련일 뿐이다.
윤지훈은 기본적인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분원에서 법의학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기반 시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권력과의 야합을 마다하지 않는 이명한 원장이 단순 뺑소니사고로 처리한 연쇄살인사건에 의문을 갖게 된다.
노래방에 잠입해 어렵게 확보한 형광등으로 자외선 조명을 만들어 죽은 자의 마지막 유언을 확인하여 뺑소니사고로 위장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본원으로 복귀한 윤지훈은 이후 조직폭력배 간의 살인사건으로 일단락되던 미군범죄 현장을 치밀하게 감식하면서 또 다시 정치권력과 결탁한 이명한과 맞선다.
이렇게 그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과 정의라는 절대적 선의 세계를 구현하는 영웅의 면모를 가진 존재이다.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가 실종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든지 나타나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외칠 것 같은 윤지훈은 정형화된 틀에 갇혀버린 영웅이다. 절대적인 선의 세계에서 타락한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으로서의 면모가 고뇌하는 인간의 매력을 지워버린 것이다.
이렇게 평면적인 캐릭터로 주저앉을 것 같았던 윤지훈은 재벌그룹 회장이 개입된 의문의 독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녔던 재벌그룹 간부급 임원들이 연쇄적으로 의문사하고 시신을 부검하는 과정에서 윤지훈은 20년 전 돌연사한 아버지의 부검 소견에 의문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윤지훈이 그토록 존경하는 정병도 원장이 현재의 이명한이 그런 것처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열악한 환경 개선을 약속한 재벌그룹 회장과 결탁하여 부검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밝히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실체를 드러내려는 순간, 정병도 원장은 윤지훈에게 유서를 남긴 채 자살을 선택한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이명한은 윤지훈의 부검 소견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한 정병도 원장의 명예는 물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고뇌에 번민하던 윤지훈은 독살 증거가 명확한 상황이지만 임상 실험 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독살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부검 소견을 밝히면서 과학적 진실을 외면한다. 원인을 알 수 없이 돌연사 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은폐했던 진실이 드러나고, 뒤이어 아버지처럼 따랐던 정병도 원장의 자살 앞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윤지훈의 신념이 폐기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독살 사건에 대한 부검 소견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사건이 종결된 것 때문에 괴로워하던 윤지훈은 스스로 법의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사표를 제출하고 잠적한다.
사표를 던지는 윤지훈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그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의 수호자임을 보여준다. 도덕과 양심이 살아 있는 윤지훈이야말로 미해결 사건의 과학적 진실을 통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물증(物證) 중심의 '과학적 진실 규명'에 집착하지 않는다. 과학적 진실의 사각지대로 발을 옮긴 그는 이제 심증(心證) 중심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아간 시골 마을의 중금속 오염 실태를 밝히고 정치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된 한류스타 서윤형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히기 위한 단서 찾기에 나선 윤지훈의 행동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정형화된 틀에 갇힌 진부한 영웅의 면모에서 인간적 매력이 돋보이는 진정한 영웅으로 자리 이동한 윤지훈은 도덕과 양심 그리고 진실과 정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사회가 간절하게 원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적어도 윤지훈이라면 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속 시원하게 밝혀줄 수 있을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즐기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싸인>' 법의학자 윤지훈이 '시적 정의'의 수호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도덕과 양심 그리고 진실과 정의가 넘치는 건강한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이것이 바로 윤지훈이 죽음 속에 숨겨진 사인(sign)을 찾아 말하고자 하는 진실 아니었을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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