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대 공대 학장실에서 만난 강태진 학장(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은 “이미 과학기술은 대부분 융복합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강 학장이 주도한 ‘융복합 학문시대 국가 미래 R&D 어젠다 발굴을 위한 기획연구’는 10년 뒤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다뤘다.
이번 연구에서 강 학장이 강조한 부분은 ‘실현 가능성’이다. 강 학장은 “기존 미래전략은 발전을 위한 필수기술을 몇 단계씩 건너뛰며 공상과학(SF)에 가까운 내용을 담기도 했다”며 “당장 내년과 후년에는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디에 예산이 투자돼야 하는가를 기초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예산은 중요한 시장이 생길 것으로 판단돼야 나오기 때문이다.
강 학장은 “정확성을 높이려면 먼저 미래에 일어날 ‘이슈’를 제시하고 큰 틀에서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고령화사회(이슈)가 온다면 ‘의학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노인 친화 시스템은 어떤 분야가 융합해야 할까’를 바탕으로 고민해야지, 의학과 공학이 융합하면 고령화사회에 무슨 역할을 할지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가까운 미래를 알려면 현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강 학장은 서울대의 각 단과대 학장을 모았다. 학장이 움직이면 단과대 소속 교수들도 움직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단과대 학장이 참여하며 각 학과의 교수들도 세부 학문 분야를 연구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연구보고서에 실린 연구원과 자문위원 27명 가운데 10명이 단과대의 전현직 학장일 정도다.
이들은 다른 학문 분야의 내용을 듣는 데 적극적이었다. 기초과학, 응용과학, 인문학, 법학, 예술을 전공한 서울대의 각 학장은 한 달에 2∼4차례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강 학장은 “모두 미국의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후버 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처럼 한국의 싱크탱크를 구축할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강 학장은 “선진국의 미래전략연구소는 정부가 세우고 대학이 운영한다”며 “우리나라도 상시적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고민하는 전문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보고서를 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모여 토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의무감을 갖고 참여해야 책임 없는 공상적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 모여 미래전략 어젠다를 발굴한 서울대 교수들은 앞으로도 토론하며 미래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간을 정해두고 보고서를 낼 계획은 아직 없다. 연구 방법이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만큼 다음 보고서도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강 학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미래를 연구한 보고서’가 아니라 ‘미래를 연구할 시스템’”이라며 “현재 시작된 서울대의 싱크탱크를 국가가 전문기구로 활용한다면 적극 참여할 의향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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