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뮤직]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안 과장의 두 번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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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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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입지전적인 음악인, DJ 안과장의 인생 후반부 설계기
●재미를 좇아 두리번거리는 음악탐험<미인은 롸커를 좋아해>


세상 이치란 오묘한 법이다.

특히 직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게 되는 확률도 적을 뿐만 아니라, 잘하는 일이라고 계속 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다. 사람의 인생이 100살까지 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잘못된 직업의 선택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최근 호스피스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죽음에 임박한 75%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한다. 공통적으로 내비친 인생의 후회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 못한 것'과 '너무 빠듯하게 생을 보내왔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열에 7~8명이 이런 후회를 한다는 것은 인생의 후배 입장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여기 삼십대 중반으로 향하는 한 고학력출신 백수가 있다. 이름 하여 '디제이(DJ) 안 과장'이다. 현대 홍대 주위에서 만능음악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결혼도 했으며 초등학생 자녀도 있고 또한 직장도 있었다. 물론 그 직장은 지난해까지였다.

그랬던 그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고, 무엇인가 거머쥐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홍대 주위에서 활약해온 'DJ안과장'은 지속적인 라이브 공연을 통해 관객과 소통해왔다. 특히 그는 작곡, 연주, 노래, DJ 스크래칭, 샘플링, 레코딩, 믹싱과 프로듀싱에 이리는 전 과정을 혼자 다 해내는 '만능 가제트'이다.

특히 그는 명문 S대를 졸업하고 회사원 생활을 하다 뒤늦게 인디밴드에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음악 하는 데 학벌이 무슨 소용일까?

그의 인생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한 때 호주 출신 하드록밴드 'AC/DC'의 마니아였으며 록앤록 음악에 심취 한 소년은 부모님과 주변이 권하는 대로의 삶을 서른 해 가까이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은 아니었나보다.

강남역 부근의 한 회사에서 서른살이 넘도록 회사생활을 하다가 문득 '아,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란 생각에 사직서를 내고 홍대 앞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남들은 20살에 홍대로 오지만 그는 서른살이 넘어 당도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가 음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기까지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었다.


■ 명문대 수재 출신 직장인의 뮤지션 변신기

최근 KBS에서 방영하는 '탑밴드(Top Band)'라는 인디밴드경연대회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700여 팀의 참가자들이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별과정을 거쳐 24개의 팀으로 추려져 본선을 치루는 모습이 보여 진다.

프로그램 초반 영상을 보면 택시 운전하는 아저씨들이 오십이 넘은 나이에 밴드를 결성하여 출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열정'인가 보다. 이런 열정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보인다. 결국 한동안 불꽃처럼 타올라 수많은 나방들이 날개짓을 펼치게 해줄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한 사람의 개인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누구나 남들에게 말 못할 욕망과 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전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준비과정도 빼어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다. 안 과장은 그 변신 과정이 완벽했던 이 가운데 하나로 사료된다.

DJ 안 과장은 평소에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대위로 오를 때 그의 의상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괴하다. 패션 센스부터 독특하다. 반짝이나 금색, 은색을 거침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의 홈페이지(http://cafe.naver.com/djahn)에 글들에도 그의 사고방식이 잘 포장되어 위장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DJ 안 과장은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껍데기 삶을 거부했다. 서른 넷라는 나이에 가족들에게 돌연 뮤지션의 길로 걸어가게 지켜봐달라고 하는 출사표를 던지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바쁜 직장인의 모습 속에서 수년간 그는 복귀와 은퇴를 거듭하며 무대와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차별 포인트였을지 모른다.

때로는 홀로 샘플러를 틀어놓고 기타를 치며 마이클잭슨의 노래를 불렀다. 때로는 두 대의 턴테이블과 탬버린, 미니 키보드와 하모니카, 드럼 머신, 전자기타에 보코더 등에 이르기까지 10여 가지 장비를 짊어지고 온갖 실험적 음악에 도전했던 것이다.

이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는 대중성에 대한 정의를 적절히 그리고 적소에 내뿜으며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세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6년부터 공개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2007년 EP앨범 '솔솔랄라솔솔미'를 선보이기도 했다.


■ 과감한 선택? 아니 차근차근 치밀한 전직(轉職)…

충분한 사회생활로 쌓인 대인관계의 능수능란함도 늦깍이 음악 활동에 큰 자산이 됐다고 한다. DJ 안 과장은 자기만의 음악 인프라를 구축한 끝에 2010년 4월 자신의 본격 데뷔앨범 '미인은 롸커를 좋아해'를 내놓으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만방에 증명해 내고야만다.

익숙한 멜로디와 한국인의 정서에 딱 맞는 해학적 가사 속에서 그는 동시대를 같이 보내고 있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열정을 북돋아준다. 그의 예인 'DJ 안 과장'역시 그런 욕심의 산물이다 '과장'인 이가 디제이(DJ)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 만화 가운데 '심야식당'이라는 히트작이 있다. 가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원하는 안주와 야식을 만들어줌으로써 지친 일상에서 위로와 격려를 말없이 음식이란 매체로 안겨주는 것이다.

만화 속의 식당주인처럼 'DJ 안 과장'은 대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회사원과 뮤지션이라는 이중생활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안 과장은 자신의 꿈을 끝내는 이뤄낸 것이다.

그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경험 후에 보람과 쓰라림을 선택했다. 이 땅의 모든 '일상다반사'들에게 그는 대리만족이 아닌 새로운 삶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sereeblue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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