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종영된 MBC '최고의 사랑'의 캐릭터를 분석하던 중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독고진(차승원 분) 구애정(공효진) 윤필주(윤계상) 강세리(유인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 바로 자신의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다는 점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긍정의 힘만큼이나 아프고 쓸쓸하고 부질없는 값싼 감정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사랑의 표현은 묘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 같다. (제목부터 유치찬란한) '최고의 사랑'은 어쩌면 사랑의 솔직한 고백의 다양한 예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한 것은 아닐까.
또 하나, 호감과 비호감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준 것은 인간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통합해야 비로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심리학 이론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솔직한 사랑 나눈 독고진과 구애정
MBC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과 구애정(공효진)
많은 내담자들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며 상담소를 찾는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는 생각보다 더 어렵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꼴을 바로 알고 인정하는 상담의 과정을 오래 거쳐야만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상담은 참으로 지루하고 때론 아프고 도망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스런 나로 새로 태어난 개개인은 신비롭게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며 기분 좋은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된다.
지나치게 자신을 사랑하는(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고진과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구애정은 서로 다른 축에서 사랑을 시작한다. 독고진의 인공 심장이 상징하는 그의 거짓된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반면 바닥을 치고 일어나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애정은 빠른 속도로 상대를 다가오게 한다.
그러나 '독고진 나라'에서 내가 세상의 중심인 남자와 쪼그라든 가슴으로 조심스럽게 한발 한 발 세상에 발을 내딛는 여자의 만남이 쉬울 리 없다. 드라마에서는 자기애적인 독고진에게 최고의 경쟁상대 윤필주를 들이밀고 위축된 구애정에게는 제니라는 든든한 상담자를 곁에 두어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도왔다.
구애정은 독고진에게 '도전할 만한 목표'가 됐고 독고진은 결국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가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제어가 안됐다"며 구애정에게 최고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한 성격대로 빛의 속도로 구애정에게 돌진한다.
솔직해서 두려웠던 구애정은 두려움을 한방에 날리는 독고진의 구애에 자신을 맡기고 구애정은 독고진의 '전용충전기'가 된다.
▶구애정이 '완벽남' 윤필주를 선택했다면?
'완벽남' 윤필주은 드라마 내내 구애정을 짝사랑했다.극 중에선 대중에겐 큰 인기를 얻는 호감 배우 독고진은 사실 거만하고 나밖에 모르는 진짜 비호감 캐릭터이고 극 중 비호감 연예인인 구애정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덮는,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호감 캐릭터다.
만약 드라마 결말과는 달리, 구애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멋지기만 한 '완벽남' 윤필주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우선 독고진은 더 독하게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 숨어버렸을 것이고 구애정은 숨겨진 강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심심하게 한평생을 살게 됐을 것이다.
또 독고진과 구애정이 사랑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날 구애정은 독고진에게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이 힘들었죠?"라고 묻는다. 독고진은 "훌륭한 충전기 덕에 방전 안 되고 여기까지 왔다"며 웃어준다. 두 사람은 딸까지 낳고 잘 살고 있지만 언론과 누리꾼들은 별거설 이혼설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그래도 독고진과 구애정은 굴하지 않고 사랑을 유지한다.
언젠가 모 프로그램에서 박칼린 음악감독이 사랑에 대해 정의했던 말이 떠오른다. 땔감 같은 사랑. 서로가 자유롭게 성장하며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서로에게 좋은 연료가 되어주는 것 말이다.
구애정은 독고진의 전용충전기가 되어 인간답게 살아가며 지치고 힘들 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었고 독고진 또한 구애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그녀를 지켜준다. 그들의 행복한 삶을 엿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최고의 사랑을 하고 있는가.
이계정 상담심리 전문가 lisay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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