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혁 전문기자의 세상이야기]‘독도 인 더 헤이그’ 저자 정재민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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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독도, 실효적 지배 믿고 감정만 앞세우면 日에 당할수도”

대구에서 올라온 정재민 판사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동아일보 옛 사옥) 2층에서 만났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쓰기 
위해 일본 규슈 지방을 답사할 땐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대구에서 올라온 정재민 판사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동아일보 옛 사옥) 2층에서 만났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쓰기 위해 일본 규슈 지방을 답사할 땐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일본 서해안에 자리 잡은 마이즈루 항 기지 내 검도관에서 검은 도복의 청년과 흰 도복의 중년 남자가 치열하게 죽도를 부딪치고 있었다.

“머리!”

“허리!”

검은 도복의 죽도가 흰 도복의 머리를 내리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흰 도복의 죽도가 옆으로 누우며 검은 도복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어디를 치겠다고 눈빛으로 다 가르쳐주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나를 칠 수 있겠나!”

검은 도복은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검은 도복은 흰 도복보다 동작이 빠르고, 공격의 빈도도 잦았지만 공격을 성공시키는 쪽은 언제나 흰 도복이었다.

“타이밍이 스피드를 이긴다. 네가 아무리 빨라도 타이밍이 정확한 칼은 피할 수 없어!”

하지환(河智還·필명)이 쓴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얼핏 보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작가들이 ‘상투적으로’ 애용하는 도입부 같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마디로 ‘기분을 확 잡치게 하는’ 장면이다. 검은 도복의 공격은 한국의 독도 아우성을, 흰 도복의 타이밍은 일본의 주도면밀한 ‘다케시마 검법’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들어서도 독도 해역엔 숱한 뉴스가 넘실댄다.

8일엔 서예가 쌍산 김동욱 씨가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독도를 수호한다’는 주제로 가로 6m, 세로 12m의 광목천에 ‘불(佛)’자를 쓰는 현장 퍼포먼스를 가졌다. 6일부터 사흘 동안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독도 공연을 펼쳤고, 그 며칠 전엔 울릉도∼독도(87.4km) 해상을 정기적으로 왕복하게 될 여객선 ‘독도사랑호’가 첫 운항에 나섰다. 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한 독도 주민숙소가 1년여 공사 끝에 완공됐고, 여야 의원 33명이 ‘독도를 지키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을 발족시켰다. 또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는 가수 김장훈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광고한 ‘2011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가 열린다. 그리고 또….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른바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향한 애국행렬은 끝이 없다.

그러나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쓴 하지환, 아니 정재민 판사(34)는 가슴 한편이 허전하기만 하다. 그의 눈에는 그 모든 독도 이벤트가 검은 도복의 검무(劍舞)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정작 일본은 한반도의 허리를 베는 타이밍을 맞춰가고 있는데….

외교통상부도 우리 독도 전략의 허점을 새삼 깨달은 것인지 김성환 장관이 직접 나서 정 판사를 스카우트했다. 이기철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이 독도에 관한 국내외 서적을 점검하다 정 판사가 쓴 ‘독도 인 더 헤이그’와 ‘소설 이사부’를 읽은 다음 김 장관에게 소개했고, 정 판사의 해박한 국제법 지식에 깊은 인상을 받은 김 장관이 “이분을 외교부에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 판사는 ‘소설 이사부’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일 정 판사를 만나봤다. 그의 현재 소속은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 주말에만 서울 집으로 오는 ‘기러기’ 판사다.

―7월부터 외교부 근무를 하게 된다던데, 파견 형식인가.

“일단 연구법관의 자격으로 외교부에 1년간 가 있는 파견 형식으로 정리됐다. 대법원은 몇 년 전부터 타 기관 파견은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연구법관은 통상 기수가 높은 분들에게 주는 기회이기 때문에….”

―나도 일선 기자 시절 외교부를 담당한 적이 있어 정부의 공식적인 독도 대책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독도 인 더 헤이그’의 도입 장면을 보면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그 모든 실효적 지배 조치는 죄다 허망한 것인가.

“우선 실효적 지배라는 말부터 폐기해야 한다. 그 말은 국제법 교과서나 판례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국제법의 전설로 불리는 이언 브라운리 경(1932∼2010)의 책에 이펙티브 컨트롤(effective control), 이펙티브 오큐페이션(effective occupation)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실효적 지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실효적 지배는 우리 독도 수호 전략의 알파요 오메가다. 적어도 정부는 지금까지 국민에게 그렇게 얘기해왔다. 그게 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인가.

“그보다는 주권 시현(display of sovereignty), 그것도 계속적이고 평화적인(continuous and peaceful) 주권 시현이 중요하다. 일본이 정기적으로 독도 발언을 하는 것은 바로 이 평화적 주권 시현 요건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한일 양국이 독도를 놓고 싸우고 있는데 제3국 또는 제3자가 한국이 독도에 대해 평화적 주권을 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전 세계를 상대로 홍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 미국인 친구들도 (누구 말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도 재판을 하지만 10건 중 3건은 명확한 판단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좀 어렵다.

“예를 들어 옆집과 땅을 놓고 싸움이 붙었는데 상대방은 변호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며 차분하게 법률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내용증명을 받을 때마다 흥분해 옆집으로 달려간다. 고함을 지르고 땅에 말뚝을 박고 난리를 피우지만 법적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누가 유리하겠는가. 지금 우리 꼴이 딱 그렇다.”

―지금 얘기는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송으로 갔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우리 정부 입장은 시종 ‘ICJ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고, 소송당사국의 동의가 없는 한 ICJ 소송은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알 수 없다. ICJ 소송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상정해야 한다. ICJ 창설 후 최초의 판결로 기록된 영국과 알바니아 간의 ‘코르푸 사건’도 그랬다. 1946년 영국 순양함들이 알바니아에 아무 통고도 없이 코르푸 해협을 통과한 일이 있었다. 알바니아는 자국 영해를 무단 통과한다고 포를 쏘았고, 영국은 국제법상 모든 선박은 ‘무해통항권(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타국의 영해를 지나갈 수 있는 권리)’이 있다며 다시 공격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다시 양국 충돌이 일어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됐고, 안보리는 ICJ에서 해결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유엔 안보리 소집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설 속에서도 코르푸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독도에서 벌어진다. 일본의 거듭된 독도 망언에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독도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공언한다. 그러자 일본은 함대를 파견해 독도를 에워싼다. 한국의 자존심을 겨냥한 일본의 유인전략에 넘어간 것이다. 일본의 작전 이름은 ‘사쿠라의 부활’. 결국 유엔 안보리가 소집돼 독도 사태의 ‘ICJ행(行)’이 결정된다. 한국이 안보리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한국인 사무총장이 안보리 결정문을 낭독했다. 소설 속 외교부의 ‘배 과장’은 “혹, 혹시나 했는데 결, 결국 저렇게 돼 버렸네. 지, 지금까지 독도 문제로 소송할 일은 없다고 몇십 년 동안 장담해왔는데…”라며 소파에 주저앉는다.

―소설에서는 가락국기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나온다. 외교부 일본과 2등서기관인 여주인공 도하와 법무부에서 파견된 검사 은성, 그리고 국정원 직원인 도하의 첫사랑 서준이 마치 영화 인디애나존스 같은 활약상을 보이며 일본 규슈 지방에서 전설의 가락국기를 찾아 독도가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는데, 인디애나존스 같은 스토리 자체가 ‘해결책 없음’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소송의 쟁점이 되는 ‘주권의 시현’을 다툴 때 현재나 미래는 의미가 없다. 영토분쟁 소송에서는 ‘결정적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가 실제적인 사실관계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정적 시점이란 ‘결정적 기일’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영토가 어느 나라 소유인지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시점을 말한다. 예컨대 만주는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 영토지만 광개토대왕 때를 기준으로 하면 고구려 영토고, 칭기즈칸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몽골의 영토가 된다. 그런데 일본은 첫째, 1618년부터 일본 어민들이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도해(渡海) 면허를 받아 어업을 했고 둘째, 한국이 19세기 이전에 독도를 소유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우산도’라는 섬을 소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우산도’는 울릉도를 말하는 것이지 독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지다. 사실 우리의 경우 신라시대 때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이 있었지만 우산국이 독도를 포함하는지는 재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가야의 2대왕인 거등왕의 유골함에 적힌 ‘가락국기’를 찾아낸다. 거기엔 ‘우산국은 서쪽의 모도(母島)와 동쪽의 자도(子島)로 이뤄져 있다. 두 섬 사이의 거리는 200리로 서로 멀지 않다. 거등대왕께서 점령하신 후 모도는 수군기지와 어항으로, 자도는 중죄인들의 유배지로 이용됐다’고 새겨져 있다.

―결국 소설, 즉 픽션 아닌가.

“물론 역사탐구가 인디애나존스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꼭 불가능한 픽션이라고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천마총 발굴은 불과 40년도 안 된 일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또 어떤가. 한국 고대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4세기 전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분수령이 된 발굴이었지만 불과 20년 전 일이다. 우산국을 정벌하고 대가야를 멸망시킨 신라 이사부의 시절,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했다. 독도에 관한 당시 기록이 없을 리 없다고 믿는다.”

―그나저나 외교부 파견기간은 고작 1년이다.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나도 그게 걱정이다. 국제법률국 영토해양과에는 외무관 3명이 전부던데…. 하지만 반드시 모의재판을 한번 준비해볼 계획이다. 내가 일본 측 변호인을 맡아 재판준비서면을 작성해볼 생각이다. 내 논리를 깨뜨리면 성공 아닌가. 독도에 건물 100채를 짓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정 판사 인터뷰는 역사와 픽션, 현실과 희망을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한미 양국은 북한의 선제공격이나 붕괴, 대량 난민사태에 대비해 작계(작전계획) 5026, 5027, 5028, 5029, 5030을 만들어 대비해왔다. 가상훈련이다. 독도 문제도 이제 ‘법계(法計) 2011’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조용히….

김창혁 전문 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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