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을 위한 중대한 비밀코드 '영화음악'
●기타리스트 출신의 '이병우 음악 감독'의 1000만 관객 비결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이제 영화음악 감독으로 더 유명한 존재가 됐다(동아일보 DB)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가? 눈치 빠른 독자라면 단박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5개의 한국 영화라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주위에 영화 팬들에게 이 영화들의 성공요인을 물어보면 몇몇 비슷한 답들이 도출되곤 한다. △한국적인 소재 △당대의 톱스타 출연 △쉬운 대중적인 소재 △강렬한 감동… 등이 첫 손가락에 꼽히는 흥행 이유다.
같은 질문을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묻는 다면 조금 더 세밀한 답이 나오기도 한다. △신인 감독이 아닌 중견 감독의 작품 △주연을 원톱 보다는 투톱 이상 내세움 △마케팅 포인트로 '전 국민' 그리고 '전체 관람가' △비슷한 시기 헐리우드 대작이 없었음….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공통점이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영화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특이한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다름이 아니라 5개의 영화 가운데 무려 3편('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의 음악 감독이 '이병우(46)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5편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지만 절대적으로 흥미로운 포인트다.
누군가 어떤 일을 세 번 이상 성공했다면 그것은 운이 아닌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병우 영화음악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 5편뿐인 1000만 관객 영화를 3편이나 감독했다는 점은 그의 실력과 위상을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 국민적 영화음악 감독 이병우…
사실 외국영화와는 달리 한국영화에서는 주제가가 아닌 연주곡(스코어)이 회자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직 이병우 음악 감독만이 그 예외에 속하는 대표적인 음악인이다. 그가 만든 곡들은 일반인들에게도 적잖은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가지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무한도전', '1박2일' 등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표적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는데, 이 같은 예능에서도 배경음악(BGM)은 절대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런 대표 예능 프로에서 이병우 음악 감독의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 출연자가 한복을 입고 나오면 이병우 감독의 히트작 중에 하나인 '스캔들(2003)'의 OST가 등장하는 식이다. 그의 음악은 그만큼 대중적으로 친숙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배용준과 전도연이 출연한 '스캔들(감독 이재용)'은 사극영화가 갖고 있는 여러 고정관념을 깨어버린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프랑스 소설인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가지고 와서 독특한 치정극으로 완성한 것이다. 영화를 가득 메운 아름다운 미술과 의상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병우의 음악이었다. 사극하면 국악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병우는 세련된 클래식 선율로 새로운 사극의 완성에 마침표를 찍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이병우 음악감독의 독창적이고 철학적 선율이 더해져 빛을 본 작품이다.(동아일보 DB)
■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마더'에서 인상적 장면 만들어
'괴물(감독 봉준호)'은 1300만 관객이 찾아든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다. 영화음악의 관점으로도 중대한 발자취를 남긴 작품인데, 실제 한국영화 가운데 음악이 가장 기억나는 영화란 질문에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가족들이 병원을 탈출할 때 나오는 신나는 음악은 극 초반에 등장함에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파괴력을 지닌다. 또한 어느 유랑극단의 공연에서 나올법한 느낌의 '한강찬가'는 근래 한국영화 음악 가운데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음악이 됐다.
봉준호 감독의 문제작인 '마더'의 엔딩 신을 되돌아보자. 우리네 어머니들의 관광버스 막춤 판에서, 이병우 음악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기타선율을 흔들리는 탱고 리듬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관광버스 메들리 춤판에서 어머니들의 슬픔과 삶을 고스란히 전달한 그 장면은 근래 한국영화 최고의 엔딩 신으로 기록됐다.
기타는 피아노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화성악기이다. 다시 말하면 기타 하나만으로 풍부한 화성과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을 연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병우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기타를 영화 속에서 매우 다양한 정서와 감정으로 활용해왔다.
'연애의 목적(감독 한재림)'의 영화음악을 들어보면, 매우 복고적인 멜로디를 아주 익숙한 장르의 리듬으로 연주하는데, 그것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악이 아니라 매우 고급스러운 테마음악이란 느낌을 건넨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영화 시작에서부터 끝가지의 감정선을 부드럽게 잡아끌기도 한다.
사실 이병우는 영화음악 이전에도 기타리스트로서도 대중들의 찬사를 받아온 사람이다. 조동익과 '어떤 날'로 활동하여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그 이후에 음악적 고민과 갈증을 풀기 위해서 클래식기타로 유학을 떠나서 국내외에서 클래식기타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오스트리아 '빈 음대'를 수석졸업 하였다는 이야기는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연주력과 감수성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수준이다.
1000만 관객 영화에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이병우 영화감독의 존재도 빼어놓을 수 없는 흥행영화의 숨은 비결이다.(사진=영화 '해운대') ■ 조동익과 '어떤 날'로 활동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마리 이야기'(이성강 감독)을 시작으로, '장화홍련'(김지운 감독), '스캔들', '연애의 목적'(한재림 감독) 등 많은 영화 음악을 작업하였고, 그 작품들 중에서 '왕의남자'(이준익). '괴물', '해운대'(윤제균)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상업적으로도 최고의 성공을 거둔 영화 음악 감독으로 성장했다.
그는 영화음악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본인의 기타 연주 앨범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여 기타리스트로서의 위치 놓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해마다 올려 지는 영화음악 공연은 이병우 아니면 할 수 없는 최고로 독창적인 공연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필자가 영화음악으로 밥을 먹고 산다고 말하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음악을 헐리웃 영화음악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영화 제작 시스템과 현실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을 때가 많다. 특히 일본의 유명 영화 음악과 비교 할 때는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제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이 그냥 "이병우의 음악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곤 한다. 그만큼 '이병우'는 한국 영화계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됐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1000만 관객'이 예술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고의 상업영화들 안에서 최고의 음악성을 보여 주고 있는 이병우 음악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가 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의 최신작은 곧 개봉을 앞둔 장진 감독의 '로맨틱 해븐'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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