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만 떼면 꼭 바퀴 3개 달린 소형차 같았다. 돔 지붕 모양의 캐노피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머리가 캐노피에 닿을 정도로 조종석이 꽉 찬다. 공간은 단출했지만 15개의 계기반이 눈을 어지럽혔다. 비행속도와 고도, 나침반과 수평계를 비롯해 알 수 없는 용어와 숫자가 창공보다 먼저 눈앞에 펼쳐졌다. “투루두르르르….” 프로펠러까지 돌아가자 불안한 마음이 들어 허리에 맨 안전띠를 슬그머니 당겨 조였다.
28일 기자는 경비행기를 타고 경기 안산시 시화호 일대를 날았다. 직접 조종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달리는’ 색다른 체험을 했다. 1월과 2월에 경비행기 추락으로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걱정이 됐지만 공중에서 엔진이 꺼져도 행글라이더처럼 ‘양력비행’이 가능하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경비행기를 정비하는 최윤호 교관(42·예모항공)도 “꼼꼼하게 정비하고 비행수칙만 준수하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경비행기는 생각보다 쉽게 떠올랐다. 80m쯤이나 달렸을까. 엉덩이에 느껴지던 스피드웨이의 활주로면 굴곡이 사라지자 자그마한 비행기는 양 날개를 가볍게 갸우뚱거렸다. 흰 조각구름이 서서히 다가왔다. 700피트(약 213m)까지 올라가서야 기자는 하늘에서 땅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방조제 뒤로 인천 앞바다가 아스라이 보였다.
조종간을 좌우로 꺾어 선회할 때마다 옹기종기 솟아 오른 나지막한 구릉이 기울며 모습을 달리했다. 밑으로 펼쳐진 드넓은 간척지는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지형 그대로였다. 모양을 알 수 없는 구름 그림자 몇 조각만 그 위를 덮고 있었다. 분명 경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데 하늘 아래 풍경은 천천히 흘러갔다. 가만히 떠 있는 비행기 밑을 지구가 도는 듯한 기분.
그럴 때마다 바람은 기체를 뒤흔들어 하늘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몸이 붕 떠 중력에서 벗어나는 느낌도 시나브로 찾아왔다. 기자와 함께 비행한 이성규 교관(46·서해항공)도 하늘 위에서의 아찔한 스릴과 자유로움에 매료돼 경비행기 조종을 시작했다. 올해로 18년째 하늘을 누빈 그는 “처음에는 두렵고 자동차 운전처럼 쉽지도 않지만 금세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그 느낌을 못 잊어 다시 비행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양회곤 사무처장은 “전국의 경비행기 동호회에 가입된 회원 1만9000여 명(중복 가입 포함)에 초경량항공기 자격증 소지자만 2000명이다”라며 “최근 그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필기시험과 20시간의 교육(강습비 400여만 원)을 받으면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면허를 딸 수 있다. 면허가 없어도 전국 30여 개 항공클럽에서 하늘을 나는 체험이 가능해 최근 레저로도 인기다. 안산에서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경기국제항공전에서도 항공기 탑승체험과 에어쇼를 포함한 복합 항공콘텐츠를 선보인다. 55종 130여 대의 항공기를 전시하고 70여 종의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늘 위의 20여 분은 금세 지나갔다. 탁 트였던 시야가 점차 가라앉더니 활주로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320kg의 경비행기는 세 발로 사뿐히 지면을 밟았다. 안도감에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눈은 오래도록 캐노피 위의 창공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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