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한국病이다]여의도는 아바타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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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14시 48분


보스 속내 짐작해 대신 목청 높이는 ‘분신’ 수두룩
주군 수시로 바꾸거나 의중 잘못 읽어 낭패보기도

한나라당 차명진 윤상현 의원은 2008년 8월 당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 연찬회 뒤풀이 모임에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김문수 직계인 차 의원이 갑자기 “김문수 만세”를 외쳤다. 당시 대표였던 정몽준 직계로 분류되던 윤 의원이 “정 의원이 더 낫다”고 반박하자 차 의원이 윤 의원을 손으로 밀친 것. 주변의 만류로 이 사건은 더는 커지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있던 국회 본회의장. 박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을 ‘영일대군’ ‘만사형통’이라 칭하며 정계 은퇴를 요구하자 이 의원과 같은 지역(경북 포항)의 이병석 의원은 “당신이 뭘 알아. 당장 내려와”라며 득달같이 나섰다. 이은재 의원은 “특사범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 당신이 먼저 은퇴하라”라고 고함을 쳤다. 장제원 의원은 삿대질을 하며 “왜 인신공격을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라고 소리친 뒤 퇴장했다. 모두 ‘SD(이상득)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유력 정치인을 정점으로 엄격한 서열과 상하관계가 성립된다. ‘보스’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아바타(분신)’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은 보스의 의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기대하기 어렵고, 때로는 보스의 뜻을 잘못 짚어 낭패를 보기도 한다.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내 일각에서 제기하는 손학규 대표의 4·27 경기 성남시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차출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손 대표 특보단 간사인 그는 “제1야당 대표를 흔들고 사지(死地)로 등을 떠민다는 것이 정치도의상 타당한 일이냐. 이것이 당을 위한 충정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견 소식을 들은 손 대표는 “나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드는구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군(主君)을 위한 충정’이 지나쳐 되레 손 대표를 곤란하게 만든 셈이다.

주군을 수차례 바꾼 의원들도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2002년 정몽준 의원이 창당한 ‘국민통합21’에 합류했다가 17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원내 진입한 뒤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최근에는 다시 정몽준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중립’을 표방하지만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중립’으로 분류되기를 희망해 온 영남의 L 의원은 최근 ‘나는 친박계’라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중립을 표방해 온 서울의 K 의원은 사실상 친박계로 처신하고 있다는 뒷말을 듣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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