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미술계의 올림픽’이라고 부를 만하다. 4일 공식 개막한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 비체 쿠리거 씨가 총감독을 맡은 본전시와 함께 89개 국가관 전시를 11월 27일까지 펼친다. 쿠리거 총감독은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이란 주제 아래 83명의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구성했고, 나라별로 전시를 꾸미는 국가관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짐바브웨, 아이티 등이 처음으로 합류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에 대해 영국 BBC는 전쟁과 세계화 등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음에 주목했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이집트 사우디 등 중동 지역의 현대미술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가관 전시 중 이집트관은 올 1월 재스민 혁명 당시에 사망한 아티스트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스라엘관은 요르단과 이어지는 다리 건설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다. 미국관은 60t짜리 탱크를 뒤집어놓고 그 위에 트레드밀(러닝머신)을 설치해 달리기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품으로 반전 메시지를 표현했다.
한국관은 윤재갑 커미셔너가 선정한 이용백 씨의 비디오 사진 조각 회화 등 14점을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The Love Is Gone, But the Scar Will Heal)’라는 전시 제목 아래 선보였다. 전시는 전쟁과 분단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평화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특히 건물 옥상의 빨랫줄에 꽃무늬 군복을 내건 설치작품 ‘에인절 솔저’는 빨래로 변신한 전투복을 보여주며 휴식과 평화, 화해의 메시지를 상징적이면서 함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들었다. 이 씨는 “빨래는 모든 것이 끝난 후, 전쟁이 끝난 후의 상징이 될 수 있다”며 “긴장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 과다 경쟁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빨래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전시에선 제임스 터렐,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틴 크리드, 크리스천 마클레이, 지그마어 폴케, 신디 셔먼 등의 작품과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틴토레토의 대작 3점이 어우러졌다. 쿠리거 총감독은 “틴토레토는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며 “현대 작가들에게 관습에 굴복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현으로 그의 작품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단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4일 시상했다. 본전시 참여작가 중 미국 작가 크리스천 마클레이, 국가관 중에선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마클레이의 수상작 ‘시계’는 숱한 영화장면을 짜깁기해 영화 속 시간과 실시간이 정확히 맞물리도록 만든 24시간 길이의 영상작품. 지난 연말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호평받은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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