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파문]“해골 표시 드럼통 지게차로 옮겨 묻고 그위에 헬기장 설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캠프 캐럴 근무 한국인들 ‘폐기물 매립’ 증언 잇달아

미군기지인 캠프 캐럴에 고엽제로 추정되는 독극물을 묻혀 있다는 증언이 한국에서도 나왔다.

캠프 캐럴에서 지게차 운전사로 일했다는 박모 씨(73)는 20일 “1973년경 커다란 트레일러에 독극물이 든 드럼통을 내가 직접 지게차로 옮겼다”며 “드럼통에는 위험성을 알리는 해골 표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당시 주한미군들은 ‘베트남’에서 이 드럼통을 가져왔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백 개의 드럼통을 구덩이로 옮겼는데 매립장소는 미군기지 내 헬기장이 맞다”고 전했다. 다만 박 씨는 드럼통에 고엽제가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캔에 든 음식을 비롯해 페인트, 폐기하는 차량까지 각종 쓰레기를 헬기장 주변에 다 버렸다”고 회고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캠프 캐럴에서 근무한 노모 씨(66)도 이날 칠곡군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운전기사로 근무해서 부대 안을 잘 안다”며 “지금의 헬기장 주변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폐기물을 묻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1970년부터 약 20년간 미군기지에서 근무했다는 김모 씨(75)는 “하루에도 수차례 땅을 파고 무엇인가를 묻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개의 페인트통(독극물 추정)을 차에 싣고 가서 부대 야산에 묻었는데, 이 작업은 흑인들이 많이 했다”며 “그들은 매번 방호복과 방독면을 쓰고 작업했던 게 기억난다”고 전했다.

캠프 캐럴에서 서쪽으로 630m 떨어진 곳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고엽제 드럼통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과는 2km 정도 떨어져 있다. 캠프 캐럴 정문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지방하천인 동정천이 흐르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고엽제로 추정되는 독극물을 묻었다고 얘기한 곳은 현재 미군기지 인근 칠곡군교육문화복지회관 건물에서 북쪽으로 500∼600m가량 떨어진 헬기장. 당시에는 이곳이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곳인 데다 밖에서도 안을 쉽게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엽제를 묻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언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캠프 캐럴 동쪽에 자리 잡은 헬기장은 지금도 각종 건물과 담으로 둘러싸여 기지 외부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지역은 흙 성분이 황토이고 주변에 산이 있어 전직 주한미군이 고엽제를 묻었던 곳이라며 제시한 사진과도 비슷한 형태다.

미군기지 내 헬기장 일대가 가장 유력한 매몰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고엽제라는 확신은 아직 할 수 없는 단계다. 다른 곳이 매몰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헬기장 주변이 유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이 지역을 조사할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칠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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