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가 소득 71% 가져가… ‘20대80 사회’ 현실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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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 성장의 온기, 저소득층까지 전달안돼 ‘富의 양극화’

1998년 외환위기로 직장을 떠나 이듬해 고향인 경북의 한 소도시로 내려와 슈퍼마켓을 시작한 정모 씨(58). 그는 당시만 해도 그럭저럭 네 식구가 살 만한 수입을 올렸지만 2005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할인마트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수입이 점차 줄어 결국 가게를 접었다. 나이가 많아 취업이 안 되자 지금은 경기 용인시에서 친척의 식당 일을 도와주면서 매달 100만 원가량을 집에 부쳐주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부터 한국은 위기 때마다 저력을 발휘해 1인당 국내총생산은 10년이 지난 2009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성장의 온기가 고루 퍼졌다면 자영업자이든 월급생활자이든 명목소득이 두 배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자영업자와 월급생활자는 똑같이 명목소득이 많게는 3분의 1가량 줄었다. 반면 상위 20%의 소득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져간다는 ‘20 대 80’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나마 이는 세금을 납부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월급생활자 중에서도 소득이 적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2009년 575만3000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의 ‘20 대 80’ 현상은 상당히 진척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급증하는 자영업자, 양극화되는 소득

종합소득세(종소세) 납부자 357만 명(2009년 기준) 가운데 소득 기준 하위 20%는 10년간 경제성장의 과실은 고사하고 오히려 소득이 크게 준 것으로 국세청 자료에서 나타났다. 종소세는 사업, 부동산 임대, 이자 등 여러 소득을 합친 세금이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마켓, 치킨집 주인 등 자영업자를 포함해 사업장이나 회사를 갖고 있는 개인사업자가 종소세 납부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체 소득금액 중 계층별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개인사업자의 양극화는 뚜렷하다. 2009년 종소세 납부자의 총소득금액은 90조2257억 원이었다. 이 중 상위 20%가 가져간 소득금액은 64조4203억 원으로 무려 71.4%에 달해 소득의 대부분을 싹쓸이했다. 반면 소득 기준 하위 20%가 차지하는 비중은 1.6%밖에 되지 않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위 20% 개인사업자가 종소세 납부 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거둬들인 반면 전체 납부자의 60%를 차지하는 상위 40% 이하는 고작 10%를 약간 넘는 소득밖에 가져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사업자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취업이 되지 않는 고령자와 여성, 파트타임 근로자 상당수가 자기 가게를 열어 자영업자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는 “외환위기 이후 임금근로자들이 자영업으로 진출하면서 과잉 공급되었고 이것이 영세화로 이어져 하위 소득층의 소득을 갉아먹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수출과 관련된 업종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대부분 내수업종인 자영업자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나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제과점처럼 대기업들이 자금력과 마케팅 능력을 앞세워 골목 상권을 장악한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2009년 489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 가운데 96만3000명이 새로 가게를 차린 사람들이지만 이에 버금가는 78만6000명이 가게 문을 닫았다.

○ 비정규직 증가로 급여생활자 소득 격차도 벌어져

개인사업자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자도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가 벌어졌다. 2009년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연말정산자 854만1000명 중 월급 소득이 상위 20%인 사람들의 1인당 연 소득은 5750만 원으로 2005년의 5500만 원보다 4.5%가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하위 20%의 1인당 연 소득은 1770만 원에서 1580만 원으로 오히려 10.7%가 줄었다.

이로 인해 근로소득세 납부자의 총소득에서 상위 20%가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05년 근로소득자 610만7000명의 총소득 223조여 원 가운데 상위 20%는 86조여 원을 가져갔다.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38.6% 정도를 가져간 셈이다. 그러나 2009년에는 총소득 315조여 원의 절반에 가까운 131조여 원(41.6%)을 상위 20%가 가져갔다. 상위 2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에서 2009년까지 불과 4년 사이에 3%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2005년에는 상위 10%의 연 소득이 8650만 원으로 하위 10%의 연 소득 1400만 원과 7250만 원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상위 10%의 연 소득이 9610만 원, 하위 10%의 연 소득이 1370만 원으로 격차가 8240만 원으로 벌어졌다.

이는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자리 수 증가가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했고 일자리의 질 자체도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하위 20%의 급여생활자는 대부분 단시간 근로자 등 비정규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일자리도 양극화되어 가고 있어 중간계층 일자리는 사라지는 반면 단순 노무직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다”며 “일자리 구조도 급여생활자의 소득불평등 악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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