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영 돌핀킥 물 저항 적어 1.4배 추진력 불구
하체 고관절 유연성·작은 발 등 선천적 약점
왕발 펠프스 두배 깊은 곳에서 5.3초 돌핀킥
부족한 하드웨어·잠영 기술 반복훈련이 열쇠
2011상하이세계선수권에서 박태환(22·단국대)의 스트로크 레이스는 단연 세계 최고였다. 물 위에서의 가속은 마이클 펠프스(26·미국)보다 더 나았다.
하지만 잠영에서의 격차가 너무 컸다. 200m는 400m보다 잠영이 순위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2012런던올림픽 2관왕을 노리는 박태환에게는 잠영보완이 큰 과제다. ‘타고난 천재’라는 마린보이가 왜 돌핀킥과 잠영에는 유독 약할까. 수영전문가들의 평가와 2008년 일본 NHK가 시도한 펠프스의 돌핀킥·잠영분석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봤다.
○왜 잠영이 스트로크 레이스보다 더 빠른가?
잠영이 스트로크를 할 때보다 빠른 이유에 대해 체육과학연구원(KISS) 송홍선 박사는 “조파저항(wave resistance)”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유체속을 운동하는 물체는 추진하면서 생기는 파도의 저항을 받는다. 이것을 조파저항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선수들은 스트로크를 할 때 거품(파도)을 최소화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 허리 아래의 힘을 활용해 돌핀킥을 하면, 수영선수의 앞쪽에 파동이 생기지 않아 조파저항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일본 국립방위대학 이토 신이치로 박사에 따르면, 조파저항이 없으면 약 1.4배 빨리 헤엄칠 수 있다. 스포츠동아 이동운 해설위원(대한수영연맹 총무이사)은 “스타트 할 때는 스타트 블록을 차고 나오는 탄력, 턴을 할 때는 벽을 차는 탄력 덕에 스트로크 레이스 때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돌핀킥(두 다리를 붙여 위에서 아래로 차는 킥)은 이 탄력을 최대로 유지하는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마린보이 잠영약점이 부력 때문? 전문가들은 “NO”
일각에서는 타고난 부력이 박태환의 잠영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몸이 빨리 떠오르기 때문에 더 오래 잠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송홍선 박사는 “펠프스는 부력이 없느냐?”고 되묻는다. 이동운 해설위원은 “정상급 선수들은 자신의 부력을 ‘얼굴이나 팔의 위치’를 통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력은 많은 공기를 몸 안에 채울수록 좋기 때문에, 폐활량과 연관이 깊다. 박태환의 폐활량이 약 7000cc인데 반해, 펠프스는 약8500cc다. 부력 때문에 잠영약점이 생긴다면 펠프스의 잠영을 설명할 수 없다. “잠영을 오래하면 숨이 차다”는 박태환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폐활량이 크면 잠영에 더 유리하다.
○신체적인 약점, ‘떨어지는 유연성, 작은 발 사이즈’
잠영에 쓰이는 돌핀킥은 주로 허리 아래 부분으로 추진력을 낸다. 따라서 근력은 물론 고관절(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관절)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박태환은 고관절의 유연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이문삼 전경영대표팀 트레이너는 “(박태환의 유연성이) 대표팀 전체에서도 평균정도였고 정다래(20·서울시청)보다도 부족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 박태환전담팀도 유연성 강화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불리한 신체적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펠프스(193cm)의 발사이즈는 무려 350mm. 이에 반해 박태환(183cm)은 285mm에 불과하다.
이동운 해설위원은 “더 큰 오리발을 끼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토 박사에 따르면 350mm인 선수는 300mm인 선수보다 돌핀킥에서 무려 20%나 강한 추진력을 낼 수 있다. 박태환과의 경우라면 차이는 그 이상이다.
○기술의 문제, ‘펠프스보다 잠수 깊이는 절반 수준’
잠영의 관건은 크게 2가지다. ‘얼마나 깊이 잠수해서 얼마나 강하게 많이 돌핀킥을 차는가.’ 조파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면 50cm 아래에서 수영을 해야 한다.
펠프스는 턴을 하는 순간 45도로 몸을 꺾은 뒤, 돌핀킥을 활용해 더 깊이(약 1m) 물 속으로 들어간다. 반면 박태환은 턴을 한 그 깊이(약 40∼50cm)에서 돌핀킥을 시작한다. 박태환이 부력이 좋아 일찍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펠프스가 약 2배가량 더 깊은 곳까지 잠수해서 돌핀킥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잠영 거리가 더 긴 것이다. 펠프스는 최대 5.3초까지 잠영을 하는데, 이 시간 동안 돌핀킥을 하기 위해서 심폐능력과 근력 등은 필수다.
NHK가 공개한 펠프스의 돌핀킥 훈련장면은 충격적이다. 8kg짜리 벨트를 착용하고, 물 위로 머리만 내놓고 ‘서서’ 헤엄을 친다. 이 때 팔과 상체를 쓰지 않고, 허리 아래의 하체 힘만으로 약 40초를 버틴다. ‘10초 휴식 후 다시 40초’ 사이클을 10회 반복한다. 웬만한 선수는 20초도 제대로 버티지 못할 만큼 극한의 고통이 수반된다. 하루 16km를 수영하는 펠프스도 이것을 “가장 힘든 훈련”으로 꼽는다.
○대부분 수영장 수심얕아 …잠영훈련 어려워
전경영대표팀 방준영 코치는 “세계적인 선수와 비교해서 그렇지, 한국에서만 비교하면 박태환이 잠영에서도 최고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잠영은 박태환 뿐만 아니라 한국선수들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경영대표팀 안병욱 선임코치는 잠영훈련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한국수영의 토양을 지적했다. 서울에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은 서울체고, 한체대, 잠실학생수영장 등 3곳이 전부다. 한 레인에서 8명 이상 씩 훈련을 하는 일도 예사다. 5초 간격으로 출발하면 앞 선수와의 차이는 7∼8m 뿐. 앞 선수가 일으킨 파도의 영향, 앞 선수와의 거리 차 때문에 잠영거리를 늘리는 훈련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수영장이 일반회원을 의식해 수심을 깊지 않게 만드는 것도 잠영훈련에는 장애물이다. 하드웨어문제 때문에, 마린보이 역시 유·소년기부터 스타트(스타트반응부터 입수해 물에 다시 떠오르기까지)와 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박태환은 “이제 훈련할 때는 10m까지도 잠영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실전에서는 펠프스(12∼13m)의 60%인 7∼8m수준이다. 이동운 해설위원은 “아직 훈련의 결과가 몸에 완전히 익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급할 때마다 또 본능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펠프스가 그랬듯, 박태환에게도 유일한 답은 반복훈련 뿐이다.