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터넷에서 가장 앞서는 미국 현장을 둘러보는 출장입니다. 특히 네트워크 사이언스 연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미래인터넷팀 정유철 연구원(35)은 이 같은 궁금증을 안고 미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기업 ‘BBN테크놀로지’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의 ‘샌디에이고 슈퍼컴퓨터센터’ 두 곳이다.》
미래인터넷’은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네트워크 혁신을 위한 글로벌환경(GENI)’ ‘미래인터넷디자인(FIND)’이라는 두 종류의 대형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다. 미국은 ‘네트워크 사이언스’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기초과학에 비중을 두고 미래인터넷에 접근하고 있다.
○ 골뱅이(@) 태어난 곳, 연구도 ‘나선형’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인근에 있는 BBN테크놀로지는 1969년 국방부 주도로 이뤄진 최초의 인터넷망 구축에 참여하며 인터넷 탄생의 중심 역할을 한 기업이다. 최초로 e메일 서비스를 만들고 ‘@’를 사용하는 주소 규칙을 세우기도 했다. 2007년에는 GENI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무국으로 지정됐다.
하이디 뎀프시 사무국 운영부문 총책임자는 “미래인터넷에 관한 연구결과를 실제 환경에서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 한다. GENI는 이를 위한 대규모 네트워크를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현재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린스턴대, AT&T, IBM 등 대학과 기업 60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GENI는 1년 단위로 ‘디자인→설계→구현→테스트’ 네 단계를 거치며 진행되는데 한 주기를 ‘스파이럴(나선)’이라고 부른다. 뎀프시 박사는 “그해 연구성과나 테스트 결과를 이듬해 스파이럴의 디자인 단계에 곧바로 반영하는 나선형 모양의 순환구조”라고 말했다. ○ 목표 두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
BBN테크놀로지는 ‘네트워크 사이언스’에도 집중하고 있다. 80여 개 연구과제로 구성된 ‘네트워크 사이언스 공동과학기술연합(NS CTA)’이라는 프로젝트를 2009년부터 수행하고 있다. NS CTA에서는 독립 개체들이 어떤 네트워크를 이루는지, 주위 개체와는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연구한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윌 릴런드 박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네트워크가 있다. 인간관계, 뇌 속 신경세포 간 상호작용, 생태계 먹이사슬 등 모두가 연구대상”이라며 “네트워크 세계를 과학으로 이해해야 체계적인 인터넷 이론을 세울 수 있고, 미래인터넷을 위한 연구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NS CTA는 미 육군연구소(ARL)가 지원하는 연구다. 릴런드 박사는 “ARL은 꼭 군사 목적이 아니라도 세상의 수많은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결과를 모으고 싶어 한다”며 “네트워크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파다 보면 뭐든 나오지 않겠느냐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특정 결과나 목표를 정해 놓지 않은 채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연구사업”이라고 밝혔다.
○ 융합연구로 성과 나와
샌디에이고 슈퍼컴퓨터센터는 1997년부터 ‘인터넷데이터분석협회(CAIDA)’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기관에 대해 정유철 연구원은 “인터넷 관련 정보(트래픽, 통신상태 등)를 수집, 가공, 분석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세계 인터넷망이 어떤 모양으로 퍼져 있는지 인터넷의 실제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은 미래인터넷망 구조와 원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인 FIND를 수행하고 있다.
드미트리 크리오우코프 책임연구원은 “이곳 연구 대다수가 수학 물리학 사회학 경제학까지 아우르는 융합연구”라며 “인터넷은 기술적 산물임과 동시에 각종 사회현상이 나타나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AIDA 총책임자인 K C 클래피 UCSD 컴퓨터과학·공학과 교수는 “실제 융합연구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라우팅 테이블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현 인터넷의 아주 큰 문제 중 하나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지난해 ‘피지컬리뷰E’에 실었다. 이 연구도 물리학 전산학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라고 말했다.
융합연구의 성과는 앞서 말한 NS CTA도 마찬가지다. 릴런드 박사는 “소셜네트워크(인맥) 전문가와 통신망 학자들이 협력해 통신 효율성을 4배 올릴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낸 바 있다”고 밝혔다. 두 연구기관을 둘러본 정 연구원은 “GENI는 스파이럴 단위로 진행되면서 상황에 따라 연구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보장한다”며 “이에 비해 우리는 기초과학자에게 3년 뒤, 5년 뒤 성과를 정해 놓게 하고 무조건 그 방향으로 가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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