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 금융감독원이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지면서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회사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조사해야 하는 금감원 직원들이 금융회사에 매수돼 구속되는가 하면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금융회사나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럴 해저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 농협 전산망 마비사태 등 각종 현안을 수습해야 하는 금감원이 신뢰와 권위를 잃으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본보 26일자 A12면 참조 금감원 전현직원, 저축銀 무단인출 방조… 증자사기…
25일 하루에만 금감원 전현직 직원 4명이 금품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고 1명이 체포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요청으로 금감원에서 검찰로 파견된 뒤 광주지검에서 보해저축은행 수사를 돕다가 체포된 직원도 있어 충격을 준다. 이 직원은 지난해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정기검사 무마 등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을 받고도 버젓이 해당 저축은행의 수사에 참여해 왔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돈의 유혹에 언제나 노출될 수 있어 특별히 처신에 주의해야 하는데 비리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서도 초동 대응부터 사후 조치까지 안이하고 굼뜬 자세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11일 감사원으로부터 저축은행에 대한 ‘부실 감독’ 문제로 기관주의를 받았지만 아마추어적 감독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금감원 직원 3명이 파견돼 있었는데도 영업정지 전 정보 유출과 불법적인 예금 인출을 막지 못해 선량한 예금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게다가 금감원의 한 국장이 자신이 조사한 기업을 변호하는 로펌으로 이직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모럴 해저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11·11 옵션쇼크’ 사건을 조사했던 L 국장이 이 사건을 일으킨 도이치증권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으로 가기 위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11·11 옵션쇼크는 지난해 11월 11일 도이체방크 홍콩법인이 한국 도이치증권 창구를 통해 2조3000억 원어치의 주식을 장 마감 10분을 남기고 내다팔아 종합주가지수를 53.12포인트 폭락시킨 사건으로, 금융당국은 도이치증권의 관련 임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파생상품 거래 등 일부 업무에 6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L 국장의 이런 행보에 대해 금감원에서조차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L 국장은 김앤장 이직을 포기했다.
금융감독 당국의 신뢰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면서 28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 권혁세 금감원장도 난처해졌다. 그는 취임사에서 “금감원의 모습을 일신(一新)하면서 금융안정과 금융신뢰의 ‘종결자’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현재 금감원의 모습은 금융시스템 불안을 키우는 장본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26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송구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윤리를 강화하고 새롭게 기강을 세워 나가도록 하겠다. 조만간 조직을 쇄신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검사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저축은행, 카드사 등에 대한 검사 조직을 확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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