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K팝 열전]③소녀보다 더 만화적인 그녀들-f(x)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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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1일 14시 08분


●화려한 만화 같은 캐릭터들…무대위로 튀어나와
●키덜트 시대의 이상적 선택, 그러나 그 이상은 미지수
●중성적 매력과 신비로움이 가득한 엠버의 존재감

첫 정규앨범 ‘피노키오’로 인기몰이중인 걸그룹 f(x) 빅토리아, 엠버, 크리스탈, 설리, 루나(왼쪽부터).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첫 정규앨범 ‘피노키오’로 인기몰이중인 걸그룹 f(x) 빅토리아, 엠버, 크리스탈, 설리, 루나(왼쪽부터).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당혹스러울 정도의 생뚱맞은 가사, 모델보다 더 화려한 원색패션, 이국적인 마스크의 귀여운 10대 소녀들 거기에 보이시한 캐릭터까지…. 걸그룹 에프엑스f(x)를 설명하는 특징은 한 마디로 '만화적(漫畵的)'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가요계 막내들일 것 같은 이들도 데뷔한 지도 곧 2주년을 맞이한다(9월1일). 단 2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가요계는 걸그룹 춘추전국 시대로 변할 만큼 지형도가 급변했다. 그 가운데 에프엑스는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했다.

2009년 데뷔곡 '라차타'와 '추Chu~♡'로 돌풍을 몰고 온 이들은 올해 4월 정규앨범을 통해 히트곡 '피노키오'와 '핫 섬머' 등으로 차세대 선두주자임을 만천하에 알린 상태다. 게다가 압도적 반향을 불러 온 SM타운 파리공연을 통해 세계적인 여성그룹으로 불씨까지 살려놓았다.

그럼에도 '에프엑스'는 여전히 낯설고 신비로운 '가능성의 존재'다. 적당히 4차원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이 지나치게 강한 것도 약점이다. 게다가 여전히 지나치게 10대 편향이기도 하다. 물론 '소녀시대'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호의적인 평가도 적지 않지만 '소녀시대'의 드높은 위상에 억눌릴 것 같은 위험도 있다.

올 여름 특히 TV만 켜면 등장하는 깜찍 발랄한 가요계 차세대 주자들의 절묘한 포지셔닝을 분석해 보자.

■'SM'과 '소녀시대'의 후광을 얻은 남다른 태생…

크리스탈,빅토리아,루나,(뒷줄왼쪽부터) 엠버,설리(앞줄왼쪽부터)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크리스탈,빅토리아,루나,(뒷줄왼쪽부터) 엠버,설리(앞줄왼쪽부터)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에프엑스f(x)는 결코 평범한 걸그룹이 아니다.

태생부터 '아이돌 명가'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이란 영예로운 타이틀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SM은 이제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을 무려 5팀이나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탑 레벨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바로 그 막내 그룹이 바로 '에프엑스'다.

그녀들의 선배인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만 해도 지금과 같은 국가적인 위상은 갖고 있지 못했다. 소녀시대는 데뷔 초기에 "연습생 대방출"이란 격한 조롱을 받을 정도로 바닥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올라가야 했던 '투사형 아이돌'에 가깝다. 세계 언론들은 '소녀시대'의 퍼포먼스에 감탄하면서도 "멤버들이 5년에서 7년까지 호흡을 맞추며 집단 합숙훈련을 했다"는 안쓰러운 표정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에프엑스'에 이르러서는 아예 그런 연습생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처음부터 선배들이 개척한 걸그룹/보이그룹의 탄탄한 기반 아래서 비교적 단시간에 높은 위상을 부여받은 셈이다. 데뷔 초기부터 모든 매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안전하게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풍요로운 케이팝 세대'의 첫 출발인 셈이다.

중국인, 대만계 미국인 등 외국 멤버들을 포함시켜 태생부터 글로벌 그룹으로 주목받은 에프엑스. 연합뉴스.
중국인, 대만계 미국인 등 외국 멤버들을 포함시켜 태생부터 글로벌 그룹으로 주목받은 에프엑스. 연합뉴스.

실제 SM이란 아시아권 10대 끼 많은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회사로 통한다. 입사와 동시에 '소녀시대'나 '동방신기' 멤버들과 동료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일까? 그 때문에 SM에는 많은 인재들이 몰려오고 그로 인한 성공 경험들은 자연스레 최상의 트레이닝 환경으로 이어진다.

'에프엑스'는 SM이 보유한 월드와이드 캐스팅 능력의 절정을 입증하기도 한다. 중국 청도에서 스카웃한 빅토리아(24), '소녀시대'의 보컬 제시카의 여동생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출신 크리스탈(17) 그리고 미국 LA에서 모셔온 최초의 외국인 엠버(19)도 있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는 일찍이 방송계에서 주목을 받은 아역탤런트 출신 설리(17)와 동년배 아이돌 가운데 최고의 가창능력을 갖고 있는 루나(18)까지….

'에프엑스'의 구성은 이제껏 여느 걸그룹 보다 가장 국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10대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탁월한 기예와 성숙미 그리고 무대 장악능력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어린 예능천재'들인 셈이다.

■컴플렉스 없는 최초의 '풍요세대'

말리부 해변은 아니더라도
금가루 뿌렸니 눈부셔 파도
발 툭툭 털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십 가득한 TV가 재미없어
한강에서 물 파란 동해에서~
저 워터 파크에서 재밌게 놀자 어서~
(…)
얼음을 깨문 입 속 와작 얼얼해
하늘은 파랗다 못해 투명해져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

-에프엑스 '핫 썸머' 가사


'에프엑스'의 매력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들이 철저하게 '만화적'이라는 데 있다. '에프엑스'를 구성하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예쁘고 아기자기 하며 현실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순정만화 캐릭터와 비슷할 정도의 비현실성이다.

'소녀시대'가 일본 아이돌의 진화공식을 완벽하게 벤치마킹해 '연습생'이 '아이돌'을 거쳐 '여신'에 이르는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재현해 냈다면, '에프엑스'는 여신의 계보라기보다는 만화에서 '툭~'하고 바로 튀어나온 모양새다.

중국에서 건너온 빅토리아처럼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또 있을까? 웃는 표정으로 허리가 90도로 꺾고 다리를 찢는 모습은 이들은 가공된 '무대 위의 여신'이라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영상판타지에 가깝다. 게다가 순식간에 한국어를 마스터하는 괴력까지 선보였다.

외모나 퍼포먼스 뿐 만이 아니다. 이들의 노래 역시 만화적이다.

일렉트로닉 댄스곡 '빙그르'는 그대로 청소년 만화주제곡으로 쓰여도 될 정도로 달콤 상쾌하다. 후렴구인 "드링킷 드링킷, 파워 업~"은 미소녀 만화의 변신 구호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인디밴드 페퍼톤스가 작곡한 '스탠드 업'>은 그녀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잘 표현했는데 청춘로맨스 만화 주제가로 적격인 듯 보인다. 이 밖에도 히트곡인 '피노키오'나 '누예삐오Nu ABO' 역시 4차원적인 가사가 충분히 만화적이다.

이들의 장점은 그 어떠한 컴플렉스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선배 언니나 오빠들은 서구 댄스팝과 일본의 제이팝 심지어 미국의 힙합을 따라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그런 고생의 흔적들은 노래 뿐만 아니라 댄스 심지어 패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천상지희'는 예쁘고 늘신했지만 일본 제이팝의 영향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했다. '소녀시대' 댄스의 핵심은 절도와 군무의 일관성에 있다. 한 명이라도 틀린다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군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옷은 제복형식을 갖췄고 섹시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거대한 부츠에 핫팬츠까지 입어야 했다. 이는 철저하게 무대를 위한 장치로 소녀의 희생을 전재로 한다.

게다가 이들은 한국어 노래 뿐만 아니라 일본어로 번안된 가사까지도 쉬지 않고 외어야 했다. '소녀시대'나 '카라' 심지어 '빅뱅'조차도 일본 진출을 위해 일본어로 개사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어떤 팬들에게는 자랑스러웠겠지만 일부 한국 팬들에게 그런 모습은 '굴욕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케이팝의 성공은 자랑스럽지만 아직 많은 부분은 서구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에프엑스'에게 그런 컴플렉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이 일본어 개사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조화의 상징이다. 한국어와 영어가 적절한 비율로 섞인 가사는 오히려 일본은 가볍게 스킵하고 유럽과 서구를 타깃으로 삼은 모양새다.

예상대로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신비로운 아이돌의 노래에 유럽 10대가 먼저 반응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자유롭고 발랄한 '에프엑스'에 대한 호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춤은 조금 틀려도 된다. 만화같이 유치하지만 신선하고 흡입력이 강한 댄스팝을 이제까지 유럽에서 보여진 적이 없다. '에프엑스'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무대는 마치 "이것이 바로 차세대 케이팝이다"라는 선언으로 읽힌다.

■'에프엑스'의 마지막 퍼즐 '엠버'의 매력

에프엑스의 만화적 감수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 엠버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에프엑스의 만화적 감수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 엠버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에프엑스'의 만화적 매력에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키는 멤버는 다름 아닌 래퍼 '엠버(19)'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2007년 SM미국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대만계 미국인이다.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모두가 가능하지만 그녀는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는 편이다.

지난해 엠버가 다리 부상으로 상당기간 자리를 비웠을 때 '에프엑스'는 과감하게 활동을 쉬는 뚝심을 발휘했다. 웬만한 전략적 판단 없이는 데뷔 1년차 걸그룹으로는 하기 쉽지 않는 선택이었다. 실제 엠버 없는 '에프엑스'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엠버는 단순하게 보이시한 매력을 지닌 래퍼 이상의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엠버라는 독특한 존재는 케이팝 무대 전체에서도 가히 독보적이다. 거의 대부분의 걸그룹들이 예쁜 치마와 긴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엠버는 바지와 금발의 짧은 머리로 영어랩을 구사한다.

이른바 '중성적인 매력'을 선보인 최초의 걸그룹 멤버가 된 것이다. 이국적이긴 하지만 절대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20년 전 '담다디'의 이상은은 머슴아 같았다면 엠버는 오히려 건강한 언니에 깝다.

걸그룹 F(x)_에프엑스_엠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걸그룹 F(x)_에프엑스_엠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자연스럽게 상당수 여성 팬들이 그녀에게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털털하고 보이시한 여자친구 혹은 언니란 10대 여성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다. 그런 그가 멋진 스타일에 춤까지 잘추는 래퍼라면 두말할 나위고 없다. 게다가 말수도 적은 외국출신이라면 '환상적'이다.

엠버가 없지는 에프엑스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SM이 생각하는 '에프엑스'의 포지셔닝은 '소녀시대'의 정반대에 서있다. 순정만화 바로 그 자체가 에프엑스의 정체성인 셈이다.

물론 그런 10대 취향이 생존기간이 짧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점차 30대 이상의 중년들까지도 어린시절 자신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과 만화영화를 즐긴다. 이른바 '키덜트(Kid+Adult) 세대의 도래다. 이들에게 에프엑스란 가장 완벽한 대안일 지도 모른다.

자유롭고 창의적이면서 알록달록한 원색의 만화 영화같은 존재들 그리고 아무런 컴플렉스 없이 타고난 끼를 즐기는 10대 소녀들…. 여전히 SM은 영리하고 지능적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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