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면 저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9월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57)는 37년간 음식을 먹지 못한 주부 A 씨(57)를 만났다. A 씨는 세상을 등지려고 충동적으로 마신 양잿물 때문에 식도가 녹은 환자였다. 당시 병원에 실려가 대장의 절반을 잘라내 새 식도를 만들었지만 새로 만든 식도의 일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썩어 버렸다. 결국 식도를 잘라내고 소장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했다. 모든 음식과 물은 호스를 통해 공급됐다. 어떤 음식도 맛보지도 씹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침도 삼키지 못했다. 그렇게 37년이 흐른 뒤 A 씨는 심 교수를 만났다. 당시 심 교수는 1987년부터 1500여 차례에 걸쳐 식도 수술을 집도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 37년 만에 음식 맛을 보게 한 수술
심 교수는 “10년 넘게 음식을 먹지 못한 많은 환자들을 만났지만 37년간 식도 없이 지낸 환자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식도 수술이라면 언제나 자신 있었지만 환자의 긴 고통의 시간을 생각하니 ‘실패하면 큰일’이라는 사명감이 생겼다. 당연히 심 교수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미 37년 전 대장을 이용해 만든 식도의 윗부분이 5cm가량 썩어서 잘라낸 상태. 심 교수는 ‘소장을 이식해 새로운 식도를 만들어 볼까’ 등 갖가지 궁리를 했다. “저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A 씨의 목소리가 귓전에 남아 있었다.
수술실에서 심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심 교수는 남아 있던 식도 아랫부분을 끌어올리는 수술을 택했다. 수술은 5시간 남짓 걸렸다.
한 달 뒤, 수술 결과는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는 너무도 익숙해져 장기와도 같았던 호스를 빼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37년 만에 밥을 먹은 A 씨는 검사를 하기 위해 심 교수를 다시 보러 와서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연방 건네며 울음을 그치질 못했다.
○ 먹는 재미를 잃은 환자와 의료진 부족
A 씨처럼 식도가 녹은 후 굳어 식도가 좁아지거나 막히는 식도협착이나 식도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공통된 소원은 다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심 교수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먹는 게 소원”이라거나 “한 번이라도 김치찌개를 다시 먹고 싶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맛이라도 느끼기 위해 음식을 씹고 뱉는 환자들마저 있다.
심 교수는 “어떤 환자는 말기 식도암으로 이미 수술할 방도가 없는 상태였다. 식도가 꽉 막혀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는데, 한 달만 살아도 좋으니 제발 먹게만 해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식도는 다른 장기에 비해 수술법이 덜 발달돼 있다. 1년에 식도암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2000여 명이고 그중 600여 명이 수술을 받는다. 다른 암에 비해 적은 편이다. 증상도 제각각이라 환자에 맞는 수술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수술 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고 재발률도 높아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다.
○ 새 길을 개척한 흉부외과 의사
심 교수가 1984년 3월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얻고 원자력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갔을 때는 지금보다 식도 수술에 대한 연구가 훨씬 부족했다. 흉부외과 의사 대부분이 심장 치료에 집중하던 때였다. 심 교수가 식도 쪽 수술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주위 많은 의사들이 만류했다. 식도 분야 수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줄 교수도 선배도 없었다. 심지어 환자도 적어 치료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았다. 심 교수는 관련 교재를 샅샅이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폐암 수술과 같은 다른 분야 수술을 식도에 응용해 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내가 배운 의학 지식에 따르면 식도암 등 식도 관련 질병을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수술이다. 의사라면 마땅히 어떻게 하면 내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식도 수술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한다.
1년에 식도암 수술을 받는 600여 명의 환자 중 3분의 1가량이 심 교수의 손을 거친다. 과거에 비하면 수술법이 많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많은 병원에는 식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A 씨처럼 오랫동안 수술을 못 받는 환자들이 많다.
심 교수는 “힘이 남아있는 한 수술실을 떠나지 않고 많은 후배들을 길러내는 게 나의 의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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