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上海) 주재 한국총영사관 영사들은 덩신밍(鄧新明·33·여) 씨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을까. 상하이 총영사관은 덩 씨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던 대표적 사건으로 아래 여섯 가지 사례를 들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사건은 탈북자 및 국군포로 11명의 동시 송환건이었다. 덩 씨는 2008년 11월경 상하이 총영사관에 장기 수용돼 있던 국군포로 및 탈북자 11명의 동시 송환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에 따르면 덩 씨는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에 장기 수용되어 있던 이들을 중국 당국에 요청해 한꺼번에 송환할 수있도록 도와줬다.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탈북자 업무를 맡고 있던 한 서기관은 “11명의 탈북자 및 국군포로 동시 송환은 주중 재외공관에서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일이라 그 비결을 물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국 고위 인사들과 중국 권력 실세들의 면담을 성사시킨 배후에도 덩씨가 있었다. 2008년 11월경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위정성(兪正聲) 당서기(부총리급·정치국원) 면담 일정을 잡았으나 면담 전날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갑작스러운 상하이 방문으로 면담 불가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P 전 영사가 덩 씨에게 비선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당일 오전 다시 면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 2009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의 면담을 성사시킨 것도 덩 씨 덕분이었다는 후문이다. 김정기 전총영사는 “당시 하루 전까지도 면담성사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으나 덩씨의 전화 한 통으로 가능해졌다고 뒤늦게 영사들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 8월 박진 의원이 이끄는 국회경제문화포럼 방문단 과 상하이대 주임(장관급) 간의 면담을 주선한 것도 덩 씨였다.
2008년 5월경 신정승 당시 주중대사가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위 당서기와 한 시장을 동시에 만날 수 있게 해준 것도 중국 외교가를 놀라게 한사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주요국 대사가 방문하더라도 당서기나 시장 중한 사람만 만나는 게 관례임에도 덩씨의 한마디로 곧바로 두 거물의 동시 면담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제주도와 상하이 간의 우호도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당시 영사관에 재직 중이던 제주도 출신 K 전 치안영사가 덩 씨에게 고향과 상하이 간의 MOU 체결 건을 부탁했고 같은 해 9월 협약이 성사됐다. 서울시도 당시 3년 가까이 협약 체결을 위해 힘썼으나 결국 무산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과정에도 덩 씨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원저우(溫州) 지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KOTRA의 투자설명회에 당시 불참하기로 했던 원저우 시장을 전화 한 통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2009년 6월 상하이 총영사관이 저장(浙江) 성 원저우 시에서 주최한 설명회에는 70여 명의 정부 유관기 관 및 증권, 은행, 보험 등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당일 비행기를 타고 원저우 지역 공항에 내리고 난 뒤 축사를 해주기로 했던 원저우 시장이 다른 일정이 생겼다며 갑작스레 불참 통보를 해왔던 것. 이에 K 전 상무관이 덩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덩 씨는 직접 저장 성 성장과 통화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덩 씨는 우리 공무원이 중국해관(세관)에 적발된 밀수사건 무마는 물론이고 각종 민원을 처리했다. 한 영사관 관계자는 “덩 씨가 젊은 나이에도 중국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인 지인도 많아 교민사회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총영사는 “2009년 10월 1일 중국 국경일 행사장에서 한 상하이 시장과 환담 중인 덩 씨를 처음 목격했다”며 “지난해 10월 상하이 엑스포 폐막식 행사장에서도 위 당서기 옆에 서 있는 덩 씨를 만나 함께 인사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는 “폐쇄적인 중국 공직사회 특성상 30대 초반에 불과한 덩 씨가 부총리급인 당서기 옆에 자연스럽게 서 있는 모습에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